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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기업들의 추석 전 공사·납품·용역 대금 조기 지급 '생색내기', 평소 '바로 지급'이 상생의 지름길

김재섭 선임기자 jskim28@business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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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기업들의 추석 전 공사·납품·용역 대금 조기 지급 '생색내기', 평소 '바로 지급'이 상생의 지름길
▲ 통신 3사가 일제히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한가위 명절 전에 조기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협력업체들과 상생하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어차피 지급해야 할 돈인데, 차일피일 미루다 명절 때마다 조기 지급 이벤트를 할 게 아니라 평소 바로 지급하는 상생의 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해마다 설·한가위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대기업들이 어김없이 내놓는 보도자료가 있다. 명절 연휴를 앞둔 협력업체들의 자금 운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연휴 전 지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큰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한껏 생색을 낸다. 

올 한가위를 앞두고도 마찬가지다. 지난 설 명절 때 보도자료와 비교하면, 수치만 조금 다를 뿐 보도자료 내용과 형식은 같다.

SK텔레콤은 지난 18일 "추석 연휴를 맞아 SK브로드밴드와 함께 네트워크 공사, 유지보수, 서비스 용역 등을 담당하는 200여 개 협력사와 250여 개 유통망에 1318억 원의 대금을 조기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매년 설과 추석을 앞두고 상생 경영의 일환으로 협력사의 자금 부담 완화를 위해 대금 조기 지급을 시행해왔다"며 "올해 명절 전 조기 지급 규모는 (지난 설 때와) 이번 지급을 포함해 총 2438억 원"이라고 덧붙였다.

KT도 이날 "추석 명절을 앞두고 주요 그룹사와 함께 중소 협력사에 총 1607억원 규모의 납품대금을 조기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명절을 앞둔 협력사들의 원활한 자금 운용을 돕고, 실질적인 경영 부담 완화를 지원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 역시 같은 날 "추석 명절을 앞두고 중소 협력사의 원활한 자금 운용을 지원하기 위해 250억원 규모의 납품대금을 조기 지급한다"고 밝혔다.

이어 "당초 9월30일 지급할 예정이던 납품대금을 7일 앞당겨 오는 23일 지급한다"며 "지급 대상은 LG유플러스와 계약을 체결하고 자재·공사·용역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며, 전액 현금으로 지급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LG유플러스 측은 "2014년부터 설과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 중소 협력사의 자금 유동성 확보를 지원하기 위해 납품대금을 조기에 지급해 왔다. 지난 설에는 201억원을 조기 집행했고, 이번 추석 지급 예정액을 포함하면 올해 명절 납품대금 조기 지급 규모는 총 451억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SK하이닉스·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 등 주요 그룹 계열사들도 공사·납품·용역 대금 조기 지급 보도자료를 냈다. 한결같이 명절을 맞아 협력업체 자금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명절 때마다 조기 지급해온 금액을 합치면 수조 원에 달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명절과 아무 상관도 없는 '중소기업 상생펀드' 운용 내역 등을 덧붙이기도 한다.

문득 궁금하다. 공사를 맡겼거나 납품·용역을 받았으니 당연히 줘야 할 돈을 주면서 어찌 저리 생색을 낼까. 혹시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베풂'이 있는 거 아닐까.

통신 3사를 포함해 대금 조기 지급 보도자료를 낸 업체 몇 곳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대금 조기 지급'의 실체에 대해 물어봤다. 구체적으로는 조기 지급하는 대금의 실체와 어차피 줘야 할 것을 며칠 일찍 주면서 뭘 그리 생색을 내느냐 등을 물었다.

해당 업체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공사·납품·용역 대금은 각각 공사가 끝났거나 납품·용역이 마무리된 뒤에도 바로 지급되지 않는다. '월 말' 등으로 명시돼 있는 계약 내용에 따라, 혹은 현장 관행 내지 대기업(원청) 재무팀(실)의 자금 운용 계획에 따라 며칠에서 한 달, 심지어 분기(3개월)나 반기(6개월)가 지난 뒤에 지급되기도 한다.

명절 전 조기 지급 역시 그동안 공사·납품·용역이 끝났으나 미지급됐던 대금을 모두 결제해주는 게 아니다. 명절 연휴 직후로 지급 일정이 잡힌 것을 연휴 전으로 며칠 당겨서 주는 게 전부다. 간혹 이번 한가위처럼 명절 연휴가 월 말에 가까우면, 월 말로 예정된 것까지 조기 지급되기도 한다.

통신사들을 포함해 몇몇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공사·납품·용역이 끝난 대금을 이번에 일괄 지급하는 거냐?'고 물었다. 한결같이 "우리도 자금 운용 계획이 있는데, 그럴 수는 없다. 추석 뒤 예정돼 있던 것 가운데 일부를 당겨서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혹시 중소 협력사들의 명절 전 자금 부담을 덜어주는 취지로 공사·납품·용역 중이거나, 예정 대금을 당겨서 주는 경우도 있느냐?'고 물었다. 한결같이 "그런 경우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어느 모로 보나 생색 낼 일은 없는 셈이다. 오히려 평소 공사·납품·용역이 끝났어도 자신들의 자금 운용 계획이나 관행에 따라 일방적으로 대금을 바로 지급하지 않고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부끄러워하는 게 정상이다.

대기업이 대금 지급을 늦추면,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 대금을 주는 시기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덩달아 그 아래 하청 업체들 간의 대금 수령 시기도 늦어진다.

중소 하청(협력) 업체 쪽에서 보면, 공사·납품·용역이 끝났다는 것은 이미 인건비와 자재값을 들였다는 뜻이다. 이후에는 원청(대기업) 측이 대금 지급을 미루는 만큼 차입금에 대한 이자 부담 증가 등 손실이 발생하고 커진다. 반대로 원청은 그만큼 이익을 보게 된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대기업들의 추석 전 공사·납품·용역 대금 조기 지급 '생색내기', 평소 '바로 지급'이 상생의 지름길
▲ 연간 수십~수백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내는 대기업들까지도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바로 지급하지 않고 미루다, 명절 때마다 조기 지급 이벤트를 벌이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흔히 '대기업 갑질'이라고 하는 것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공사·납품·용역을 받을 때는 하루만 늦어도 난리를 피우고, 심지어 지연 배상금 같은 패널티까지 물리면서, 대금 지급은 '내 맘대로' 식인 셈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는 횡포라고 할 수도 있다. 시스템이 잘 갖춰진 기업에서도 '실무자 갑질'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을' 지위에 있는 협력 업체들은 감히 불만을 제기하거나 대금 지급을 재촉하지 못한다. '괘씸죄'에 걸려 공사·납품·용역 거래가 끊기거나 축소당할 수 있어서다.

통신사와 협력업체·유통점 사이에선 '구두 계약'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통신사 유통점 사장들의 말을 들어보면, 본사나 지역총괄 영업 관리자가 전화를 걸어 '요즘 가입자가 빠져 난처한데 이럴 때 좀 나서주시면 다음 달 수수료 정산과 협력사 평가 때 감안하겠다'고 한 뒤, 목적을 이루고는 모른 척하는 사례가 많다.

한 이동통신 유통점 사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가입자를 바짝 모집하느라 들인 비용 보전을 요청하면 다음 달, 다음 달 하다가 인사이동으로 옮겨간다. 후임자한테 얘기하면 근거를 가져오라, 난 모르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결국은 대부분 떼인다"고 말했다.

다른 이동통신 유통점 사장은 "본사가 갑이다. 본사 관리자의 제안을 거절하면, 아이폰·갤럭시 신제품 출시 때 물량을 받을 수 없다.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나마 속을 줄 알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T의 경우에는 지난 2년 가까이 공사 업체들에게 통신망 유지보수 일을 맡기고 대가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논란을 빚고 있기도 하다.

KT 한 협력업체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전임 사장 시절 인력·업무 구조조정에 차질이 발생해 통신망 유지보수 길이 막혔다며 기존 공사업체들한테 통신망 유지보수 일까지 떠넘기듯 맡겼다. 통신공사 협력업체 계약을 맺고 있는데다 KT가 요청해서 하는 것이니 나중에라도 챙겨주겠지 하고 도왔는데, 속된 말로 쌩까고 있다. 우리가 KT에서 받아야 할 것만도 1억 원을 넘고, 다른 협력업체들도 대부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업체는 얼마 전 공사 품질과 성실성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협력 업체에서 배제됐다.

이번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조기 지급하겠다고 언론에 밝힌 대기업 업체들은 연간 수조원에서 수십·수백조원의 이익을 내는 업체들이다. 통신 3사도 올해 각각 1~2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모두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바로 지급하지 못할 만큼 형편이 어렵지 않다.

그래서 묻고 바란다. '상생' 생색을 내려면, 명절 때마다 밀린 공사·납품·용역 대금 일부를 며칠 앞당겨 주는 이벤트를 벌일 게 아니라, 평소 공사·납품·용역이 끝나는 즉시 대금이 지급될 수 있도록 신경 써 주면 어떨까. 어차피 줘야 할 돈이고,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다음 날 바로 지급'을 선언하며 오지게 생색 내보는 건 어떤가.

혹시 대금 지급을 늦춰 그 기간 동안의 금융 이자까지 챙기려는, 쪼잔한 속셈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관련해 한 통신사 협력업체 대표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를 하며 한 말은 우리를 '웃프게'(웃기면서 슬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는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원청인 대기업 관계자들에게 선물도 돌리고 해야 해 자금난을 겪게 되는데, 대금을 며칠이라도 당겨서 주면 정말 고맙지요."

뭔가가 턱 걸린다.

물론 공사·납품·용역 대금을 바로 지급하는 등 협력사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모범 사례도 많을 것이라고 믿는다. 보통 이런 기업들은 납품가 후려치기 같은 짓을 하지 않고, 협력업체들과 상생을 하고 있다고 생색을 내지도 않는다.

모쪼록 모두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바란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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