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뭉쳐야 산다⑦] 정용진은 왜 리플렉션AI를 택했나, 신세계그룹 '유통 맞춤형' AI 동맹 시동
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6-08-06 15:3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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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주도해 온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빨라지면서 산업 판도도 빠르게 재편될 조짐을 보인다. 주요 기업들은 AI 모델의 성능 경쟁을 넘어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 등 차세대 성장 영역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경쟁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기업 간 협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 로봇, 전력 인프라를 아우르는 AI 생태계에서는 한 기업이 모든 기술과 자원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닌 기업들의 연합은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을 넘어 국가 간 산업·외교 관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도 떠오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AI 산업의 '2차전'을 준비하는 국내외 기업들의 협력 사례를 살펴보고, 이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손을 잡았는지 분석한다. 나아가 이러한 연합이 글로벌 AI 시장의 경쟁 구도와 한국 기업들의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짚어본다.
▲ 신세계그룹과 리플렉션AI가 3월16일 '한국 소버린 AI 팩토리 건립을 위해 진행한 전략적 파트너십 MOU'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미샤 라스킨 리플렉션 AI 최고경영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신세계그룹>
[비즈니스포스트]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인공지능(AI) 사업모델을 구축하는 데 잰걸음을 하고 있다.
정 회장의 AI 신사업 추진은 엔비디아와 같은 소위 '빅테크'가 아닌 비교적 이름이 생소한 스타트업 '리플렉션AI'와 손을 잡았다는 점에서 다른 대기업과 결이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플렉션AI는 사용자가 목적에 맞게 모델 구조를 변경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을 강점으로 하는데 이를 활용한다면 전국의 온·오프라인 유통망을 실증 기반으로 내세워 AI 사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6일 신세계그룹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올해 안에 리플렉션AI와 합작법인(JV)을 설립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그룹은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국내에 전력용량 250메가와트(M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건립하기 위한 세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강원지역이 데이터센터 후보지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AI 동맹은 최근 국내 기술기업들이 추진하는 협력과 출발점이 다르다고 평가된다.
SK그룹과 네이버는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을 계기로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와 협력을 확대했다. SK그룹은 메모리반도체 공급과 공동 기술개발, 최대 2기가와트(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네이버도 자체 AI 모델과 클라우드 역량을 바탕으로 엔비디아·브룩필드와 데이터센터 확대에 나섰다.
두 기업은 반도체와 AI 모델, 클라우드 등 협력 상대에게 제공할 자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신세계그룹의 주력 사업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복합쇼핑몰, 전자상거래다. 글로벌 빅테크와 대등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신세계그룹이 엔비디아와 직접 협력하기보다 엔비디아가 투자한 리플렉션AI를 선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리플렉션AI는 구글 딥마인드 출신인 미샤 라스킨 최고경영자(CEO)와 알파고 개발에 참여한 이오안니스 안토노글루 최고기술책임자(CTO)가 2024년 설립했다. 2025년 10월 엔비디아 등을 상대로 20억 달러(약 2조8384억 원)를 유치하면서 기업가치 80억 달러(약 11조3536억 원)를 인정받았다.
리플렉션AI가 내세우는 핵심 기술은 ‘오픈 웨이트’ AI 모델이다.
신세계그룹에 따르면 오픈 웨이트 모델은 완성된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하는 폐쇄형 모델과 달리 학습된 가중치를 활용해 목적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기업이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면서 산업별 업무에 맞는 AI를 설계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평가된다.
신세계그룹으로서는 글로벌 빅테크의 범용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보다 리플렉션AI와 초기부터 협력하는 편이 유통 현장의 요구를 기술에 반영할 여지가 클 수 있다.
실제 신세계그룹은 AI 데이터센터를 단순한 저장시설이 아닌 ‘AI 팩토리’로 구축하기로 했다. 데이터 저장과 클라우드 서비스뿐 아니라 기업별 맞춤형 AI 설루션까지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리플렉션AI는 최근 자체 모델 개발에 필요한 연산능력도 확보하고 있다. 6월 스페이스X와 계약을 맺고 데이터센터 ‘콜로서스2’에 설치된 엔비디아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인 GB300을 사용하기로 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리플렉션AI는 지난해 10월 엔비디아 등으로부터 20억 달러를 유치했다”며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았다는 것은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GPU 공급 측면에서도 강점이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협력이 리플렉션AI와 신세계그룹 모두에 사업 확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먼저 리플렉션AI 입장에서는 자체 AI 모델을 실제 유통 현장에서 검증할 기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신세계그룹은 대형마트와 백화점, 온라인몰, 물류센터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상품과 판매채널별로 AI 도입 효과를 확인하기에 적합하다. 유통기업과의 협업 성과를 확보하면 다른 산업과 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AI 사업을 확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신세계그룹 입장에서는 리플렉션AI의 모델과 연산자원을 활용해 유통에 특화된 AI를 개발할 수 있다.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리플렉션AI와 손잡고 AI 데이터센터를 짓는다. <신세계그룹>
실제 신세계그룹은 전국 점포와 온라인몰에서 축적한 사업 경험을 상품 소싱과 발주, 가격 책정, 물류, 재고관리, 고객관리 등 6개 영역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소비자용 챗봇이나 상품 추천 기능을 추가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어떤 상품을 얼마나 매입하고 어느 점포에 배치할지, 가격과 할인 시점을 어떻게 정할지 등 유통기업의 핵심 의사결정에 AI를 적용하려는 구상이다.
다만 스타트업과 맞춤형 AI를 함께 구축하는 방식은 파트너의 기술과 재무 위험에도 영향을 받을 위험성도 안고 있다.
리플렉션AI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최신 GPU를 확보했지만 자체 모델의 성능과 대규모 상용화 능력은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250MW급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투자비를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 합작법인의 지분과 경영권을 어떻게 나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이 보유한 고객·거래 데이터의 활용 범위도 구체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공개된 협력 내용만으로는 리플렉션AI가 신세계그룹의 데이터를 직접 제공받거나 자체 모델 학습에 이용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양측이 합작법인을 세우는 과정에서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 범위, 통제권, AI 학습에 활용할 정보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도 중요한 요소다. 데이터 주권을 협력의 강점으로 내세운 만큼 실제 사업에서도 신세계그룹과 고객의 정보가 독립적으로 관리되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성이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은 오랜 유통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최대 수준의 고객 접점과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리플렉션 AI와 미래 유통업에 최적화된 AI 기반 리테일 사업 모델을 구현해 생산성을 높이고 고객 만족도를 향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