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73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내 축구장 부지에 자리잡은 연세목장 전경. <연세유업> |
[비즈니스포스트] 연세유업은 한국전쟁 후 국제사회로부터 기증 받은 젖소 10마리로 출발했다.
60년이 훌쩍 지난 현재 연세유업은 이제 개발도상국의 자립을 지원하는 위치까지 성장했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역사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연세유업에 따르면 회사는 최근 헤퍼코리아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네팔 신둘리 지역에서 추진하는 '한-네팔 낙농실습훈련프로그램(Korea-Nepal Dairy Training Program·KNDT)'과 '꿈 장학금' 사업을 지원했다.
연세유업과 헤퍼코리아의 협력은 올해로 3년째다. 두 기관의 인연은 196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국제개발 비영리기관 헤퍼인터내셔널은 연세대학교에 젖소 10마리를 기증했다. 박병호 연세대학교 농과대학 교수는 미국 유학 시절 헤퍼 프로젝트를 이끌던 감리교 목사 트락몰튼과 인연을 맺었고 이를 계기로 젖소 지원이 이뤄졌다.
헤퍼인터내셔널은 빈곤 국가와 지역사회에 가축을 지원해 주민들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도록 돕는 국제 구호단체다. 단순히 식량이나 생필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가축 사육기술을 전수하고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증받은 젖소는 연세대학교 교내 목장에서 사육돼 5년 만에 30마리로 늘었다. 연세대학교는 1967년 농업개발원을 설립해 우유 생산을 본격화했고 1972년 첫 '연세우유'를 출시했다.
현재 연세유업은 흰우유와 두유, 발효유, 가공유, 디저트, 음료, 케어푸드, 건강기능식품 등을 생산하는 종합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2025년 매출은 약 3800억 원으로 국내 주요 유가공업체 가운데 6위권 규모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연세대학교가 헤퍼인터내셔널로부터 젖소 10마리를 기증받은 1962년은 정부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원조를 바탕으로 국가가 산업화를 추진하던 시기에 연세유업도 낙농사업의 첫발을 뗀 것이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로부터 식량과 의약품, 농업기술, 가축 등을 지원받으며 전후 복구를 시작했다.
당시 국제사회의 원조는 국민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화의 밑거름이 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해외 원조와 차관, 대일청구권 자금 등을 바탕으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제조업 기반을 키웠다.
특히 1968년 착공한 포항제철은 중화학공업 육성의 상징으로 꼽힌다. 이후 조선과 자동차, 전자 등 수출산업이 성장하면서 한국은 세계적 제조업 국가로 도약했다.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더 이상 원조를 받는 나라가 아니라 원조를 제공하는 국가가 됐다.
1991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설립해 개발도상국 지원을 본격화했고 2009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 ▲ 스리자나양과 젖소 ‘드림’이가 출산한 첫 번째 송아지 ‘꿈’. <연세유업> |
한국은 세계 최초로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연세유업이 헤퍼코리아와 함께 네팔의 낙농기술 교육과 장학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이러한 한국의 발전 과정을 기업 차원에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시작한 기업이 다시 개발도상국의 자립을 지원하는 '원조의 선순환'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연세유업은 2024년부터 헤퍼코리아와 함께 네팔 신둘리 지역에서 한국-네팔 시범낙농마을 조성과 농축산 기술교육, 교육 인프라 개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5년에는 소녀교육장학금과 헤퍼 마을도서관 2호 조성에도 참여했고 올해는 KNDT와 꿈 장학금 사업에 후원금을 지원한다.
KNDT는 한국 농업고등학교 교육 시스템을 모델로 만든 전문 낙농교육 프로그램이다. 네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낙농 이론과 현장실습을 제공해 지속가능한 낙농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2025년 12월 첫 교육생을 배출했으며 축사 위생관리와 사양관리, 젖소 건강관리 등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교육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축사 건설을 포함한 실습 중심 교육환경도 단계적으로 확대한다.
꿈 장학금은 2022년 진행된 '네팔로 한국형 젖소 101마리 보내기' 캠페인을 통해 젖소를 지원받은 농촌 학생들의 학업을 돕는 사업이다.
연세유업에 따르면 대표 사례인 신둘리 지역 학생 스리자나양은 한국에서 전달된 젖소 '드림'이를 통해 가정의 소득이 안정되면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후 드림이가 낳은 첫 송아지는 이웃 농가에 기증되기도 했다.
이번 지원은 기업의 설립 역사와 정체성을 현재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활동으로 연결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기업들이 기업의 역사와 연계한 사회공헌 활동을 확대하는 가운데 연세유업은 설립의 출발점이 된 헤퍼인터내셔널과 다시 협력하며 성장 서사를 사회적 가치 창출로 확장하고 있는 셈이다.
박상면 연세유업 대표이사 사장은 28일 열린 ‘나눔의 동행을 이어가는 후원금 전달식’에서 “앞으로도 받은 도움을 다시 사회에 돌려주는 나눔의 선순환을 지속하며 헤퍼코리아와 뜻깊은 동행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