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립부 탄 인텔 CEO가 3월31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텔 사업 발표행사에서 반도체 파운드리 부문의 경쟁력 회복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 <인텔> |
[비즈니스포스트] 인텔이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해 미국 트럼프 정부는 물론 주요 고객사에도 직접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국 SMIC가 정부의 직간접적 지원 및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의 기술 공유를 통해 단기간에 큰 발전을 이뤄낸 성과를 인텔에서 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는 1일 “인텔 CEO가 파운드리 고객사들에 솔직하고 날선 비판을 요구했다”며 “직접 피드백을 받고 이를 반도체 기술 발전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립부 탄 인텔 신임 CEO는 이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텔 사업발표회를 통해 회사의 사업 방식과 구조, 조직문화 등을 크게 바꿔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취임 뒤 다수의 고객사들과 소통한 결과 인텔 반도체 파운드리 서비스가 주요 고객사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게 됐다고 전했다.
인텔이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더욱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립부 탄은 현장에 참석한 고객사들에 “부디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피드백을 제공해주기 바란다”며 “이는 우리에게 매우 큰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텔이 장기적으로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기업으로 거듭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주요 고객사와 협력으로 도움을 받는 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텔의 파운드리 기술에 고객사들이 반도체 설계를 최적화해야 했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고객의 상세한 요구에 맞춰 반도체를 생산해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설계 기업들이 인텔 파운드리에서 원하는 결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적극적 기술 지원이 필요해질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 셈이다.
립부 탄은 인텔이 미국에서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설계하고 생산도 하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점도 이번 발표에서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트럼프 정부와 협업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며 “미국 정부에 인텔을 향한 지원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텔이 앞으로 파운드리 사업에서 미국 정부 차원의 지원과 고객사의 도움을 모두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새 전략을 써나갈 것이라고 예고한 셈이다.
이러한 전략은 중국 파운드리 1위 기업인 SMIC가 최근 수 년간 빠르게 성장해 온 비결과 일치한다.
▲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
SMIC는 중국 정부에서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는 동시에 최대 고객사인 화웨이에 활발한 기술 및 전문인력 공유를 받아 미세공정 개발에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미국의 규제로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7나노 미세공정 반도체를 SMIC가 자체 기술로 생산해 화웨이에 공급할 수 있던 점도 이러한 노력에 따른 결실로 분석된다.
립부 탄이 인텔 파운드리에 노골적으로 미국 정부와 고객사의 지원을 모두 요청했다는 점은 SMIC의 성공 사례를 충분히 염두에 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미국 정부와 고객사들 역시 현재 첨단 파운드리 시장을 사실상 독점한 TSMC에만 반도체 생산을 맡기기 어려워 미국의 자체 기술력 확보가 절실하다는 점을 노린 전략으로 보인다.
인텔은 전임자인 팻 겔싱어 CEO 체제에서 파운드리 사업에 신규 진출을 발표하고 수 년만에 상위 경쟁사인 TSMC와 삼성전자의 기술력을 제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미세공정 기술 연구개발 및 생산 투자에 막대한 금액을 들인 반면 파운드리 수주 성과는 부진해 심각한 재무 위기와 실적 부진을 겪게 됐다.
결국 팻 겔싱어 CEO가 책임을 지고 사임한 뒤 립부 탄 신임 CEO를 중심으로 파운드리 사업 부활을 위한 새 전략을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뒤 TSMC를 견제하고 미국의 반도체 연구개발 및 제조 경쟁력 회복에 집중하는 정책을 예고하며 인텔에 중요한 기회도 열리고 있다.
인텔이 심각한 재무 악화 상태에 놓이면서 한때는 파운드리 사업을 외부에 매각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TSMC가 미국에 주요 반도체 설계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해 인텔 파운드리 사업 운영을 담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외신을 중심으로 힘을 얻었다.
그러나 립부 탄이 인텔 파운드리 경쟁력을 자체 역량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이런 시나리오는 당분간 수면 위에 떠오르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립부 탄은 “인텔이 장기간 고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며 최고경영자 역할을 맡아 반도체 업계의 기술 혁신 속도를 따라잡는 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