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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옥스팜 트레일워커 2026, 강원도 인제에서 배우는 100km '낭만완주'

조수연 기자 ssue@businesspost.co.kr 2026-05-20 15:4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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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 발에 추억, 한 발에 낭만. 3,2,1! 옥스팜 트레일워커 이제 출발합니다!“

16일 새벽 5시. 강원도 인제문화원 앞에 모인 참가자들이 일제히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체험기] 옥스팜 트레일워커 2026, 강원도 인제에서 배우는 100km '낭만완주'
▲ 16일 새벽. 강원도 인제문화원 앞에 2026 옥스팜 트레일러닝 참가자들이 모여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4명이 한 팀을 이뤄 제한시간 38시간 안에 100km를 걸어야 하는 '도전형 기부 프로젝트'다. 참가자들이 모은 기부금은 지구 반대편 취약지역 주민들의 식수 지원에 사용된다.

사내 기자들이 몇 년 전부터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가해 취재해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한국에서 2017년 처음 열렸다. 강원도 인제에서 열리는 행사만 올해로 다섯 번째다. 

지나가는 말로 참가해보지 않겠냐는 선배의 물음에 체력 하나는 자신 있어 별 고민 없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 평일에는 매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주말에는 집에서 뒹굴거리는 일상에 강원도의 자연 경관이 필요했다. 적어도 추억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찾아왔다.

16일 아침 일어나 보니 다른 방에서 묵은 선배 기자 세 명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이들은 눈물콧물 바람으로 밤을 새웠다 했다. 다들 눈이 벌겋게 충혈돼 침침함을 호소했다. 일정 회의 때문에 전날 잠깐 해당 공간에 들렀던 나 역시 눈이 퉁퉁 부었다.

다행히 의료팀으로부터 약을 받아 복용하는 등 빠르게 조치할 수 있었지만 결국 한 명은 참가 포기를 결정했다. 학창시절 축구선수 출신이라 유망주였던 그 선배는 바로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참가 직전에 한 명이 이탈하면서 뒤숭숭한 마음으로 출발해야 했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추억과 낭만을 새기라는 사회자의 말에 세 명이서 파이팅을 외쳤다. 
 
[체험기] 옥스팜 트레일워커 2026, 강원도 인제에서 배우는 100km '낭만완주'
▲ 첫번째 체크포인트를 지나면 자작나무숲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포스트>

첫 목표 지점은 인제군 인제읍 원대리의 '박달고치'였다. 해발 740m의 높은 지대인데도 박꽃이 핀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마련된 코스 가운데 경사가 가파르기로 유명한 코스였다. 시작 전부터 이미 난코스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본격적으로 산길에 들어서자 길 폭은 금세 좁아졌고, 발 딛는 곳부터 머리 위로 뻗은 나무까지 신경 써야 했다. 앞서 걷던 능숙한 등산'꾼'들은 뒤따라오는 우리를 향해 열심히 "머리 조심하세요"를 외쳐줬다.

한 시간 가량 산을 오르고 쉬기를 반복했다. 현장 스태프들이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며 응원했지만 산에서 말하는 '조금만 더'는 좀처럼 끝나지 않는 법이다.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천재지변급 이슈'로 팀원 한 명의 빈자리에 조금은 울적했던 팀 분위기도 되살아나는 듯했다. 

정상에서는 인제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졌다. 아래로는 길게 흐르는 소양강과 작은 마을 풍경들, 위로는 시원한 산들바람과 맑은 하늘까지 더해졌다. 지난 참가자였던 선배 기자가 남겼다는 '사진 스팟'에 맞춰 기념사진도 남겼다.
 
[체험기] 옥스팜 트레일워커 2026, 강원도 인제에서 배우는 100km '낭만완주'
▲ 박달고치 정상에서의 2023년 참가했던 선배 기자(왼쪽)의 사진 스팟에 맞춰 기념사진을 남겼다. <비즈니스포스트>

팀의 속도는 일반인치고 꽤 좋은 편이었다. 중간 50km 지점인 체크포인트4에 들어왔을 때에는 저녁 9시를 막 넘긴 시각이었다. 전체 340팀 가운데 우리 팀은 뒤에 20여 팀이나(?) 남겨놓은 상태였다. 

올해 코스는 같은 길을 두 번 반복하도록 짜여 있었다. 크게 박달고치, 자작나무숲, 하늘내린터, 고사리 경로당까지 이어지는 네 개 구간을 2일차에도 다시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잠은 포기할 수 없다고 강하게 주장해온 터라 중간 지점에서 넉넉하게 눈을 붙이고 새벽 2시쯤 다시 박달고치로 향할 계획이었다. 잠자리에 눕자 인제읍에서 행사 지원을 나오신 어머님 한 분이 은박 이불을 발끝까지 꼼꼼히 덮어주셨다. 

너무 푹 잤을까. 꿀잠을 자는데 현장 스태프가 곤란한 얼굴로 팀원들을 깨워 모았다. "새벽 1시에는 이곳에서 출발해야 하거든요. 다른 팀들은 이미 다 출발하셨어요."

졸지에 꼴찌가 됐다. 체크포인트마다 출발 제한 시간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했던 탓이었다. 급히 박달고치로 향했는데 우리 뒤에는 가장 마지막 팀과 함께 움직이는 진행요원 두 명이 따라붙었다.

문제는 가장 힘든 난코스를 새벽에 다시 올라야 한다는 점이었다.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해 산길을 걷다 보니 조용한 숲속에는 거친 숨소리와 밤새 소리만 이어졌다.

40대 선배들 가운데 내가 유일한 20대였던 터라 힘든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울분이 터졌다.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곳에 왔나! 다행히 선배들은 웃음으로 공감해줬다. 

터질 듯한 발과 다리를 이끌고 도착한 박달고치 정상은 그 자체로 충분한 보상이 됐다. 

시원한 물과 바나나, 그리고 쏟아질 것처럼 별이 가득한 밤하늘이 기다리고 있었다. 걷는 내내 땅만 내려다봤는데 정상에 오르니 한동안 하늘만 올려다봤다. 부귀영화까지 아니라도 아무나 볼 수 없는 이런 밤하늘이라면 충분하다 싶었다. 

다행히 자작나무숲과 하늘내린터 구간은 언덕과 평지, 내리막이 적절히 섞인 길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고된 산길을 지나온 뒤 약 30km를 '지루함'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다. 발은 이미 물집과 부기로 무거웠다. 
 
[체험기] 옥스팜 트레일워커 2026, 강원도 인제에서 배우는 100km '낭만완주'
▲ 자작나무숲을 지나면 이런 길로 약 15km를 걸어가야 체크포인트를 만날 수 있다. <비즈니스포트>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꾸역꾸역 걸으며 한발씩 추억과 낭만을 새기라는 사회자의 말을 생각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해마다 이곳에 와 '사서 고생'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떻게 해야 주어진 일을 '더 효율적'으로, '더 영리하게' 할까 고민하는 세상에서 '걷기'란 지름길이 없는 행위다. 그것도 100km라는 거리까지 못 박히니 꼼수를 쓸 수도 없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곤 "배와 엉덩이에 힘을 주고 걸어라"라는 말 뿐이다. 

다행히 우리 팀은 무사 완주에 성공했다. 팀원 서로 맞추며 끝까지 걸어낸 덕분이었다.

길 곳곳에서 "힘내세요"를 외쳐주던 인제읍 주민들의 응원과 밤새 참가자들을 챙기던 자원봉사자들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체험기를 빌어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조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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