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만 해도 호실적을 바탕으로 현직 행장들의 연임을 점치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최근 내외부 변수들이 잇따르면서 경영 성과만으로 연임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4대 은행장 교체가 예상보다 크게 이뤄질 가능성이 나오는 가운데 우리은행은 정진완 행장의 연임을 둘러싼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에서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드러나면서 정상혁 신한은행장의 추가 연임에도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상혁 행장을 비롯해 이환주 KB국민은행장, 이호성 하나은행장, 정진완 우리은행장의 임기는 모두 올해 12월 말 끝난다. 정상혁 행장은 두 번째 임기를 마무리하고 나머지 세 행장은 첫 연임 여부를 평가받는다.
이처럼 연말 인선을 앞둔 시점에 신한은행은 고객정보 유출이라는 돌발 변수를 맞았다.
신한은행은 전날 비정상적 인증 우회로 고객 약 2만5천 명의 개인·신용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고객명과 전화번호, 연소득뿐 아니라 일부 고객의 주민등록번호까지 유출된 것으로 파악됐다.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에 금융감독원도 긴급 현장조사에 착수해 사고 경위 등을 들여다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고 전까지 정 행장의 실적과 기관영업 성과를 바탕으로 연임 가능성을 높게 점쳐 왔다.
신한은행은 정 행장 재임 기간인 2024년 순이익 기준 은행권 1위인 ‘리딩뱅크’를 탈환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5% 늘어난 순이익 2조4585억 원을 거두며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앞섰다.
기관영업에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의 도전을 물리치고 서울시 제1·2금고와 인천시 제1금고를 잇달아 지켜냈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정 행장이 2006년 통합 신한은행 출범 이후 처음으로 세 번째 임기를 맡거나 지주로 이동해 역할을 넓힐 수 있다는 시선도 나왔다.
다만 연말 인선을 앞두고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런 전망에도 변수가 생겼다. 사고 원인과 내부통제 체계의 미비 여부는 조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지만 연임이나 지주 이동을 낙관하던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KB국민은행도 이환주 행장의 연임을 낙관할 수 없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은 지주 회장 교체에 고객정보 유출 사고까지 겹치면서 이 행장의 연임을 둘러싼 변수가 늘었다.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9월11일 양종희 현 회장 대신 이재근 부문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선정했다. 양 회장의 연임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던 만큼 금융권에서는 예상 밖의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호실적을 이어온 지주 회장도 연임에 성공하지 못하면서 계열사 대표 인사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회추위가 강조한 변화와 세대교체가 은행장 인선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말 첫 임기를 마치는 이 행장은 취임 이후 최대 실적 행진을 이끌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3조8620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4년 만에 ‘리딩뱅크’를 탈환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순이익 2조2254억 원을 거두며 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러나 KB국민은행 역시 연말 인선을 앞두고 고객정보 유출 사고가 드러나면서 내부통제 측면에서도 부담을 안게 됐다.
국민은행은 이날 직원용 모바일 업무지원시스템이 외부 침해를 받아 고객 119명의 개인·신용정보가 유출됐다고 밝혔다. 유출 정보에는 고객명과 전화번호, 주소, 암호화된 주민등록번호 등이 포함됐다. 금융감독원도 사고 경위 등을 살펴보기 위해 현장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호성 하나은행장 역시 최대 실적을 이끌고도 연임을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하나금융의 청라 이전과 맞물려 공을 들인 인천시금고 유치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지난해 순이익 3조7475억 원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올해 상반기에도 순이익 2조1211억 원을 올리며 상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냈다.
이런 실적 흐름 속에서 인천시금고 유치는 하나은행이 인천 지역 대표 은행으로 입지를 다질 기회로 여겨졌다. 이 행장도 직접 프레젠테이션에 나서며 유치에 힘을 실었지만 인천시는 지난달 차기 제1금고 운영기관으로 신한은행을 다시 선택했다.
그룹이 청라 이전을 계기로 인천에 뿌리를 내리려는 시점인 만큼 이번 결과는 단순히 금고 한 곳을 확보하지 못한 것 이상의 아쉬움을 남겼다고 볼 수 있다.
4대 은행 중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경영 연속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대내외 큰 변수가 없는 상황에서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연임으로 그룹 경영체제가 유지되는 만큼 행장 인사에서도 변화보다 기존 경영진과 호흡을 중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은 증권과 보험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 체제를 갖춘 뒤 계열사 간 시너지를 실질적 성과로 연결해야 하는 단계에 있다. 정진완 행장이 은행·비은행 협업을 지속적으로 이끌도록 하는 것이 그룹 전략의 실행력을 높이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취임 이후 자본 건전성이 개선된 점도 정 행장의 성과로 꼽힌다. 우리은행의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정 행장 취임 직전인 2024년 말 13.1%에서 올해 6월 말 15.3%로 높아졌다. 자본 여력을 확충하면서 향후 영업을 확대할 기반을 다진 셈이다.
다만 수익성 회복은 남은 과제다. 우리은행의 올해 상반기 순이익은 1조3730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줄었다. 정 행장으로서는 하반기 실적 반등을 통해 수익성 개선까지 이뤄내야 연임 명분을 한층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 4대 은행장 교체가 예상보다 크게 이뤄질 가능성이 나온다. <연합뉴스> |
금융당국의 높아진 지배구조 개선 요구는 4대 은행 행장이 공통으로 마주한 변수로 꼽힌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 지배구조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한 데 이어 연일 은행장 인사 절차의 독립성과 투명성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지주 중심으로 이뤄지던 후보 추천과 평가 과정에서 은행 이사회의 역할을 강화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이번 연말 인사에서는 현직 행장들에 대한 검증도 한층 엄격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9월23일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에서 자회사 최고경영자(CEO) 선임 절차에 대해 “특정 계파나 친소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능력에 기반한 적임자를 선별하는 절차로 운영돼야 할 것”이라며 “자회사의 임원후보추천위원회가 실질적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해달라”고 말했다. 전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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