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정부가 2026년 들어 통상협상에서 '비관세 장벽'이라는 새로운 장애를 만났다.
2025년 '관세 장벽'을 넘기 위해 한미 관세협상에 총력을 다했고 타결의 성과를 냈다. 올해 유럽의 환경·공급망 규제에 더해 미국의 디지털 규제가 새로운 무역 장벽으로 부상하고 있어 정부가 어떤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오른쪽)이 2025년 7월2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과 면담을 갖고 한미 관세협상 진전과 산업 분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2일 정부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올해 정부는 '비관세' 영역 대응 역량 강화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앞서 우리 정부는 치열한 협상 끝에 한미 관세협상 최종 타결로 관세 인하와 한미 협력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올해까지 비관세 장벽 분야 협의가 이어질 예정이라 긴장을 늦추긴 어렵다.
특히 올해는 지난해 어느 정도 완성한 '관세 영역'에 이어 '비관세 영역'이 큰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테면 두 번째 '무역장벽'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먼저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통해 '비관세 장벽'을 쌓았다. CBAM은 EU로 수출하는 철강·알루미늄·시멘트 등 6개 품목에 생산 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만큼 인증서를 구매하도록 해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의 제품에 추가 비용을 부과하는 제도다. EU는 적용 품목을 자동차 부품, 냉장고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당장 올해부터 수출 가격에 이를 반영해야 하는데 가격 경쟁력 하락이 불가피하다.
EU는 또 올해 7월부터 기업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을 각 회원국 국내법으로 전환한다. 인권·환경 등의 분야에서 EU가 요구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거래 자체가 어려워지는 중대한 변화다.
'디지털 규제'도 정부가 넘어야 할 무역장벽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국회를 통과해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개정 정보통신망법(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한미 간 외교·통상 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미국 정부는 개정 정보통신망법을 이틀 연속 공개 저격했다.
미국 국무부는 31일(현지시각) 대변인 명의로 된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 정보통신망법을 두고 "미국은 한국 정부가 네트워크법(Network Act·개정 정보통신망법)을 승인한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법안은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사라 로저스 미국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도 3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한국의 네트워크법 개정안은 표면적으로는 명예를 훼손하는 딥페이크 문제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며 기술 협력을 위태롭게 한다"며 공개 비판한 바 있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폭력이나 차별을 선동하는 정보를 불법 정보와 허위·조작정보로 규정하고 정보통신망 내에서 이들 정보의 유통을 금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국내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주요 쟁점이었으나 미국은 이를 '빅테크 검열'로 바라본다.
개정 정보통신망법은 이용자 수, 매출액 등을 기준으로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를 정하고 고의나 중과실로 허위 정보를 유통해 손해를 입힌 경우 언론 등에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투명성 보고서' 등도 공개하도록 했는데 미국 행정부와 시민사회에서는 이를 한국 내 사업을 영위하는 구글·메타(페이스북)·엑스(X, 옛 트위터) 등 자국 빅테크 기업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 정부가 발표한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앞서 로저스 차관을 비롯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 고위급 관료들은 그동안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자국 빅테크를 조사하고 규제 입법을 추진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하는 빅테크 기업들의 로비 활동도 왕성하게 이뤄지고 있어 새해 한미 통상 분야의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디지털 규제'는 한미 통상 갈등의 새 뇌관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한국에서는 쿠팡 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플랫폼 규제안을 담은 법안이 발의되는 등 빅테크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반독점소위 청문회에서는 "한국의 온라인플랫폼법 등으로 미국 경제에 10년간 최대 5250억 달러(약 759조6750억 원)의 장기적 손실을 입을 것"이라는 분석 결과까지 제기됐다.
트럼프 1기 때 안보 수장을 지낸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달 23일 자신의 X에서 쿠팡 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한국이 미국 기술기업을 겨냥하며 트럼프의 노력을 훼손한다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아울러 관세 인상이나 비관세 장벽 등 전통적인 무역 규제가 아니더라도 국내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국의 보호무역조치 역시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달 22일 발표한 매출액 상위 1천 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6년 기업 경영 환경 인식 조사'에서 내년 글로벌 리스크 요인으로 응답자의 24.9%가 '보호무역 및 수출 장벽 확대'를 꼽았다. 이는 '환율 등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26.7%)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했다.
정부도 이러한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다만 아직 '비관세 장벽'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외교부는 지난달 2일 우리 기업의 수출·수주 지원을 위한 민관 합동 협의체인 '수출·수주 외교지원단'을 출범하고 김진아 외교부 2차관 주재로 관계 부처 및 경제단체가 참석한 제1차 회의를 개최했다.
수출·수주 외교지원단은 외교부를 중심으로 산업통상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농림축산식품부, 방위사업청과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다. 지원단은 재외공관의 수출·수주 전진기지화 추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다. 정부는 기업·현장과의 직접적 소통을 강화해 실효적 지원 방안을 모색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단장을 맡은 김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경제·통상 환경에서 현장밀착형 수출 지원을 위해서는 정부의 통합적 대응과 민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수출·수주 외교지원단을 통해 재외공관, 경제부처, 경제단체간 외교-정책-현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K-원팀' 지원 체계를 단단히 구축해 재외공관의 든든한 수출 지원자 역할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