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을 꼽으라면 단연 ‘생산적 금융’이다. 생산적 금융은 금융회사 자금이 이자장사에 그치기 쉬운 부동산 등 담보대출에 머물지 않고 첨단전략산업, 벤처창업시장, 녹색금융, 지방금융 등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생산적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금융대전환을 말한다. 싱가포르는 아세안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금융선진국으로 생산적 금융 측면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국가로 꼽힌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싱가포르의 금융이 발휘하고 있는 경쟁력을 직접 느껴보고 K생산적금융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직접 모색해보고자 한다.
-은행 글 싣는 순서
① 글로벌 자본 모이는 '신뢰의 우산' 만든 싱가포르, 규제가 주는 자유로움의 역설을 느끼다
② KB국민은행 싱가포르지점장 김용진 "파생상품 역량 앞세워 역외시장 정조준, 동남아 금융거점 만든다"
③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장 정형동 "동남아 역외금융 중심지, 작은 나라에서 '아시아 리딩뱅크'를 꿈꾸는 이유"
④ 하나은행 아시아지역본부장 박영민 “53년 현지화 네트워크 강점, 기업금융에서 리테일까지 ‘글로벌 하나’ 힘 싣는다”
⑤ 우리은행 싱가포르지점장 양승용 "발로 뛰는 영업·내부통제로 시장 신뢰 확보, 지속성장 내실 다진다"
⑥ 이도형 한국수출입은행 싱가포르법인장 "정책금융은 경쟁보다 보완, 아시아 허브에서 한국 금융영토 넓힌다"
|
|
| ▲ 정형동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장이 10일 마리나베이샌즈가 내려다보이는 아시아스퀘어타워 41층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싱가포르=비즈니스포스트] “자산을 50억 달러, 100억 달러로 계속 키워 아시아 리딩뱅크가 돼야죠.”
6월10일 싱가포르 신도심에 위치한 아시아스퀘어타워에서 만난 정형동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장은 글로벌 금융사들과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하면서도 성장에 자신감을 보였다.
정 지점장은 "2023년 부임했을 때는 지점 직원이 30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50명 수준으로 늘었다"며 "자산 규모도 2배 정도 성장했고 손익도 많이 커졌다"고 말했다.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대형 금융사들이 경쟁하는 싱가포르에서 자본 규모를 키우는 것은 사업 확장을 위한 기본조건 가운데 하나다. 현재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은 자산 규모가 40억 달러에 이른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국 시중은행들 가운데서는 하나은행과 더불어 선두권이지만 세계 금융사 600여 곳이 경쟁하는 싱가포르 시장에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날 찾은 아시아스퀘어타워도 글로벌 금융시장의 한 가운데로 들어온 느낌이 물씬 풍겼다.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이 입주한 아시아스퀘어타워에는 씨티은행, 피델리티인터내셔널, 핌코(PIMCO), 찰스슈왑, 스위스국립은행(SNB)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대거 입주해 있다.
현대식 고층 빌딩 사이 넓은 광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정장을 입은 직장인들이 야외 테이블을 가득 메웠다. 광장은 커피를 마시며 회의를 하는 사람들, 노트북을 펼쳐 업무를 보는 사람들, 짧은 미팅을 이어가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건물 외벽 대형 전광판에서는 CNBC 경제뉴스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중국 경제와 대만 반도체, 글로벌 증시, 원자재 시장 동향이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그야말로, 세계 자본이 모이는 금융허브 일상의 모습이었다.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에서는 좋은 기업 투자건이나 계약이 하나 나오면 세계 유수의 금융기관이 몰려 들어 치열하게 경쟁한다"고 말했는데, 그 배경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 싱가포르는 국가가 아닌 플랫폼, 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잇는 금융허브
| ▲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은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글로벌캐피털마켓, 디지털 데스크 등 부서에 인력 50여 명 규모로 운영된다. 사진은 싱가포르 다운타운역 인근 아시아스퀘어타워 41층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 사무실. <비즈니스포스트> |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은 크게 기업금융(CB), 투자금융(IB), 글로벌캐피털마켓(GCM), 디지털데스크 등 4개 부문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싱가포르에서 벌어지는 금융거래의 핵심은 현지 시장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 특히 동남아를 대상으로 하는 역외금융이다.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는 미국 달러 조달이 매우 원활한 시장"이라며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달러가 상대적으로 귀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금융기관들이 역외금융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동남아도 넓은데 아시아 무대는 더 넓다"며 "결국 싱가포르에서는 아시아시장 전체에서 좋은 기업과 좋은 딜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의 역외 투자 대표 사례로는 인도 교육금융전문업체 크레딜라(Credila)를 들었다.
정 지점장은 "크레딜라와 공동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고 인도 지역 인수금융이나 투자금융도 많이 하고 있다"며 "인도와 베트남, 인도네시아는 앞으로도 계속 사업을 확대할 시장"이라고 말했다.
디지털데스크도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의 미래 성장 축으로 꼽혔다.
디지털데스크는 싱가포르와 동남아 지역 스타트업을 발굴해 신한벤처투자 등 그룹 계열사 펀드와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정 지점장은 디지털데스크가 미래 성장을 이끌 중장기 전략부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고 바라봤다.
싱가포르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분야를 비롯해 혁신산업 생태계가 잘 갖춰진 시장이다.
이에 디지털데스크는 아시아 현지 및 한국계 유망 스타트업의 지분 투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그룹 차원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선점하는 가교 역할에 앞장서겠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세계 금융사의 격전지 싱가포르, 신한의 무기는 빠른 의사결정과 현지 네트워크
| ▲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이 위치한 아시아스퀘어타워1과 타워2 사이 광장에서 이른 아침부터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싱가포르 금융시장은 세계 유수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는 격전지다.
정 지점장은 "좋은 거래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며 “경쟁이 워낙 심하다 보니 금리도 낮고 수익성 확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다만 규모의 열세에도 신한은행만의 경쟁력은 분명하다고 봤다.
정 지점장은 "신한은행은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고 고객 맞춤형 금리 제안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있다"며 "기업금융과 투자금융 분야의 전문성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과 인도, 인도네시아 등 그룹의 현지 법인과 협업해 고객에게 종합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경쟁력"이라며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연계 영업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싱가포르 시장의 경쟁 강도는 만만치 않다.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개발은행(DBS)과 같은 현지 대형은행뿐 아니라 일본 등 아시아, 유럽 은행들이 매우 강하다"며 "한국 은행들도 더 체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대형은행 가운데는 싱가포르에 직원이 700~800명인 곳도 있다"며 "콜센터까지 싱가포르에 두고 아시아 전체 사업을 총괄한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몰려있다 보니 현지 인재 관리도 중요한 과제로 꼽힌다.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는 고용시장 유연성이 높아 현지 직원들은 더 좋은 조건이 있으면 언제든 이직한다"며 "주재원들이 인력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이를 위해 현지 직원 복지 수준을 크게 개선했다.
정 지점장은 "글로벌 선진 은행 수준에 맞춰 연간 휴가를 20일에서 25일로 늘리고 근무환경도 더욱 개선했다"며 "그 결과 이직률도 많이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 ▲ 싱가포르 다운타운역 인근 아시아스퀘어타워2 빌딩에서 바라본 항만의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
정 지점장은 "싱가포르는 국가 규모는 작지만 사업 무대는 동남아를 포함한 아시아시장 전체"라며 "자산 규모와 조직 역량을 계속 키워 아시아 리딩뱅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정 지점장은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 신한은행에 입행했다.
입행 뒤 종합금융부 자산유동화팀에서 근무하며 투자금융 업무를 시작했고 2002년에는 독일계 투자은행 도이치뱅크 홍콩 오피스에서 근무하며 해외 금융시장 경험을 쌓았다.
그 뒤 부동산금융부와 프로젝트금융부를 거치며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업무를 담당했고 2011년에는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부동산금융팀 이사로 재직했다. 구조화금융부 팀장, 명동대기업금융센터장, 특화상품부장을 역임하며 기업금융과 투자상품 분야 경험도 쌓았다.
2023년 신한은행 싱가포르지점장으로 부임해 아시아사업 확장에 힘을 싣고 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