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미 손실보전을 위해 수조 원 규모의 재정을 마련해 둔 상황에서 당장 걱정은 없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재정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최고가격제에 따른 첫 정산액은 아직 확정되지 않아 실제 정산 과정에서 적용할 세부 기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 13일 서울 서초구 만남의광장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
15일 오후 1시6분 기준 국제유가 흐름을 보여주는 브렌트유 선물은 전 거래일보다 1.3% 오른 배럴당 107.05달러에 거래됐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도 1.51% 상승한 102.92달러를 나타냈다. 한국석유공사가 공개한 가장 최근 가격을 보면 14일 기준 두바이유 현물가격도 배럴당 126.70달러로 집계됐다.
브렌트유는 앞서 7월23일 예맨 후티 반군의 사우디 원유 운반선 공격과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공급 차질 우려 등이 겹치면서 배럴당 100.69달러로 마감해 5월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를 넘어섰다. 이후 다시 100달러 아래로 내려갔지만 지난 9일 미국과 이란의 무력충돌이 격화하고 호르무즈해협 원유 수송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101.21달러로 재차 100달러선을 넘어섰다.
최근에는 중동 지역의 원유 수송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사우디는 이와 별개로 친이란 이라크 무장세력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에 따라 자국의 동서송유관 가동에도 차질이 발생했다. 동서송유관은 호르무즈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 연안 얀부항으로 하루 약 400만 배럴의 원유를 보낼 수 있는 핵심 우회 수송로다.
반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정부가 3월13일부터 시행한 최고가격제의 영향 아래 놓여있다.
최고가격제는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구매하는 가격 자체에 상한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정유사가 주유소와 대리점 등에 공급하는 출고가격의 최고액을 정부가 정하는 제도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9차 최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784원, 경유 1773원, 등유 1380원이다. 정부는 8월22일부터 4주 동안 8차 최고가격과 동일한 가격을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국제유가 상승과 달리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9월 둘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당 1859.1원으로 전주보다 1.1원 떨어져 17주 연속 하락했다. 경유 평균 판매가격도 0.5원 내린 1844.0원을 기록했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한 상황에서도 국내 가격 안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12일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국민 여러분, 걱정 마시라. 휘발유, 경유 등 정제유 가격은 계속 안정된다”며 “원유와 국제 정제유가는 폭등 중이지만 국내 정제유는 최고가격제와 수출 물량 통제로 무리 없이 안정적 가격과 공급물량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국내 정유사들은 국제 정제유가 폭등에 따른 이익이 크고 국내 가격과 수출물량 통제에 따른 손실은 정부가 보전해줌으로 사상 최대 수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고가격제는 국내 물가와 정부 재정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다. 국제유가 상승분을 최고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물가 부담이 커진다. 반대로 최고가격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면 정유사의 원가와 국내 공급가격 사이 차이에 따라 정부가 향후 보전해야 할 손실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 ▲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가운데)이 7월1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정유업계 CEO 간담회에 참석해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주영민 HD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 허세홍 GS칼텍스 사장, 최 차관, 오종훈 SK에너지 사장, 류열 에쓰오일 사장. <연합뉴스> |
정부는 최고가격제 손실보전을 위해 약 4조2천억 원의 목적예비비를 마련해 두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최고가격제가 올해 4분기에도 이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2027년도 산업부 예산안에도 ‘석유가격안정화지원’ 사업으로 1조4497억 원을 편성했다.
다만 산업통상부는 실제 손실보전액은 원가를 기반으로 정산하기 때문에 현재 단계에서 재정부담 규모를 확정하기 어렵다고 밝혀왔다.
실제 손실보전의 첫 정산 작업도 아직 진행 중이다.
정부가 마련한 재정지원 규정에 따르면 정유사 손실보전은 원유와 기타 석유제품 구입가격, 운송비와 보험료 등 원유 도입비용과 감가상각비·인건비·연료비·국내 유통비 등 생산·판매비용을 토대로 산정한다. 산업부 장관은 이를 기준으로 재정지원액을 결정하고 적정 수준의 마진도 고려할 수 있다.
정유업계는 애초 최고가격제가 없었다면 국제시장에 석유제품을 판매해 얻을 수 있었던 수익을 고려해 국제제품가격을 손실 산정에 반영해달라는 의견을 냈지만 정부는 원가를 기준으로 정산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만 실제 정산에 적용될 세부 산정 방식은 정산위원회의 논의를 더 거쳐야 한다.
산업부는 2일 “정유사로부터 원가 자료 등이 제출되면 최고액 정산위원회에서 원가 등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과 합리적인 산정 방법에 대해 논의 후 재정지원 수준이 결정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당초 정유사의 원가자료 제출기한은 8월 말이었지만 기업들이 산정 작업의 어려움을 들어 연장을 요청하면서 9월 말로 한 달 늦춰졌다. 제출된 자료는 검증을 거쳐 정유사에 통보되고 이의신청과 재심의 등을 거쳐 최종 지원금액이 결정된다.
정유사별 원가 절감 성과를 정산에 어떻게 반영할지도 관심사다.
일부 정유사들은 원유를 싸게 확보해 원가를 낮추면 오히려 원가 기준 손실보전액이 줄어드는 만큼 원가 절감 성과를 적정 마진율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부는 이에 관해 원가 절감 성과를 고려한 적정 마진율 산정 방식은 아직 공식적으로 논의되거나 결정된 사안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유사가 원가자료를 제출한 뒤 최고액 정산위원회에서 객관적 기준과 산정 방식을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권석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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