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원전 사업이 계약 지연을 넘어 아예 백지화될 수도 있다는 국내 전문기관의 분석이 처음으로 나왔다.
오는 10월 체코 총선 이후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계약이 체결된다고 해도 유럽연합(EU)에서 넘어야 할 인허가 문제가 산적해 있어 한국이 공사 지연으로 손실을 볼 가능성도 제기된다.
▲ 체코 두코바니 원자력발전소 전경. < CEZ >
2일 국내 최초 에너지전환 분야 오픈플랫폼인 사단법인 에너지전환포럼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계약 금지 가처분 명령의 의미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체코 정부가 이번 원전 사업 계약 진행을 매우 허술하게 추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페트르 피알라 체코 총리는 2014년 법적 분쟁 끝에 취소됐던 테믈린 원전 사업과 관련해 당시 총리 과학수석보좌관과 교육부 장관으로 재임하고 있었다.
피알라 총리가 원전 건설 계약과 법적 절차에 대해 잘 알고 있음에도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이 예상됐음에도 매우 느슨하게 대응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두코바니 원전 건설비가 체코 세수의 20%를 넘는 상황에서 피알라 정부로서는 건설비를 조달하는 일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은 다른 이(EDF)의 칼을 빌려 위기를 모면한 '차도살인'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석 전문위원은 "동구권 국가에서는 총선을 위해 선거용으로 무리하게 원전 사업을 추진하다 막상 계약 체결에 직면해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체코에서 과거 취소됐던 테믈린 원전 사업을 추진할 당시의 정부 구성도 시민민주당(ODS)과 전통책임번영당(TOP09)로 지금의 피알라 정부와 사실상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두코바니 원전도 체코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다가 백지화됐던 과거 테믈린 원전 사례를 반복할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테믈린 원전 사업 역시 입찰에서 탈락했던 프랑스 전력업체의 계약 가처분 신청으로 지연됐고 그 뒤 체코 정권으로 무산됐다.
물론 체코 현지에서 에너지 확보가 시급한 데다 차기 정부의 여당으로 유력한 긍정당(ANO)에서도 현 정부의 원전 정책을 이어갈 의사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체코 정부가 넘어서야 할 EU 내 법적 절차는 '산 넘어 산' 형국인 상황으로 분석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우선 "EDF가 제기한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역외보조금규제(FSR) 위반 조사는 여전히 효력이 있다"며 "EC가 두코바니 계약 당사자들과 정부 기관에 관련 정보를 요청했으나 어느 곳에서도 적절한 답변을 여태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EC는 공공기관이 모회사나 정부로부터 받는 '무제한 보증'이 FSR 위반 항목중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한다"며 "EDF는 체코 두코바니 원전의 고정가격 조건으로 인해 공사비용 초과 시 한수원이 모회사 한전을 통해 정부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FSR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체코 두코바니 원전이 FSR 조사 대상이 아니라는 체코전력공사(CEZ)와 한수원의 반박 논리에도 허점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세즈남 즈파라비(SEZNAM ZPRAVY)를 비롯한 현지 언론을 인용해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FSR 면제를 받으려면 경쟁입찰이 아닌 정부간 협상이었야 한다"며 "체코 정부가 역내 기업인 EDF를 입찰에 참여시킨 이상 EC의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바라봤다.
또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원전 입찰이 FSR 발효 이전에 시작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발효 뒤 입찰 조건이 새로 제시됐기 때문에 EC가 이 사업을 규제 발효 이전 사업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분석됐다.
▲ 체코 원전 계약이 지연되는 것을 놓고 페트르 피알라 총리(사진)가 천문학적 원전 건설비가 부담스러워 프랑스 EDF의 계약 금지 가처분 신청을 빌어 위기를 모면한 '차도살인' 형국 가깝다고 에너지전환포럼은 분석했다.
CEZ가 체코 법원에서 가처분 금지 항고에서 승소하고 EC의 FSR 위반 심사를 통과한다고 해도 또 넘어야 할 EU 인허가 절차는 또 있다. 바로 EU의 기능조약(TFEU)이다.
기능조약이란 회원국들의 자국 기업 지원이 역내 불공정 경쟁 또는 시장교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 심사해 불허되면 해당 사업은 종결된다.
체코 정부는 두코바니 5호기에 대해 체코 정부가 CEZ의 자회사에 75억 달러를 대출하는 방안에 대해 2024년 4월에 기능조약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그 직전에 원전 계약을 기존 1기에서 2~4기로 수정해 두코바니 6호기에 대해서는 별도로 승인을 받아야 한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체코 정부가 EU의 각종 규제 요건을 방치한 채 계약을 체결했다면 한수원의 공사도 지연돼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이때 발생하는 손실은 모회사인 한전을 통해 전기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에너지전환포럼은 전문가와 시민사회, 산업계, 정치권 등이 뜻을 모아 결성한 사단법인 형태의 국내 최초 에너지전환 분야의 오픈 플랫폼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장, 임성진 전주대 행정학과 교수, 박진희 동국내 다르마칼리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