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일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취임 후 첫 경제현안간담회에서 퇴직연금 제도 개선을 주요 안건으로 다루면서 정부안 마련을 위한 부처 간 조율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 ▲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던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논의가 새 경제팀 출범을 계기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10월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을 발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번 방안에는 올해 2월 노사정(노동자·사용자·정부)이 합의한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와 퇴직급여 사외적립 의무화 등의 세부 추진 방향이 담긴다.
정부는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고 도입 의무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근로자의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 부총리는 27일 첫 경제현안간담회를 주재하고 전기차 산업 정책방향과 퇴직연금 제도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 등이 참석했다.
경제현안간담회는 이 부총리가 취임 전부터 부처 간 이견이 크고 파급력이 높은 현안을 신속하게 조율하기 위해 운영하겠다고 밝힌 협의체다.
취임 닷새 만에 이를 가동하고 퇴직연금 개편을 첫 안건으로 다룬 것은 새 경제팀 출범과 함께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행보로 풀이된다.
퇴직연금 개편은 제도를 소관하는 고용부와 금융정책·감독제도를 담당하는 금융위 등 여러 부처의 협의를 필요로 한다. 기금 운영 주체와 금융회사의 참여 방식, 자산운용 규제와 가입자 보호장치 등을 함께 정해야 하는 만큼 부총리 주도의 정책 조율은 제도 설계에 속도를 붙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이번 간담회 논의를 바탕으로 부처 간 추가 협의와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 방침을 확정하기로 했다.
제도 설계의 밑바탕이 될 실무 논의는 상당 부분 진행됐다.
김영훈 장관은 29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사정과 전문가가 참여한 실무작업반 논의를 거쳐 기금형 퇴직연금 설계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전문성과 건전성을 갖춘 수탁법인이 적립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고 가입자 이익을 우선하도록 제도를 설계하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재정경제부는 이날 관계부처 합동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을 이르면 다음 달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안이 구체화되면 금융회사들도 기금 운영 방식과 참여 요건에 맞춰 사업 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금형 도입으로 적립금 운용을 결정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금융회사들이 고객과 운용자금을 확보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현재 계약형 퇴직연금에서는 기업이 금융회사와 계약을 맺고, 기업이나 근로자가 적립금 운용 방법을 정한다. 특히 확정기여(DC)형은 근로자가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예금·펀드 등의 상품 가운데 투자 대상을 직접 선택한다.
기금형에서는 이러한 운용 판단을 별도 수탁법인이 맡는다.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모아 투자 비중과 운용전략을 정하고 전문 운용기관을 선정한다. 개별 근로자가 상품을 고르는 부담을 줄이면서 자금을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해 수익률을 높이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부는 기존 계약형을 유지하면서 기금형을 함께 운영하는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기업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기존 영업에 더해 수탁법인 설립에 참여하거나 기금의 자산운용을 위탁받는 등 사업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다만 금융회사들이 어떤 역할로 참여할지를 놓고는 이해관계가 엇갈려 정부안 발표 이후에도 조율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공단의 참여 범위를 둘러싼 이견은 세부안 마련이 늦어진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국민연금의 운용 역량을 활용해 수익률을 높이자는 주장과 민간 금융회사의 사업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공공형 기금 운영에 참여하는 데 더해 다른 기금의 자산운용을 위탁받는 외부위탁운용관리(OCIO)까지 수행할지에 따라 민간 금융회사들의 사업 기회도 달라질 수 있다.
김 장관은 29일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정해진 정부 방침은 없다”며 “사회적 합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수탁법인 인가 방식은 민간 금융회사 사이에서도 이해관계를 가른다. 일부 대형사에 먼저 인가를 내주는 방안이 검토되면서 중소형사들은 뒤늦게 진입하면 가입 사업장과 운용자금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 ▲ 정부는 이르면 10월 관계부처 합동 퇴직연금 기능 강화 방안을 발표한다. 사진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
이러한 의견을 수렴할 퇴직연금사업자 간담회는 정부의 개편 방향 발표 이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당초 10월2일로 예정됐던 간담회는 최근 다시 연기됐다. 향후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정부는 애초 7월까지 세부 제도 설계를 마무리하고 연내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사업자 간담회가 9월 초에서 중순으로, 다시 추석 이후로 미뤄지는 등 후속 일정은 계획보다 늦어졌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있어 정부안 발표 이후 입법에 쓸 수 있는 시간은 넉넉하지 않다. 새 경제팀의 추진 의지가 실제 제도 도입으로 이어지려면 개편 방향 발표에 이어 사업자 의견 수렴과 쟁점 조율도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퇴직연금 제도개선 방향을 발표하기 위해 막바지 조율을 진행하고 있다”며 “발표 이후 퇴직연금 사업자들에게 내용을 설명하고 필요한 의견을 듣는 간담회를 조속히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해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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