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6일(현지시각) 프랑스 리옹시내에 설치된 온도계가 38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하반기에 ‘슈퍼 엘니뇨’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엘니뇨가 발생하면 세계 기온은 오르게 되는데 이보다 더 강한 슈퍼 엘니뇨가 발생하면 폭염이 올 공산이 커진다.
이미 5월부터 유럽, 북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기온이 나타나고 있어 한여름 펄펄 끓는 '가마솥 더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 갈수록 높아지는 슈퍼엘니뇨 가능성
엘니뇨는 적도 부근 동태평양 일대 해수면 온도가 수 개월 이상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31일 세계기상기구(WMO), 미국 해양대기청(NOAA) 등 주요 기상기관들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관측을 진행한 결과 태평양 수온이 높아지고 있어 하반기에는 엘니뇨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현재 수온이 평년보다 심하게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평년보다 수온이 2도 이상 높아지면 이는 ‘슈퍼 엘니뇨’로 분류된다.
여기서 평년치란 세계기상기구 지침에 따라 특정 표준이 되는 30년 기간을 설정해 월별 평균 온도를 구한 수치를 말한다. 현재의 평년치는 최근 집계가 완료된 1991~2020년 평균값을 적용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현지시각 5월12일 "올해 엘니뇨는 수온이 평년치보다 3도 높아져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수온 상승률이 2도를 넘겼던 1877년 슈퍼 엘니뇨 수준의 대재앙이 찾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1877년 슈퍼 엘니뇨는 극한 폭염과 가뭄을 불러와 전 세계 식량 생산을 저해해 수백만 명이 넘는 직간접적 사망자를 냈다. 당시 한반도에도 기근이 찾아와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유랑민이 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정확한 피해 집계는 되지 않았으나 고종실록을 보면 유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한양에 몰려들어 진휼소(구호소)가 마비될 정도였다고 나와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기근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3~4%가 사망했다고 전했다.
올해 발생할 슈퍼 엘니뇨에 따라 나타나는 해수면 온도 상승이 더 높은 만큼 절대적 위험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문가 경고가 나온다.
딥티 싱 미국 워싱턴주립대 환경학부 부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해수면 온도가 따뜻해진 데 따라 극단적 기상 현상이 더 극심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싱 부교수는 “이번 슈퍼 엘니뇨로 인한 가뭄 위험 증가는 여러 지역의 식량, 물, 경제 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며 “이는 상호 연결된 사회경제 시스템 전반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연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5월에도 펄펄 끓는 유럽과 북미 날씨
엘니뇨 발생 확정 발표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전 세계는 극한 폭염을 겪고 있다. 영국 기상청은 5월25일(현지시각) 런던 인근 교외의 기온이 34.8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5월 말 런던의 평균 기온은 통상적으로 20도 내외를 오가는데 이보다 10도 이상 높아진 것이다. 런던의 한여름 최고 기온 기록이 33.3도였는데 이보다도 높았다.
같은 날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 서유럽 국가들도 36도가 넘는 극한 폭염을 겪었다.
27일(현지시각)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프랑스 기상청은 자국 일부 지역 기온이 39도를 넘어갈 수도 있다고 예보했다. 전날 프랑스 리옹의 낮 최고 기온은 38도를 기록했다.
유럽 기상 전문가들은 이번 5월 폭염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스티븐 딕슨 영국 기상청 대변인은 CNN을 통해 “5월에 간혹 따뜻한 날씨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프 카수 프랑스 기후학자는 르몽드와 인터뷰에서 “1979년부터 2025년까지 기후 조건에서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할 확률은 1천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라며 “산업화 이전에는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서양 반대편 미국에서는 올해 3월부터 폭염이 시작돼 5월까지 지속되고 있다.
기후단체 클라이밋센트럴에 따르면 3월 기준 미국 약 1500여 개 지점에서는 최고 기온 기록이 일제히 경신됐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한여름철에나 관측되는 40도가 넘는 고온 기록이 나오기도 했다.
미국 기상청에 따르면 5월 말인 현재까지도 캘리포니아주, 텍사스주, 루이지애나주 등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35도가 넘는 폭염이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미국 예일대는 올해 자국 폭염을 21세기에 발생한 가장 놀라운 기상 이변 목록에 등재하기로 했다.
| ▲ 25일(현지시각) 인도 뉴델리의 수영장에서 사람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연합뉴스> |
◆ 더위 더 심각한 아프리카와 아시아
유럽과 미국보다 아프리카는 이례적 더위가 더 심각하다. 올해 3월 아프리카 최남단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는 44도가 넘는 고온이 관측됐다.
남반구 절기상 3월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점인데도 한여름보다 심각한 폭염이 발생한 것이다.
세계자연기금 남아공 지부의 제임스 리러 수석기후전문가는 성명을 통해 “남아프리카가 겪은 이번 극단적 폭염은 기후변화의 영향이 미래가 아닌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며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응해 행동할 수 있는 여지가 남은 지금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아공 외에도 서아프리카 말리,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도 35도가 넘는 이례적 고온 기록이 나왔다.
현지시각 5월8일 중동지역의 대표적 매체 알자지라는 이례적 폭염 현상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 남아시아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5월27일(현지시각) 기준 일 최고 기온이 43도를 넘었다.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와 방글라데시의 다카도 같은 날 최고 기온 37도를 기록했다.
안잘 프리카쉬 인도 공공정책연구소 연구책임자는 알자지라에 “인도는 이례적으로 일찍 찾아온 강렬한 폭염을 겪고 있다”며 “엘니뇨와 이와 유사한 기상 현상이 지속되며 냉각 효과가 억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상 폭염 해결책은 결국 탄소 감축 통한 기후대응뿐"
전문가들은 결국 기온 상승이 해결되지 않는 한 슈퍼 엘니뇨와 이에 따른 기록적 폭염은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런던의 프레데리케 오토 기후과학 교수는 기자들에 보낸 서한을 통해 “과학적 사실은 매우 명확하다”며 “기후변화가 폭염을 더 뜨겁고, 더 길게, 훨씬 더 빈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토 교수는 “우리가 지금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에 있어 다소 진전은 있었으나 그 속도는 충분히 빠르지 않다”며 “우리가 전 세계적 탄소중립을 달성할 때까지 기온은 앞으로도 계속 오르며 기록이 깨질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