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T 이사회가 사외이사 윤리강령에서 '인사·사업·투자 청탁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정기적으로 자기점검을 하도록 한 것을 두고 회사 안팎에서 '어쩌다 저 지경까지 됐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 서울 광화문 KT 사옥 모습. <연합뉴스>
KT 이사회는 "사외이사의 독립성과 윤리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사회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 이사회 보도자료에 따르면 KT 이사회는 사외이사 윤리강령을 개정했다. "사외이사는 회사의 인사·사업·투자 등과 관련해 공정성 또는 독립성을 저해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또 사외이사들에게 반기마다 '사외이사 윤리실천 자가점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도록 했다. KT 이사회는 "윤리강령 준수 여부를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준법과 윤리에 기반한 선진화된 이사회 문화를 정착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사외이사 위임 계약서도 손질했다. 사외이사는 법령과 정관, 기업지배구조헌장, 사외이사 윤리강령 등 관련 규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아울러 사외이사가 독립성 또는 윤리성 관련 규정 준수 의무를 위반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이사회 결의를 거쳐 경고, 이사회 및 위원회 출석·심의 참여·의결권 미행사 권고, 사직 권고 등의 조치를 할 수 있게 했다.
김용헌 KT 이사회 의장은 보도자료에서 “새로운 이사회 출범과 함께 법령 준수는 물론 개별 이사의 윤리의식을 고양시킴으로써 보다 책임감 있는 이사회 운영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이번 제도 개선을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사외이사가 회사의 인사·사업·투자 등과 관련해 공정성 또는 독립성을 저해하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인사·사업·투자 특혜 등의 청탁을 하거나 압박을 하지 말라는 것이니, 사외이사라면 당연히 해서는 안 되는 거다.
KT 사외이사 정도면, 자신의 언행이 청탁이나 압박에 해당하지 않는지, 그래서 관련 법률에 위배되거나 사회적으로 형성된 공정 잣대에 어긋나지 않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
절대 그런 언행을 하면 안되지만, 혹시 실수나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했다면, 책임을 지고 스스로 즉시 사외이사에서 물러나거나 이사회 회의 참석을 자제하는 양심도 갖고 있어야 한다.
따로 써 붙여 놓고 외우라고 할 정도의 특별 요구 조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상식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외이사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최소한의 윤리(도덕) 수준이기도 하다.
굳이 어딘가에 써붙이거나 강령·규정에 명시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KT 이사회가 사외이사 윤리강령과 사외이사 위임 계약서 등에 이를 따로 명시했다. 또한 이렇게 한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표하기까지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KT 사외이사들의 '상식'과 '윤리' 수준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사외이사들이 상식과 윤리에 어긋나는 언행을 얼마나 했으면, 오죽했으면, 저렇게 했을까 여기게 만든다.
물론 말이 안된다. KT 사외이사들은 정부 고위 관료, 대학 교수, 판·검사,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 대기업 경영인 등의 경력을 가진 인사들로 구성된다. 사회적으로 저명하고 똑똑한 인사들을 헤드헌팅 회사의 추천과 평판 조회 등을 거쳐 선임한다.
당연히 '가방끈'도 길다. 고학력자란 뜻이다.
그동안 있었던 사외이사들의 비상식적·비도덕적 행태에 대해 이사회 이름으로 반성문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공표한 것을 보면, 이렇게 이해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일 수도 있다.
다시는 그런 비상식적·비도덕적 언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약속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이라면 KT 사외이사들이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고 볼 수 있으니 다행이고, 적극 응원한다.
KT에는 이른바 '오너'(총수)가 없다. 지배구조상으로는 '국민 기업' 모양을 갖고 있다.
따라서 경영진은 물론 이사회가 제구실을 하는 게 다른 어느 기업에서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경영진 감시·견제 의무와 권한을 가진 사외이사들의 상식과 윤리 기준이 다른 어느 기업에서보다 엄격해야 한다.
한 KT 전직 최고경영자는 재직 시절 기자와 만나 "사회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고 있는 분들이 사외이사로 선임돼 지켜봐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가 말하는 '어른' 기준은 높은 상식 수준과 윤리 기준을 포함한다.
전례로 볼 때, KT 사외이사들이 이사회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갖지 못해 청탁을 일삼는 등 처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는 순간, KT 이사회는 '적폐' 집단으로 전락하고, KT는 휘청거렸다.
구현모 전 사장 시절 자사주 교환 방식의 전략적 제휴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이 KT의 1대 주주(8.07% 소유)로 올라서긴 했지만, 경영권을 행사할 정도는 못된다. 국민 연금(7.54%)이 2대주주다.
앞서 KT 민영화 추진 당시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통신정책을 담당하던 국장은 기자에게 "KT가 민영화 뒤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이사회가 경영진을 감시·견제하고, 노동조합이 조합원 일터 보호 차원에서 이사회의 경영진 감시·견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기능이 동시에 잘 수행돼야 한다. 언론 역시 이 부분을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른바 '3발 이론'이다. 경영진, 이사회, 노동조합이란 세 발이 각각 굳건하게 버텨주며 서로를 견제해야 KT란 솥이 넘어지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식과 윤리 기준이 엄격해야 한다. 상대를 감시·견제하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떳떳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외이사들은 이 부분에서 스스로에게 더 엄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그러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 때마다 KT는 진짜 '주인 없는 기업' 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권을 잡은 쪽이 KT를 전리품 취급하며 통신 문외한 '낙하산 CEO'를 보내고, 그를 통해 인사 청탁을 하고 사업 기회를 유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최고경영자의 사법 리스크로 번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 정권이 KT를 전리품으로 취하기 위해 전 정권에서 선임된 최고경영자를 우악스럽게 쫓아내는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KT 경영은 단절됐고, 최고경영자 자리가 몇 달씩 공석이 되기도 했다.
이사회가 쓴소리를 내거나 권한을 행사해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며 낙하산 CEO를 환영하는 카펫을 깔아주기도 했다. 이석채 전 회장 때는 경쟁업체 SK텔레콤 계열사의 이사 전력이 걸림돌이 되자 정관을 개정해 취임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낙하산 CEO가 정치권의 '빨대' 구실을 하며 인사 청탁을 받고 사업 기회를 넘겨주는 등의 행위를 해도 막지 않았다. 견제·감시 의무가 있고, 막을 권한도 있었지만, 눈감았다.
정치권 바람을 타기도 했다.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KT 사외이사로 들어왔고, 정권이 바뀐 뒤에는 이들의 부적절함을 명분으로 새 정권 인사들이 사외이사 자리를 넘보기도 했다.
이게 경영진과 사외이사들의 '도덕적 해이'로 이어지기도 했다. '다들 빼먹는데 나만 고고하게 굴 필요 있나' 식으로 KT 피를 빠는 행렬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도 일부 사외이사들의 '셀프 연임' 의혹이 불거졌다. 일부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상대로 인사 청탁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 청탁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사외이사는 본인의 사외이사 자격이 상실될 줄도 모르고, 차기 최고경영자 선임 절차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하기도 한 게 뒤늦게 드러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 KT에선 비일비재했다.
KT 사외이사들이 그동안 제구실을 못한 것은 물론 도덕적 해이 행태까지 보였던 것에 이사회 이름으로 반성문을 쓴 것이라면, KT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앞서 KT 민영화 당시 한국전력의 통신사업을 총괄하던 임원은 기자와 만나 "KT가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30년은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그 시점이 몇 년 앞당겨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기도 한다.
반면 혹시라도 KT 사외이사들이 비상식적·비윤리적 행태의 기준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그런 언행을 하고도 버티자, 경고 내지 징계에 나설 근거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외이사들의 상식과 윤리 수준이 정기적으로 체크리스트를 통해 점검을 받아야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허접하다면, 도덕적 해이 행위를 해놓고도 윤리강령이나 이사회 규정이나 조항을 들먹이며 물러나지 않고, 나아가 이사회 회의와 위원회에 출석해 의결권 행사를 고집하기까지 한다면, 윤리강령과 이사회 규정을 아무리 촘촘하게 개정해도 사외이사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덩달아 KT 앞날은 여전히 어두울 수밖에 없다.
전례로 볼 때, '박윤영 KT'가 출범 당시 선언처럼 본질 경영에 집중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사외이사들이 먼저 바로 서야 한다. 사회 통념 수준의 상식과 윤리 기준이 작동될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 역시 거듭나야 한다.
KT 민영화 당시 밑그림대로 '국민 기업' 취지를 살리고 '통신 종가'의 위상을 지키며 성장하려면, 경영진·이사회·노동조합이란 세 발이 굳건히 버텨줘야 한다. 한쪽이라도 부실하거나 제 기능을 못하면 KT란 솥은 조그만 외부 환경 변화나 압력에도 흔들리거나 엎어질 수 있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