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오른쪽)와 웨이저자 TSMC 회장이 2월5일 일본 도쿄 총리실에서 TSMC의 3나노 반도체 투자 계획을 비롯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일본 정부가 인공지능(AI) 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추진해 온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에 잇따라 성과를 거두고 있다.
TSMC의 3나노 파운드리 투자 유치와 라피더스의 2나노 반도체 상용화에 모두 탄력이 붙으며 일본의 반도체 제조업 부활에 본격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8일 닛케이아시아 등 외신을 종합하면 TSMC는 글로벌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꾸준한 투자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웨이저자 TSMC 회장은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만나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에 3나노 기술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일본 정부가 이에 그치지 않고 TSMC의 첨단 반도체 패키징 투자도 적극 유도하며 강력한 정책적 지원 의지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TSMC는 현재 일본 구마모토에 제1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건설중인 제2 공장에 원래 계획했던 6~7나노 대신 3나노 설비를 들이기로 한 것이다.
3나노 반도체는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애플 아이폰용 프로세서 등 고성능 제품에 쓰이는 주력 공정이다.
TSMC가 자동차 제조사와 부품업체 등 현지 고객사 수요에 대응하는 데 집중했던 일본 공장의 역할을 확대해 글로벌 주요 생산거점 가운데 하나로 삼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일본이 한국과 대만, 미국에 이어 3나노 이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를 자국에서 생산할 수 있는 네 번째 국가로 거듭난다는 점을 의미한다.
TSMC의 파운드리 투자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며 막대한 지원을 제공했던 일본 정부의 정책적 노력이 뚜렷한 결실로 돌아오게 된 셈이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TSMC의 현지 공장 건설에 2021년부터 2024년까지 1조2천억 엔(약 11조3천억 원) 가까운 금액을 지원해 왔다.
일본 다카이치 정부는 더 나아가 반도체를 국가 차원의 집중 투자 대상에 포함하며 더 강력한 지원을 예고했다. 최근 일본 총선에서 여당이 3분의2 이상 의석을 차지한 만큼 재원 확보를 비롯한 정책 시행에 더 탄력이 붙을 공산이 크다.
| ▲ 일본 라피더스의 2나노 반도체 샘플 홍보용 사진. |
다만 일본의 반도체 지원 정책은 TSMC의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데 이어 자국 기업인 라피더스를 육성하는 데도 중점을 둘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기업인 TSMC와 자국의 라피더스를 동시에 육성해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한층 더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는 셈이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와 현지 은행 및 기업들이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다. 2027년부터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에 따르면 라피더스는 2027년 하반기 2나노 양산 체계를 구축한 뒤 2028년부터 완전한 공장 가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라피더스는 이미 IBM과 인공지능 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가 위탁생산을 맡기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며 2026년 1분기 안에 반도체 개발 도구를 잠재 고객사들에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처음 라피더스를 설립할 때까지만 해도 2027년 2나노 반도체 생산 목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시각이 유력했다.
이는 삼성전자와 TSMC, 인텔 등 상위 파운드리 업체가 수십 년에 걸쳐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를 몇 년 만에 따라잡겠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산 목표 시점이 임박하자 라피더스가 더욱 강력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만큼 일본 정부의 ‘베팅’이 결실로 돌아올 수 있다는 관측도 점차 고개를 들고 있다.
2025년 초까지 일본 정부가 라피더스에 들인 자금은 9200억 엔(약 8조7천억 원)에 이른다. 1조 엔(약 9조4천억 원) 이상의 지원금을 추가로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TSMC와 라피더스를 동시에 지원하는 것은 상당한 재정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TSMC의 3나노 투자 유치와 라피더스의 2나노 반도체 양산 목표가 모두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이러한 투트랙 전략은 일본을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일본은 과거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국가로 평가받았으나 한국과 대만에 밀려 빠르게 경쟁력을 잃었다. 자국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한 노력은 최근 들어서야 본격화됐다.
조사기관 세미애널리시스는 반도체 전문지 EE타임스에 “일본이 라피더스에 이어 TSMC의 첨단 반도체 생산 설비까지 확보한다면 함박웃음을 지을 것”이라며 “일본은 반도체 강국 출신인 만큼 우수한 기술 인력이 많아 경쟁력 있는 국가”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