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미국의 자동차 관세 15%를 극복하기 위해 현지화 전략을 강화한다.

현대차그룹이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가격 인상으로 수익성을 방어하기는 쉽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14일 자동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와 미국 정부의 협상으로 자동차 관세가 기존보다 10%포인트 낮아지기는 했지만 정 회장이 안고 있는 고민은 여전할 것이라는 분석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그동안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에 무관세로  자동차를 수출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관세 15% 부과는 상당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관세 15%를 1년 동안 적용받으면 현대차와 기아의 손실은 합산 5조 원 정도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일본과 유럽연합(EU)도 미국에서 15% 자동차 관세를 동일하게 부과받는다.

하지만 일본은 그동안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때 관세 2.5%를 부과받고 있었다. 이번에 관세가 15%로 같아지면서 일본 자동차 기업들과 경쟁하는 현대차그룹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사실상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현대차그룹과 비교해 관세 측면에서 기존보다 2.5%포인트 유리해진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성능 대비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왔다.

2025년 상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 점유율은 도요타가 15.3%로 2위, 현대차그룹이 11.0%로 4위, 혼다가 9.1%로 5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5위인 혼다와 격차를 벌리고 2위인 도요타를 쫓아가야 하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을 점유율 확대 기회로 활용해왔다. 제품 가격을 유지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미국 점유율 순위 1위부터 10위 기업 가운데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 이어 두 번째로 시장 점유율을 가장 많이 올렸다. 상반기 미국 자동차 시장 1위인 GM은 1년 전보다 시장 점유율을 1.5%포인트 늘렸고, 현대차그룹은 0.7%포인트를 늘렸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역대 최대치인 점유율 11%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매월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을 방어하면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현지 생산을 늘리는 동시에 재료비·가공비를 줄이고 생산효율성을 높이는 등 원가를 절감해 수익성을 방어하려는 대책을 세우고 있다.

실제로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되는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아이오닉5는  현지 생산 확대와 함께 수출이 줄면서 울산공장 생산라인이 여러 번 중단됐다.

현대차는 20일까지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 12라인 가동을 다시 한 번 중단한다. 현대차가 울산1공장 12라인 가동을 중단한 것은 올해 들어 6번째다.

현대차는 생산효율성 향상과 가공비 개선 등을 통한 원가절감 효과가 3분기부터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부품 소싱 다변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가동하고 있다.

기아도 미국 조지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을 현지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다. 올해 초 조지아 공장 생산 물량을 해외 여러 지역에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미국 관세에 대응해 계획을 변경했다.

기아만 떼어놓고 보면 올해 상반기 미국 시장 점유율은 5.1%를 기록했다. 기아는 하반기 미국 시장 점유율과 관련해 공격적 목표를 내놨다. 하반기에 소매 판매를 7% 정도 늘리고, 시장 점유율은 앞자리를 바꿔 6%대로 올라서겠다는 것이다.

하이브리드차와 내연기관차 판매를 늘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증권가도 기아가 하반기 미국에서 현대차 대형 SUV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모델을 포함한 신차 출시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는 완성차 기업은 극히 일부이며, 일본 도요타와 혼다, 현대차그룹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9월30일 이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면 하이브리드차로의 수요 쏠림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김창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판매량과 수익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고 경쟁 강도가 낮은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로 라인업을 확장하는 현대차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며 “관세 인하와 양호한 수요로 2026년에는 영업이익이 증가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