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로에너지 건축물(ZEB) 개요 . <한국에너지공단>
건설업계와 건자재업계는 공사비 안정화로 업황 반등에 관한 기대감이 큰 상황에서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 확대에 따른 부담 증가 가능성을 긴밀히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당초 한 차례 유예됐던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가 민간 건축물에 본격적으로 확대·적용을 앞두고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는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에너지 소요량을 최소화하는 녹색건축물의 설계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구체적으로 고단열재, 고기밀창호, 외부차양 등의 적용을 통한 수동적(패시브) 기술과 고효율설비 및 에너지관리 시스템 등을 운영하는 능동적(액티브) 기술과 함께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인증등급은 1차에너지 총소요량에서 총생산량이 차지하는 비율인 에너지 자립률을 기준으로 120% 이상인 ZEB플러스 등급부터 20% 이상 40% 미만인 5등급까지 6개로 나뉜다.
오는 30일부터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는 연면적 1천㎡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세대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적용된다. 에너지 자립률은 현실을 고려해 5등급 수준인 13~17%가 반영된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는 제1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 및 제로에너지건축 활성화 방안이 수립된 2014년부터 추진돼 2020년 연면적 1천㎡ 이상의 공공건축물 적용을 시작으로 공공주택에는 이미 의무화돼 있다.
이번 민간 건축물 대상 인증제는 지난해 초 시행이 예정됐지만 당시 급등한 공사비와 자재 수급 불안정 등 건설·부동산 시장이 누적된 불황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해 1년6개월가량 미뤄진 것이다.
국토부는 현재 공사비가 안정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 데다 2050년 모든 건축물의 제로에너지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민간 건축물에 관한 인증제도 시행을 더이상 미루지 않았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나타났던 공사비 급등세는 최근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설공사비지수의 연간 상승률을 보면 2016~2020년 연평균 3.3%에서, 2021년 11.5%, 2022년 11.2%로 크게 뛰었다.
2023년에는 3.3%로 과거 평균을 되찾은 뒤 지난해에는 1.7%까지 낮아졌다. 올해 들어 5월까지는 0.9%까지 축소됐다.
이상호 교보증권 연구원은 “건설공사비지수는 2021~2022년의 두 자릿수 상승세와 비교해 매우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공사비가 안정되면서 시공사들은 수주 시점에 보다 수월하게 공사비를 산정할 수 있게 됐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가 공사비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업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건설·부동산 관련 정책 동력 확보, 금리인하 기조 등에 오랜만에 업황 반등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업계를 괴롭혀온 공사비가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나오기 때문이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가 적용되면 열을 잡아두는 효과가 큰 고단열재, 태양광 설비 등 비용이 많이 드는 자재와 시스템을 필수적으로 반영해야 된다.
국토부에서도 인증제 시행에 따라 5등급 수준의 에너지 자립률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가구당 건설비가 130만 원 높아질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국토부 추정보다 최대 4배까지 건설비가 더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설계로 공사비가 오르면 이는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4월 말 기준으로 ‘악성 물량’인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11년8개월 만에 최대치인 2만6422세대까지 늘어나는 등 서울을 제외하고 아직 살아나지 못한 부동산 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제로에너지 인증 기준을 맞추려면 단열 강화, 고효율 설비 적용 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오래 전부터 대응을 위한 기술개발을 진행해왔지만 공사비가 다시 상승세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어 실제 적용 이후를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에 대응하기 위한 서울 서초구 롯데건설 본사 사옥에 설치된 '건물일체형 태양광발전시스템(BIPV)'. <롯데건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대형사와 비교해 기술 대응이나 자재 조달 여력이 부족한 중견사 입장에서는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며 “지방 주택사업장이 많은 중소형 건설사에는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건자재업계도 이번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 확대 시행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건자재업계는 건설업계보다 1년 반가량 업황 변화에 따른 실적이 늦게 반영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공사비 상승이 다시 현실화하면 이미 바닥 수준인 실적의 반등 시점이 더 늦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공사비 부담이 다시 커지면 건설사들이 발주를 줄일 수 있어 근본적 자재 수요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다만 고성능 단열재 및 창호 등 제로에너지 건축물에 필수적 기술이나 제품은 오히려 시장 기회가 확대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단열재를 예로 들면 제로에너지 건축물 인증제 적용에 따라 외단열, 내단열 모두 높은 성능 기준을 만족해야 하므로 고사양 제품으로 시장이 본격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나온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제품군을 갖춘 기업일수록 경쟁력이 부각되는 셈이다.
건자재업계 한 관계자는 “전반적 업황이 워낙 좋지 않은 데 시장 상황이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다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건축자재에 관한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늘어나는 만큼 이런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