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아무리 요즘 인공지능(AI)이 똑똑하다지만 매수, 매도 버튼을 누르는 것은 사람이다. 내 돈은 결국 내가 굴려야 한다. 학창시절 수학은 포기했지만 재테크는 포기 못한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 같은 투자 문외한을 위해 손쉬운 재테크 가이드를 써 보기로. 이코노미스트부터 펀드매니저, 프라이빗뱅커(PB)까지 금융 전문가들을 찾아가 재테크 입문자의 시선으로 질문을 던지기로. 누굴 만나도 주식 얘기를 하는 2026년, 그들의 입을 빌어 투자 이야기를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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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 반도체주가 증시 상승을 주도하는 가운데 투자자들 사이에서 자산배분의 필요성과 방법을 둘러싼 고민이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 |
[비즈니스포스트] 얼마 전 한 증권사 관계자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최근 투자자들이 어떤 질문을 제일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요즘은 고객들은 너무 똑똑하다”며 “질문부터 달라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어떤 종목을 사야 하냐고, 좋은 종목 추천해달라고 묻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한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이번 회의에서 어떤 기조를 보일지, 일본의 금리 인상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물가 흐름은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묻고 채권이나 달러 같은 자산을 포트폴리오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는 투자자들이 늘었다고 했다.
특히 요즘에는 한국 증시든 미국 증시든 반도체분야의 몇몇 주도주가 시장 상승을 이끄는 장세가 이어지다 보니 포트폴리오, 즉 자산배분에 관한 고민을 많이 접한다고 한다.
온라인 재테크 커뮤니티에서도 같은 주제의 고민과 조언이 심심찮게 보인다.
우연히 뜬 유튜브 쇼츠에서 “금융자산이 2억 원 이하면 분산투자 같은 이야기 하지 마라”는 다소 극단적 주장을 펼치는 전문가도 봤다.
극단적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사실 기억에 남는 말이기도 했다. 나부터도 잘 오르는 주식에 내 모든 자산을 ‘영끌’해 재테크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유혹을 받으니까.
월급을 아껴 투자하는 평범한 직장인들 가운데는 금융자산이 수백만 원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 규모의 재테크 자산도 한국 주식, 미국 주식, 채권, 금, 달러, 가상화폐까지 나눠 담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이것밖에 안 되는 돈인데 수익률이라도 높게 가져가야 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닐까.
이 같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됐다.
‘평범한 월급쟁이 투자자들도 자산배분을 해야 할까.’
그래서 정우창 NH투자증권 압구정WM센터 재경1본부 부장에게 물었다.
“현명한 재테크를 위해서는 자산배분이 필수라는데, 요즘 같은 시장에서도 ‘분산투자’를 해야 하나요?”
◆ 교과서적 ‘쪼개기’에서 벗어나기, 이유 있는 자산배분이 필요하다
정 부장의 대답은 명확했다. '역시나' '당연히 그렇다'였다.
다만 그는 자산배분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교과서적으로 소비되고 있다고 봤다. 정 부장은 "분산을 위한 분산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식당을 예로 들었다. A식당이 더 맛있고 가격도 싸고 서비스도 좋다면 굳이 그보다 못한 B식당을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자산을 담는다면 기존 자산과 비교해 다른 장점이 있어야 한다. 현재 주가가 더 저평가돼 있거나 성장성이 높거나 배당을 많이 주거나 시장이 흔들릴 때 방어 역할을 하는 식이다.
정 부장은 "자산배분을 해야 한다는 이유만으로 기대 수익률이 낮은 자산까지 억지로 담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금융자산 규모가 크지 않은 투자자라면 더욱 그렇다고 봤다.
채권, 금, 달러, 리츠, 배당주, 커버드콜 ETF까지 모두 조금씩 담으려 하기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자산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다만 한 종목에 모든 돈을 집중하는 투자는 경계했다.
정 부장은 "한 종목이나 분야에 자산을 전부 투자하는 이른바 ‘몰빵’을 하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때 대응할 방법이 없다"며 "분산은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틀렸을 때를 대비해 선택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분산투자로 안정적 수익을 추구한다는 말은 곧 내가 틀렸을 때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퇴로를 만드는 일인 셈이다.
◆ 세제혜택 상품을 적극 활용하라, 주식 핵심 포트폴리오는 역시나 ‘반도체’
| ▲ 구글과 AMD, 중국 BYD를 비롯한 대형 고객사가 이르면 2028년 생산을 목표로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활용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 반도체 파운드리 홍보용 사진. <삼성전자> |
그렇다면 평범한 직장인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자산배분은 무엇일까.
정 부장은 우선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세액공제와 비과세 혜택이라는 확실한 수익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한국 주식과 미국 주식을 함께 가져가는 전략이다.
정 부장은 "한국 증시에만 투자했던 사람이라면 미국 주식 비중을 일부 가져갈 필요가 있고, 미국에만 투자했던 사람이라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한국 반도체 기업에도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고 바라봤다.
지금은 인공지능(AI) 시대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단계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다. 하지만 AI 산업이 플랫폼과 서비스 중심으로 진화하면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더 큰 수혜를 볼 가능성도 있다.
정 부장이 한국 주식과 미국 주식을 함께 보라고 조언한 이유다.
현재 시점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가장 잠재력 높은 분야로는 역시나 반도체를 꼽았다.
정 부장은 현재 증시의 반도체 쏠림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평가할 것은 아니라고 봤다. 지금은 AI 기술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몰려오면서 새로운 인프라를 만드는 시기이기 때문에 그 중심에 있는 반도체가 가장 큰 수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 부장은 “현재 증시는 AI 시대의 핵심 자산이 반도체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며 “당분간은 이런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바라봤다.
그래서 한국 주식에 투자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을 높게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 증시에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한국 증시가 좋아질 것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기업 이익 성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두 기업의 비중을 지나치게 낮게 가져가는 것도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많이 오른 주가가 부담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고개를 저었다.
정 부장은 "주가가 얼마나 올랐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버는 돈과 비교해 현재 가치를 얼마로 평가받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투자 확대의 구조적 수혜를 받고 있는 만큼 여전히 매력적 자산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 부장은 구체적 수치를 예로 들었다. 미국 반도체기업인 엔비디아의 주가수익비율(PER)이 20배 안팎, 대만 TSMC가 30배 안팎 수준에서 평가받는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6~7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 주식이 취미인 전문가도 자산의 3분의 1은 미국 대표 지수에 투자한다
인터뷰 막바지에 정 부장에게 개인 포트폴리오를 물었다.
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정 부장은 "저는 주식 말고는 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인데 그래도 주식 자산의 3분의 1은 미국 대표 지수 펀드에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더 단순했다.
정 부장은 "제가 틀릴 수도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미국 증시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것이 증명된 시장인 만큼 내 확신에 모든 자산을 걸기보다 일부는 대표 지수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산배분이라는 단어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자산배분은 모든 자산군에 돈을 조금씩 나눠 담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자산을 담고, 왜 담고, 얼마나 담을지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 가장 유망한 곳에 과감히 투자하되 내가 틀릴 가능성도 함께 대비하는 것.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담을 이유가 있다면 담고, 미국이 AI 시대 다음 단계의 승자가 될 수 있다면 미국도 함께 가져가는 것.
정 부장의 말을 빌리면 자산배분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나누느냐'가 아니라 '왜 나누느냐'에 있다.
다음 편에서는 '찐부자'들은 무엇에 투자하고 무엇을 경계하는지, 초고액자산가들의 자산관리 원칙을 살펴본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