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통신분야를 담당하는 기자로써, 지난 4월 SK텔레콤 유심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 발생 초기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통신망을 대상으로 한 해킹 공격 시도야 오래 전부터 늘 있어왔던 일이고, '1위 이동통신사니 알아서 잘 대응하고 해결하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한민국 '디지털 강국' 맞아? 열받은 대통령 다음 국무회의 '숙제검사' 주목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 본원 배터리 화재 대책 회의를 주재하며 국민 불편 최소화를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HSS(가입자 인증) 서버에서 악성코드가 발견되는 등 통신망이 진짜로 뚫렸고, 허술한 통신망 보안 탓이었다는 게 드러나며 불안해졌다. 비즈니스포스트가 이 건 취재에 집중해, SK텔레콤 통신망 서버(컴퓨터)서 찾아낸 악성코드가 애초 발표된 것보다 훨씬 많은 25종에 이른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하게 된 배경이다.

이어 사후 대책마저 바닥 수준이고, 그나마도 준비 부족으로 2300만 가까운 가입자들을 오픈런까지 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는, 기자이기에 앞서 SK텔레콤 가입자 중 한명으로써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어 KT 통신망 해킹 및 무단 소액결제 사태가 터지고,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배터리 화재로 행정전산망 서비스가 마비되는 상황을 보면서는 '이게 나라야?'라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아니나 다를까.

지인 모임이나 취재원들을 만날 때마다 '디지털 강국 맞아?', '이런 한심하고 무책임한 공무원들에게 나라 디지털 심장을 계속 맡기는 게 맞아?' 같은 하소연이 쏟아졌다.

통신사들을 향해서는 '제대로 보호도 못할거면서, 아니 안할 거면서 가입자 개인정보는 왜 낱낱이 수집하는 거냐?'는 질문을 토해냈다.

말이 하소연이고 질문이라고 표현했지, 사실상 '쌍욕' 수준이었다.

이 시대에 이 땅에서 벌어먹고 사는 한 대한민국 국민을, 통신서비스 가입자를, 행정전산망 서비스 이용자를 피할 수도 없기에 답답하다고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음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가지 분명하게 해둘 게 있다.

적어도 기자는, 통신사들이 해킹을 당하고, 정부의 디지털 심장 국가 데이터센터의 배터리가 화재를 일으킨 것 때문에 화가 나고 답답해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각각 국정수행최고책임자(행정전산망 마비)나 최고경영자(통신사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가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충분히 예상해 대비하고 막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당했고, 그 피해가 국민, 가입자, 이용자들에게 고스란히 가닿는 점에 화가 났다.

전산시스템을 구축·운영하다 보면 해킹 공격을 당할 수도, 발화와 폭발 가능성이 큰 리튬이온 배터리로 만들어진 무정전시스템(UPS)을 운영하다 보면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다.

통신망 대상 해킹 공격 시도는 오래 전부터 늘 있어온 일이다. 잘 막아내면 된다. 물론 아주 뛰어난 해커를 만나 통신망이나 서버(컴퓨터)가 뚫릴 수도 있다.

통신망 운영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미리 조처를 해놨으면, 통신망이 뚫려도 별 문제가 없다. 개인정보 역시 암호화 조처가 돼 있으면 빼가봤자 무용지물이다.

해킹은 전산시스템 방어와 개인정보 보호 기술을 발전시키는 순기능 구실도 한다.

데이터센터 화재 역시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미리 데이터센터와 그 안의 서버들이 불에 타는 상황에 대비해 데이터 실시간 백업 내지 전산시스템 이중화 등의 조처를 해놓으면 불이 나도 별 문제가 없다.

백업해둔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함께 동작 중인 쌍둥이 시스템을 통해 바로 서비스를 되살린 뒤 불 탄 쪽을 복구하면 된다. 예산이야 좀 들겠지만 국민, 가입자, 이용자들이 불편과 피해를 보는 상황은 피할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과 장비도 이미 많이 개발돼 있다. 큰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통신사라면 최고경영자, 정부기관이라면 국정최고책임자 내지 주무 부처 수장의 관심과 의지 만으로도 충분히 갖출 수 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한민국 '디지털 강국' 맞아? 열받은 대통령 다음 국무회의 '숙제검사' 주목

▲ 유영상 SK텔레콤 사장이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무엇보다 이런 대비를 하지 않아 뜨거운 맛을 봤던 선례도 있다. 2002년 서비스거부공격(DDoS)에 따른 인터넷 대란, 2012년 KT 해킹 및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 2022년 LG유플러스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2022년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서비스 먹통, 2023년 네트워크 오류에 따른 행정전산망 먹통 등이 대표적이다.

그 때마다 정부와 통신사들 모두 해킹 탐지시스템 강화, 정보보호 투자 확대, 개인정보 암호화, 전산시스템 이중화, 데이터 실시간 백업 체제 구축, 정보보호 거버넌스 강화 같은 대책을 내놨다.

최고경영자와 정부 주무 부처 장관들이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며 재발 방지를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카메라가 꺼지는 순간 약속은 내팽개쳐졌다.

급기야 이재명 대통령도 열받았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9월3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상상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까지 말로만 이중 운영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라고 질책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몰랐던 제 잘못이기도 하다"며 "생각보다 (시스템이) 엉터리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두 군데가 아닌 것 같은데, 전부 스크린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또 "보안·안전 관련 매뉴얼이 갖춰져 있는지, 그 매뉴얼대로 되고 있는지를 철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하며 모든 부처에 "부처 업무 및 산하기관 업무에 있어 보안·국민 안전·위해 방지를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최대한 신속히 점검해 다음 주 국무회의 전까지 최대한 빨리 보고해달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문제점이 없으면 없다고 보고하고, 문제가 있으면 시스템을 어떻게 보강할지 등을 최대한 담아 서면으로 제출해달라. 다음 국무회의 때 점검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올해 들어 지난 4월 이후 줄지어 터진 SK텔레콤 해킹과 개인정보 유출, KT 해킹과 휴대전화 무단 소액결제, 국정자원 본원 화재 및 행정전산망 마비는 모두 국가안보 위협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사안들이다.

따지고 보면, SK텔레콤 해킹 사태 때는 국가 기간통신망이 해커 손에 넘어갔고, 우리나라 국민 절반의 개인정보가 털렸다. 어떤 정보가 어떤 상태(암호화 여부)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빠져나갔는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아, 누구 손에서 어떻게 악용될지 짐작조차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로 통신사에는 가입자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연락처 같은 개인정보는 물론, 통화내역과 단말기 위치 및 이동 경로 데이터 등 사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정보들도 수집돼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SK텔레콤의 통신망 및 서버 보안 상태는 말 그대로 '바닥'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백신 프로그램조차 깔리지 않았고, 개인정보 암호화 조치도 미흡했다. 해킹 흔적을 신고하지 않고 은폐하고, 민관합동조사단 조사 때는 서버를 포렌식이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KT 무단 소액결제 사태는 원인과 경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KT가 김영섭 사장 직속으로 90여명 규모의 전담반을 꾸리고, 경찰도 경기남부청 사이버수사대를 중심으로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한달이 지나도록 별 성과를 못내고 있다.

무단 소액결제와 별도로 KT 통신망에 '유령 기지국'(미상의 기지국)이 침투한 사실도 드러났다. 추가 해킹 사실도 속속 신고되고 있다.

국정자원 화재 사태와 관련해선 실시간 백업 체제 부재에 따른 데이터 손실과 행정전산망 서비스 마비 사태 장기화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SK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과징금 부과로 일단락될 즈음 KT 해킹 및 무단 소액결제가 터지고, KT 사태에 대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 일정이 끝나자 국정자원 화재로 행정전산망 서비스가 마비되는 등 이른바 '사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는 형국도 나타나고 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한민국 '디지털 강국' 맞아? 열받은 대통령 다음 국무회의 '숙제검사' 주목

▲ 김영섭 KT 대표이사 사장(가운데)이 무단 소액결제 사태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영삼 정부 시절 이야기다. KT(당시는 한국통신)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겠다고 하자, 김영삼 대통령은 '국가전복세력'으로 간주하며 시내전화 사업자를 하나 더 만들라고 했다. 하나로텔레콤(지금은 SK브로드밴드)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김 대통령의 KT 노조 억압 노골화 및 통신사업 허가 비리 연결 의혹 등 여러 논란을 낳긴 했지만, 당시 명분으로 앞세워진 '국가 기간통신망 안전은 어떤 경우라도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전제는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도 옳은 판단이라고 본다.

이 전제에 따르면, 실적에 급급해 탈통신을 외치며 해킹 방어와 개인정보 유출 방지 등 통신망 보안 노력을 게을리한 통신사 경영진 역시 국가전복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 사건을 보며, 무정전시스템 배터리가 화재를 일으킬 수 있고, 이 경우 전산망 장애와 서비스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서도 행정전산망의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와 데이터 백업 체제를 갖추지 않은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주무 부처 실무자와 의사결정권자, 예산 찔끔 배정으로 행정전산시스템 이중화를 지연시킨 기획재정부 예산담당자들과 정치인들도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SK C&C 판교데이터센터 화재에 따른 카카오 서비스 마비 사태 발생 당시, 카카오 서버들의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 미흡을 장기 먹통 사태 원인으로 꼽으며 민간 데이터센터에 '시스템 전체 데이터센터 간 이중화'를 주문하면서 국정자원 데이터센터는 이렇게 하지 않은 정부는 두고두고 지탄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재명 정부가 이런 상황을 그대로 둔 채 '모두의 AI' 정책을 추진하면, 사상누각 모습이 될 게 뻔하다.

우리나라 정부의 디지털 심장 국정자원 대전 본원이 전화국용으로 설계된 건물에 입주해있고, 그러다 보니 배터리와 서버를 너무 가깝게 놓아 배터리가 발화해도 서버에 물방울이 튀어 고장을 일으킬까 조심스럽게 뿌려야 했던 게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행정전산망 이중화와 데이터 백업과 관련해 "규정상 하게 돼 있고, 민간은 하는데, 정부는 왜 하세월 하면서 안하고 있었던 것이냐"며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하든 신설하든 예비비로 하든 최대한 빨리 동시에 하라"고 매섭게 몰아부친 것은 시의적절했다.

전문가들은 물론 정부 안팎에서도 "그나마 지금 이 정도 수준으로 터져 다행이다. AI 서비스가 대중화한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면 재난 발생 수준의 불편과 피해를 초래했을 것"이라며 "잘 점검하고 개선하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주 국무회의 때 숙제 검사를 꼼꼼히 해, 전화위복의 계기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