SK에너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가격 담합 의혹을 받는 데다 SK지오센트릭의 울산 석화 구조조정도 1년 넘게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두 기업의 대표를 한 데 묶은 SK이노베이션의 승부수가 시험대에 올랐다.
| ▲ 김종화 SK에너지·SK지오센트릭 대표이사 사장 |
SK에너지는 8일 보도자료를 내어 '석유시장 가격구조 개편 및 내부통제 강화' 조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에는 △가격체계 투명성 △공정거래 내부통제 △유통고객 상생협력 △안정적 에너지 공급 등 4대 방안이 담겼다.
이에 따라 SK에너지 임직원은 앞으로 경쟁사와 업무상 접촉할 때 사전승인과 사후보고를 거쳐야 한다. 가격·영업정보 교환처럼 공정거래에 위험이 있는 행위에는 더 엄격한 내부 기준이 적용된다.
공정위가 문제삼은 경쟁사 간 가격 정보 교환을 회사 안에서부터 막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날 공정위는 SK에너지와 HD현대오일뱅크가 가격 정보를 교환하고 입금가를 합의했다고 보고 과징금 부과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이른바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는 검찰의 기소 의견을 담은 공소장과 비슷한 성격을 띄는 문서로 여겨진다.
김종화 사장은 이날 내부통제 강화 조치와 함께 낸 입장문에서 공정위 조사 결과와 관련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김 사장은 "SK에너지는 국내 대표 정유사로서 가격과 거래의 투명성, 공정경쟁 및 준법경영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번 조치를 계기로 시장과 고객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와 개선을 이뤄나가겠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김 사장을 비롯한 정유업계를 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오는 12일 열리는 공정위 국정감사에 김 사장을 포함한 4대 정유사 대표를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번 국감에서는 담합 의혹과 함께 정유사의 주유소 대상 거래 관행의 공정성 이슈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 담합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SK에너지 임직원은 자진신고를 통해 형사 기소는 피했다. 그럼에도 김 사장은 자신 명의로 입장문을 낸 만큼 적극적으로 공정위 조사 대응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김 사장은 SK에너지뿐 아니라 대표를 겸직하는 SK지오센트릭에서도 만만찮은 과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석유화학 구조조정이 시작돼 충남 대산과 전남 여수 산업단지에서는 가시화됐다. 하지만 SK지오센트릭이 위치한 울산에서는 아직까지 윤곽도 잡지 못한 모양새다.
SK지오센트릭은 대한유화·에쓰오일과 함께 울산 산업단지 내 나프타분해설비(NCC) 감축 방안을 지난 1년여 논의했지만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울산 3사의 NCC는 특히 합성수지 등을 만드는 후속 공정과 맞물려 있어 구조조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석화업계 구조조정의 본래 목적대로 NCC 감축 규모만 따로 떼어 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NCC 감축보다도 다운스트림 단계의 최적화 방안을 우선 논의해야 한다"며 "세 회사의 이해가 맞물려 있어 최종 합의까지 거칠 단계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운스트림은 NCC에서 나온 에틸렌 등 기초유분을 원료로 폴리에틸렌(PE) 같은 합성수지를 만드는 후속 공정을 말한다.
| ▲ 울산 석유화학단지 NCC 감축 방안을 두고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이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은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 전경. <연합뉴스> |
결과적으로 김 사장은 대표를 맡은 SK이노베이션의 핵심 두 계열사에서 모두 난제와 맞닥뜨린 셈이다. 김 사장은 2025년 12월부터 두 회사 대표를 함께 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김 사장에게 두 기업 모두를 맡긴 것은 석유화학업의 가치사슬 효율화를 위한 승부수로 평가됐다. 지난해 SK에너지만 맡던 김 사장이 SK지오센트릭까지 겸임하게 됐을 때 직전 SK지오센트릭 대표는 선임된 지 1년이 안 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올해 인사에서 SK그룹이 이같은 겸직 체제를 유지할 지도 석유화학업계의 관심사로 여겨진다. 현재 재계에서는 SK그룹 정기 인사가 예년보다 한 달 가량 앞당겨져 이르면 10월 안에 단행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사장의 겸직 체제는 실적 측면에서 순항한 것으로 평가됐다.
SK에너지는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 1조9344억 원을 거뒀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5916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SK지오센트릭도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 1713억 원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다.
다만 실적 개선의 상당 부분이 이란전쟁에 따라 석유와 화학제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발생한 일회성 요인에서 나온 점은 변수로 꼽힌다. 특히 SK에너지와 관련해 향후 최고가격제의 향방 등에 따라 실적이 결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고가격제는 정부가 정유제품에 상한을 두는 제도인데 이로 인해 정유사가 판매하지 못한 금액을 얼마나 보전받느냐에 따라 이익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김문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지난 7일 보고서에서 "미국-이란 전쟁 종식 뒤에도 2~3년 동안 정제설비 부족이 이어지여 높은 정제마진이 유지될 것"이라면서도 "최고가격제 손실 보전이 실제 원가 및 적정 마진을 포함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선 불확실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권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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