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기선 HD현대 대표이사 회장(왼쪽)이 미국 내 합작조선소 건립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그동안 한미 조선협력과 관련한 행보로 주목을 받았던 한화그룹의 김동관 수석부회장(오른쪽)과의 미국 조선시장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
그동안 미국 현지 조선사와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간접진출 방식에 주력했다면, 직접 생산거점을 확보해 미국 함정·상선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재계 라이벌인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이 기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하는 전략으로 한미 조선협력에서 한발 앞서가는 모습을 보인 가운데 정 회장이 HD현대의 조선 기술과 생산체계를 미국 신규 조선소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꾀하는 것으로 읽힌다.
23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가 HD키윗조선 건립으로 미국 현지 직접투자와 기존 조선소와의 기술협력을 병행하는 전략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HD현대는 현지시각 22일 미국 건설·엔지니어링·인프라 기업 키윗과 조선 사업 합작법인 'HD키윗조선(HD KIEWIT SHIPBUILDING)을 설립하는 계약을 맺고 2029년 가동을 목표로 조선소 건립에 나서기로 했다.
신규 조선소를 통해 미국 군함과 상선 신조 사업을 추진하고, 향후 미국 내 다른 조선소에 선박 블록과 기자재를 공급하는 사업도 검토한다. 나아가 크레인 등 항만 인프라 사업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이번 투자에서 주목할 대목은 정 회장이 기존 조선소를 인수하는 대신 새로 건립하는 '그린필드(해외 자본이 투자 대상국의 토지를 직접 매입하여 공장이나 사업장을 짓는 방식의 투자)' 방식을 선택했다는 점이다.
HD현대는 그동안 미국 조선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현지 시장 진출 기반을 마련해왔다.
함정 분야에서는 미국 최대 방산 조선업체 헌팅턴잉걸스인더스트리(HII), 상선 분야에서는 에디슨슈에스트오프쇼어(ECO)와 파트너십을 맺고 선박 공동건조, 기자재 공급, 건조 기술 이전 등을 추진했다.
| ▲ HD현대중공업 경영진들이 현지시각으로 지난 2025년 4월22일 미국 미시시피주에 위치한 잉글스 조선소 현장을 방문한 모습. <헌팅턴잉글스> |
에디슨슈어스트오프쇼어와는 2028년까지 미국에서 중형급 컨테이너 운반선을 공동으로 건조하기로 합의하면서 HD현대가 선박 설계와 기자재 구매대행, 건조기술 지원, 일부 블록 제조 등을 맡기로 했다.
그러나 이 같은 협력은 기존 미국 조선소의 생산시설을 활용하는 방식인 만큼 HD현대가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산능력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 HD키윗조선 설립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HD현대가 자체적으로 축적한 선박 설계·건조 기술과 조선소 운영체계를 미국에 직접 적용할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정 회장이 2021년부터 추진해온 스마트 조선소 구축 사업인 '미래조선소(FOS·Future of Shipyard)' 모델을 미국 조선소에 처음 적용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FOS는 디지털 트윈,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의 기술을 조선소 전 공정에 적용해 생산성과 작업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HD현대의 핵심 디지털 전환 사업이다. 2030년 최종 3단계인 '지능형 자율 운영 조선소'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HD현대는 2023년 1단계인 '눈에 보이는 조선소' 구축을 완료했다. 조선소의 공정과 설비 정보를 디지털 공간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구현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 안으로 2단계인 '연결·예측 최적화된 조선소' 구축을 완료할 예정이다.
3단계가 완성되면 AI와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 공정과 설비가 스스로 최적의 작업 방식을 판단하는 자율 운영체계를 갖추게 된다. HD현대는 FOS 프로젝트 완료에 따라 생산성 30% 향상, 선박 건조기간 30% 단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FOS 구축의 핵심 기반 가운데 하나는 HD한국조선해양이 지멘스디지털인더스트리소프트웨어와 개발하고 있는 '선박 설계·생산 일관화 플랫폼'이다. 양사는 2028년 현장 적용을 목표로 선박 설계와 생산 과정의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하는 통합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정 회장으로서는 HD현대가 국내에서 축적한 스마트 조선소 기술을 미국 현지에 적용함으로써 기존 미국 조선소와 생산성 측면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기회를 잡은 셈이다.
그동안 미국 조선업계가 숙련 노동인력 부족과 높은 생산비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동화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생산성 개선은 핵심 경쟁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HD키윗조선소 건립으로 계기로 한미 조선협력에도 더욱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HD현대는 2025년 8월 한미 관세합의에 따른 양국 간 조선산업 협력을 위해 한국산업은행, 미국 사모펀드 운용사 서버러스캐피탈과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협약의 주 내용은 3자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조선소 인수·현대화 △공급망 강화를 위한 기자재 업체 투자 △자율운항·AI 등 첨단 조선기술 개발 등을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 ▲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오른쪽)이 현지시각으로 2025년 8월26일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필리조선소에서 열린 ‘국가안보 다목적 선박’ 3호선 ‘스테이트 오브 메인(State of Maine)’호 명명식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 |
한화그룹은 2024년 12월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필리조선소를 1억 달러(약 1326억 원)에 인수한 뒤 생산능력을 높이기 위해 50억 달러(약 6조6300억 원)를 투입, 연간 선박 건조능력을 기존 1~1.5척에서 최대 20척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필리조선소는 한화그룹의 해운 계열사인 한화쉬핑으로부터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을 수주하고, 지난 7월에는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이 발주한 해상 미사일 시험 계측선(MRIV) 2척 건조 사업에도 참여하는 등 건조 선종을 넓히고 있다.
또 최근에는 미국 군함 건조 조선소 오스탈USA 인수를 위해 호주 오스탈 본사와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도 있다. 오스탈USA를 거점삼아 미국 군함시장 공략에 더욱 속도를 내겠다는 복안이다.
반면 HD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미국 해군의 차세대 군수지원함 개념설계 사업 입찰에서 고배를 마셨다. 한화그룹과 삼성중공업은 각각 미국 현지 설계업체와 협력해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데 성공했다.
HD현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HD현대는 한미 조선협력인 '마스가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미국 조선산업 재건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HD키윗조선을 시작으로 향후 다양한 영역으로 협력 범위를 확대해 미국 조선업의 신뢰할만한 파트너로 거듭나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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