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브리핑에서 고개를 숙였다.
▲ 오세훈 서울시장이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 주요 지역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했다가 한 달 만에 되돌리게 된 일에 대해서다.
오 시장은 “지난 2월12일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과 함께 이날 부동산 관계기관 회의를 연 뒤 강남 3구뿐 아니라 용산구까지 전체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오 시장은 잠실, 삼성동, 청담동, 대치동 등 강남 3구 주요지역의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해제를 한 달여 만에 번복하면서 부동산 정책의 파급력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을 통해 "오 시장이 토지거래허가구역을 해제해 서울 집값을 폭등시키자 정부가 부랴부랴 제동을 걸고 나섰다"며 "서울 부동산이 놀이터인가"라고 비판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의 같은 당 이소영 의원은 페이스북에 "수도 서울의 주택정책을 한 달 만에 이랬다저랬다 호떡 장사처럼 뒤집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고 날을 세웠다.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나타난 강남을 중심으로 한 집값 상승 분위기에 한동안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이상 조짐이 심각해지면서 최근 재규제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뒤, 결국 관계기관 회의에서 정부와 논의 끝에 기존 정책을 번복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을 오히려 용산구까지 확대했다.
이를 놓고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지역을 푼 곳들은 5년간 묶여 있었고 이에 주변 지역으로 수요가 몰리는 이른바 ‘풍선효과’로 반포 등의 집값이 급등하는 부작용이 있었다”며 “이같은 문제를 고려하다 해제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면서 조치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뒤 강남 3구의 신고 건수가 증가했고 갭투자를 비롯한 투기 의심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며 “그래서 일부 강남 지역에 국한됐던 토지거래허가제를 확장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날 대책 발표에 함께한 정부 고위관계자들은 서울시의 지난달 토지거래허가지역 해제가 통화량 확대와 기준금리 추가인하 가능성까지 폭넓게 고려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이에 부동산 시장에서는 오 시장의 조치가 성급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오 시장도 집값 급등의 직접적 계기가 된 지난 2월 토지거래허가지역 해제 전에 "국토부와만 논의했다"고 시인했다.
그러면서도 "각종 대출 규제를 비롯해 금융정책도 함께 구사해야 급격한 변동성을 잠재울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수시로 국토부, 금융위원회 등과 연락해 이번 빠르게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요지로 설명했다.
▲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가운데)이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왼쪽) 등과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이번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 지정과 관련해 "전세를 끼고 투자 목적으로 사는 갭투자가 많이 늘었고 거시경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금리 인하를 예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거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현재 지방은 미분양, 서울의 인기지역은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상황이어서 불균형이 더 심화하고 있다"며 "시장의 움직임을 보고 선제적으로 조치했는데 더 필요하면 확대하겠다. 정부는 일부 인기 지역의 부동산만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절대 놔둘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오 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도 “주택시장은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토지거래허가제와 같은 반시장적 규제는 불가피한 경우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소신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안정을 향한 강한 정책 의지로 볼 때 서울시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이른 시일 안에 다시 시행하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