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일(현지시각) 프랑스 보르도 시내에 위치한 약국 온도계가 40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폭염을 겪는 서유럽 국가에서 슈퍼마켓과 대형마트 등 사업장의 냉장고가 잇따라 고장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냉장고가 과거의 온화한 기후에 맞춰 설계된 만큼 기후변화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유통업계 전반에 금전적 타격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8일 주요 외신의 보도를 종합하면 유럽 국가 유통망에서 냉장고 고장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사례가 늘고 있다.
BBC는 2일(현지시각) 영국 브리스톨, 서미싯 등에 위치한 여러 대형마트에서 냉장고가 고장나 신선 식품 판매가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유통 전문지 에디시옹도베르에 따르면 6월29일(현지시각) 프랑스의 일드프랑스, 릴, 보르도 등 주요 도시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독일 언론 프리마베라에 따르면 독일 디부르크에서도 슈퍼마켓들이 고온으로 인해 냉장고를 가동하지 못하게 된 사례들이 파악됐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업소용 냉장고들이 온화한 기후에 맞춰 설계돼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기업들이 현재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상업용 냉장고는 최고 기온 상한선을 32도로 상정해 설계됐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비슷한 기준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이례적 폭염 사태로 사업장의 온도가 32도를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냉장고 고장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앨런 포스터 영국 사우스뱅크대 냉난방기기 연구그룹 교수는 BBC와 인터뷰에서 "슈퍼마켓의 냉장고들은 대부분 32도를 최고 기준으로 두고 설계돼 있다"며 "이는 수십 년 전의 환경에 맞춘 설계이기 때문에 당연히 현재 환경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했다.
| ▲ 영국 런던 워털루역 인근에 위치한 마크스앤스펜서 식품몰. <연합뉴스> |
한국에서 판매되는 냉장고는 국가기술표준원 안전기준(KC인증)에 따라 최고 기온 43도까지 가동 범위를 두고 설계된다. 또한 에어컨을 비롯한 냉방 설비도 널리 보급되어 있어 실내 온도가 크게 상승할 가능성은 낮다.
반면 유럽 국가들은 에어컨 보급률도 낮아 한국과 상황이 다르다.
유럽 유통 업체들은 뒤늦게 매장에 설치하는 냉장고를 교체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유통 대기업 '마크스앤스펜서(M&S)'는 7일(현지시각) 대대적으로 냉장 장비 교체를 단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스튜어트 마친 M&S 최고경영자는 이날 주주총회에서 "최근 9일 동안 지속된 폭염으로 큰 어려움을 겪었는데 앞으로는 기온이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며 "우리는 45도 환경에도 견딜 수 있는 장비 도입에 투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포스터 교수는 "유통 기업들이 나선다고 해도 단기간에 모든 장비를 교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일단 투자 비용이 막대하다"고 지적했다.
유통업계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일부 단체에서 유통망 붕괴를 막기 위해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톰 사우스홀 영국 냉장유통연맹 회장은 6월25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유통 기업들은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최선을 다해 적응하고 있지만 급격한 기후변화에 맞춰 나가려면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장 조사기관 테크나비오는 2025년 보고서를 통해 유럽 상업용 냉장고 및 냉동고 등 냉장 장비 시장이 2028년 말까지 연평균 6.7% 성장해 37억1천만 달러(약 5조6천억 원) 규모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마켓앤마켓 등 다른 분석업체들이 예측한 글로벌 전체 냉장 장비 시장 성장률 전망치인 연 5%대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2022년까지만 해도 유럽의 상업용 냉장 장비 시장은 연평균 1~2% 성장하는 수준에 그쳤다.
기후변화가 유통업계의 설비 지출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테크나비오는 "호텔, 레스토랑, 유통 체인 등 다양한 유통 분야에서 냉장 장비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