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계는 중국 배터리 산업계가 정부 지원을 업고 막대한 자금을 차세대 배터리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는만큼, 정부의 산업계 공동 R&D 취지에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 ▲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 정부 주도 아래 차세대 배터리 공동 연구개발 체계를 구축해 중국을 추격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각사> |
하지만 차세대 배터리 관련 유의미한 연구개발 성과를 얻으려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술 관련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데, 국내 기업들이 민감한 핵심 기술을 적극 공개하진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의 공동 R&D가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는 시각이 제기된다.
23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산업통상부는 지난 22일 한국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배터리 산업개발 로드맵’을 발표했다. 산업부는 중국에 내준 시장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전고체·나트륨 배터리를 중심으로 차세대 배터리 기술력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은 2020년까지 세계 배터리 시장 1위였다. 하지만 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저가 공세를 이어가면서 2021년부터 시장 1위를 중국에 내어줬다.
이번 산업개발 로드맵 발표와 함께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2030년까지 약 8조 원의 설비투자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는 2030년까지 모두 4천억 원의 공동 연구개발(R&D) 사업을 신설해 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 배터리 산업계의 협력은 정부 지원만큼이나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중국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가 국내 단일 기업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중국 CATL이 지난해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비용은 4조7900억 원 수준이다. 이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지난해 연구개발 비용을 모두 합친 것(3조606억 원)보다도 1.5배 이상 많은 것이다.
산업부는 차세대 배터리의 수치 규격화, 소재 표준화, 공통 소재 개발 등을 통해 중복 투자를 방지하고, 대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해 비용과 시간을 절감한다는 계획이다.
| ▲ 삼성SDI가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 전시회에서 선보인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왼쪽)와 각형 전고체 배터리 모형. <비즈니스포스트> |
하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배터리 기업 간 공동 R&D 협력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가장 큰 이유는 차세대 배터리의 경우 기술 하나하나가 기업의 핵심 자산으로 취급되고 있어, 적극적인 기술 공개와 협력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차세대 배터리, 특히 전고체 배터리는 모든 기업들이 비밀리에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누가 어떤 소재로 어떤 공정으로 개발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며 “원천 기술이나 소재 관련 정보는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겠으나, 가장 중요한 양산 기술은 공유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기업들의 민감한 기술을 기밀로 보장해 준다면 공동 개발의 본래 취지가 퇴색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른 배터리 제조사 관계자는 “국가 차원에서 배터리 산업을 성장시키려는 취지는 좋다고 생각하지만,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잘 모르겠다”며 “중요한 기술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면 공동 개발의 의미가 옅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구체적인 협력 범위를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먼저 어떤 분야에서 어느 수준까지 협력할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며 “협력의 범위가 확정되면 공동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배터리 업계의 핵심 전략이 ‘특허 장벽 구축’이라는 점도 걸림돌이다. 특허를 이용한 글로벌 기술 라이선싱 사업이 배터리 업계에서 하나의 먹거리로 자리 잡은 가운데, 공동 개발한 기술의 소유권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정부가 4천억 원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입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유인 요건이 될 것”이라며 “처음부터 치명적 기술을 공개하면서 협력하자는 게 아니라, 우선 낮은 단계의 협력부터 시작해 공동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허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는 지금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면서도 “본래 특허라는 것은 출원한 사람에게 귀속되지만, 공동 출원 등의 방식을 추진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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