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4-07 13:3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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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3대 명품 플랫폼인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의 적자가 누적되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사진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3대 명품 플랫폼으로 불렸던 ‘머트발(머스트잇·트렌비·발란)’이 줄줄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수년간 누적된 적자로 경영 불안 조짐이 이어지던 가운데 ‘발란’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갔고 ‘머스트잇’마저 외부 자금 수혈에 나서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트렌비’ 역시 적자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세 플랫폼 모두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상태다.
7일 플랫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명품 플랫폼들이 적자 누적에 따라 추가 자금 투자 없이는 경영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회생법원은 최근 발란의 기업회생 절차 개시를 결정했다. 수년간 자본잠식과 적자 누적에 시달려온 발란은 결국 자금 조달에 실패하며 회생 절차를 택했다.
발란은 2021년 4분기에만 2천억 원에 달하는 거래액을 기록하며 ‘폭풍 성장’을 일궜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플랫폼 운영비와 마케팅 비용이 수익을 앞지르면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최근 3년간 누적 영업손실만 500억 원을 넘어섰다.
머스트잇과 트렌비 역시 발란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2023년 기준 머트발의 영업손실은 머스트잇 79억 원, 트렌비 32억 원, 발란 100억 원에 이른다. 아직 지난해 실적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세 기업 모두 흑자전환에 실패했을 것을 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반영하듯 머스트잇도 최근 투자 유치에 나서며 유동성 확보에 고심하고 있다. 머스트잇은 삼정KPMG를 주관사로 선정하고 시리즈C 단계의 전략적 투자 유치를 본격화한 상태다. 우선적 목표는 투자유치이지만 경영권 매각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트잇은 “단기적인 자금 수혈이 아니라 장기적 파트너십을 위한 결정”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의 시각은 다르다. 누적된 적자와 악화된 업황을 고려할 때 머스트잇의 재무상황이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특히 ‘지분 참여’를 전제로 한 전략적 투자 유치를 강조한 대목에서 단순한 자금 조달이 아닌 생존을 위한 ‘파트너 찾기’에 가까운 행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내부 현금흐름이 사실상 졸졸 마른 상태로 외부 자금 유입이 시급한 상황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머스트잇은 2021년부터 매년 영업손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3년간 누적된 영업손실만 347억 원에 달한다.
▲ 최형록 발란 대표가 3일 서울 서초구 서울회생법원에서 열리는 기업회생신청 대표자 심문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이들 명품 플랫폼의 동반 위기는 단순한 자금난을 넘어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병행수입과 개인 판매자 중심의 유통 구조에 기반한 플랫폼 특성상 정품 인증 문제와 재고 리스크 등에서 꾸준히 취약점을 노출해왔다는 평가다.
여기에 고정비 부담이 큰 광고·마케팅 의존 구조도 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머트발로 불리는 세 플랫폼은 2022년 한 해 동안 광고선전비로만 각 100억 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머트발의 영업손실은 각각 168억 원, 208억 원, 374억 원을 기록했다.
수익률도 문제다. 오픈마켓 구조상 매출에 비례해 수익이 발생하다 보니 안정적 수익 창출이 어려운 데다 끊임없는 쿠폰 발급으로 수익률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입점 판매자에 따르면 발란은 기업회생을 신청하기 직전까지도 역마진이 발생하는 쿠폰을 대거 발급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팔수록 손해’인 상황에서 무리한 판촉이 이뤄진 셈이다.
명품 플랫폼 전반에 대한 신뢰에도 금이 가고 있다. 발란의 기업회생 신청 이후 ‘정산 지연 리스크’에 대한 불안감이 퍼지면서 업계 전반에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실제 발란의 회생 절차가 시작되자 명품 플랫폼 판매자들의 집단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판매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더는 머트발에서 판매하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이탈을 선언하기도 했다.
판매자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플랫폼 입장에서는 상품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이는 소비자 이탈로 직결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판매자 이탈 → 상품 부족 → 소비자 불만’의 고리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발란의 기업회생을 계기로 머스트잇과 트렌비 역시 인수합병(M&A)을 포함한 전면적 사업 재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명품 플랫폼 3강 체제로 불렸던 ‘머트발’이 줄줄이 위기에 빠지면서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과 지배구조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다만 실제로 이들 플랫폼을 인수할 기업이 나설지는 미지수다. 발란의 기업회생 이후 명품 플랫폼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투자를 결정할 곳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물론 쿠팡의 파페치 인수 사례처럼 비교적 ‘헐값’에 이들 플랫폼을 노리는 기업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쿠팡은 2023년 12월 5억 달러를 투자해 세계 최대 규모의 명품 플랫폼 파페치를 인수했다.
2018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파페치는 한때 기업가치가 230억 달러까지 치솟았으나 명품 소비 둔화와 수익성 악화가 겹치며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수년간의 내리막 끝에 5억 달러에 쿠팡의 품에 안기게 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명품 플랫폼의 기업 가치가 낮아진 지금이 오히려 투자 적기로 볼 수 있다”며 “발란이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며 주요 경쟁자가 줄어든 만큼 머스트잇과 트렌비 등이 매력적인 인수 대상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