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며 한반도 비핵화 전략의 변화를 예고했다. '대북 제재 완화'까지 언급하는 적극적 태도를 보였다.
완전한 비핵화 대신 핵 동결과 군축을 목표로 하는 '현실적 협상'으로 방향을 틀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노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6월 판문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8일 정치권과 외교가 움직임을 종합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이라고 발언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말레이시아, 일본, 한국 등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하려면 자신들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취재진 질문에 "그들(북한)은 실제로 많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며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nuclear power)"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한 적은 없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등을 위해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고 앞으로 핵 군축 및 동결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희망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거부하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 기존의 '빅딜' 대신 상대적으로 협상 진행이 쉽고 북한의 반발도 덜한 '스몰딜'로의 전환하는 것이다. 빅딜을 추구하다 '노딜'이 되는 것보다는 '스몰딜'이 낫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27일 YTN '뉴스ON'에서 "2019년 미국 워싱턴 조야에서는 '노딜이 스몰딜보다 낫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며 "그런데 현재는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됐고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으니 '현실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나은 것 아니냐', '그게 미국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동결이나 핵 군축을 위해 대북 제재 해제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 방문 직전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 자체가 북한에 신호를 보낸 것인데, 대북 제재 해제는 더 확신한 '당근'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7일(현지시각) 일본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서 미국이 무엇을 제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며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는 꽤 큰 사안이다.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이후 대북 제재 해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핵보유국' 인정과 '제재 해제 가능' 발언은 노벨평화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승훈 전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 부위원장은 27일 YTN라디오 '뉴스퀘어10AM'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에 굉장히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너희들을 핵보유국으로 어느 정도 인정해줄게'라고 하는 메시지를 조금씩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7월 담화에서 "우리 국가의 핵보유국 지위를 부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철저히 배격될 것"이라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야 미국과 대화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정상회담을 연다. 하지만 미중 무역갈등을 둘러싸고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 외교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반면 북미 정상회담은 실제 성과와 상관없이 개최 자체만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어 더욱 공을 들인다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북미회담이 실제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상은 최근 러시아·벨라루스 순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김 위원장과 '만나고 싶다'고 밝혔음에도 정작 북한 외교의 실무 책임자는 평양을 비운 셈이다.
▲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018년 10월10일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 귀빈실로 들어가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최 외무상이 없어도 북미 정상 간 만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북미 협상의 역사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관측이 많다.
최 외무상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차 북미 정상회담, 2019년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빠짐없이 참석한 북한의 손꼽히는 대미 협상 전문가다. 그는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깜짝' 북미 정상회동이 성사되는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 제안에 아무런 공식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최 외무상의 러시아 방문은 간접적으로 '거부' 대답을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정훈 교수는 "이전에 러시아와 벨라루스 방문 예정돼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만약에 이번에 북미 정상이 회동하는 부분을 최선희 외무상이 수행한다면 러시아 벨라루스 방문을 연기했을 것"이라며 "그렇지 않고 일정대로 갔다는 것은 이번 북미 회동에 대한 거절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덧붙여 김 위원장은 트럼프의 제안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중러 협력 강화로 제재 완화는 큰 유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승훈 전 전략기획 부위원장은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아직은 트럼프 대통령이 뭘 주겠다고 하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 북중러가 완전히 밀착되고 있다"며 "그래서 충분히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 입장에서도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은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러시아, 중국을 통해 제재 우회 효과를 보고 있다. 제재 완화나 경제 지원, 인도적 원조 같은 것은 이제 '새로운 친구들'로부터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셈이다. 실제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면서 식량과 에너지 등 경제적 지원을 받는 등 제재 완화에 크게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9월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미국이 비핵화 목표를 포기하면 만날 수 있다"면서도 "제재 풀기에 집착해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