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12-23 15:2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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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CEO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 행보를 놓고 내외부의 비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비즈니스포스트] 개인정보 유출 사태 이후 전방위적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쿠팡을 향한 신뢰가 회사 안과 밖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있다.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직접 책임지지 않는 듯한 태도를 고집하는 것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23일 이커머스 업계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놓고 쿠팡에 등을 돌리는 사례가 회사 안팎에서 부쩍 늘어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쿠팡의 초기투자자로 유명한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가 상징적이다. 김 대표는 22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쿠팡 탈퇴”라는 짧은 글을 올리며 “(탈퇴는) 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개인 자유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렇게 위대한 결정은 아닌 듯…. 또 다른 사람들에게 요구할 것도 아닌 듯”이라고 언급했다.
알토스벤처스는 김 대표가 1996년 지인과 공동창업한 미국계 벤처캐피탈이다. 원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2006년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해 2014년 한국 지사를 세웠다.
스타트업 관계자라면 알토스벤처스는 선망의 대상이다. 크래프톤과 우아한형제들, 직방, 토스, 당근 등 국내 산업계를 대표하는 회사들이 모두 김한준 대표의 안목 덕분에 투자를 받아 성장했다. 벤처캐피탈,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김 대표의 눈에 들면 성공한다는 인식이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쿠팡도 이 가운데 하나다. 쿠팡은 2011년 3월 글로벌 헤지펀드인 매버릭캐피탈과 알토스벤처스에서 모두 200억 원을 투자받았다.
매버릭캐피탈과 알토스벤처스 모두 중장기 투자를 원칙으로 삼는다는 점이 김범석 의장에게 든든한 힘이 됐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단기간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 압박이 없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리라는 것이다.
김 대표는 알토스벤처스의 투자를 결정할 때 창업자와의 ‘케미(호흡)’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쿠팡이 한국 이커머스 시장을 주도하는 업계 리더로 올라서게 된 데는 김범석 의장을 향한 김한준 대표의 믿음이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쿠팡이 해마다 수천억 원의 적자를 낼 때도 김 대표의 신뢰는 꺾이지 않았다. 김 대표는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쿠팡이 알맹이 없이 덩치만 키우는 ‘위험한 회사’ 아니냐는 평가와 관련해 “똑똑한 투자자들이 쿠팡의 사업 구조와 실적 등을 보고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라며 “걱정하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지만 전혀 걱정 안 한다”고 말했다.
이런 관계였던 김 대표가 쿠팡을 탈퇴했다는 것은 의미가 남다른 것으로 여겨진다. 초기투자자의 눈에 비친 현재 쿠팡의 모습이 실망스러운 점을 보여주는 사례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쿠팡을 향한 신뢰를 거두는 듯한 분위기는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 초기만 하더라도 쿠팡의 대처가 아쉽지만 그래도 쿠팡을 사용하겠다는 사용자들이 많았다. 쿠팡 사태의 수혜주로 꼽히는 이마트와 네이버 등의 주가에 움직임이 사실상 없다시피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국적의 해롤드 로저스 대표가 국회 청문회에 등장하면서부터 분위기가 반전했다. 소비자들은 한국말도 하지 못하는 미국인 대표의 불성실한 답변 태도를 놓고 “한국 소비자를 무시하다니 열이 받는다”며 ‘탈팡’ 행렬을 가속화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일어나기 전 민주노총 쪽에서 새벽배송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을 때도 적지 않은 소비자들이 쿠팡을 엄호했다”며 “불과 한 달 만에 상황이 역전돼 소비자들이 신뢰를 철회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 수습이 지연되고 있다.
비단 소비자들만 쿠팡을 괘씸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이번 사태로 쿠팡의 여러 민낯이 드러나면서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도 사기가 더 떨어진다는 등의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범석 의장의 물류노동자 사망사고 축소 의혹, 짧은 근속연수 문화 등 부정적 얘기가 회자되면서 회사를 다닐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쿠팡의 한 직원은 “이재용 회장, 최태원 회장도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국민 앞에 나와 허리를 숙였다”며 “회사가 점점 어려움에 처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 김범석 의장이 무슨 배짱으로 버티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김범석 의장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고객을 와우하게 하라’인데 이를 증명하려면 고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타이밍이 됐다고 본다”며 “30~31일 예정된 국회 청문회에 출석하는 것이 쿠팡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의 위기는 점차 수치로도 드러나고 있다. 사태 전 평균 1600만 명대를 유지했던 쿠팡의 일간활성사용자 수는 최근 1400만 명대로 하락했다.
정부 역시 쿠팡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국세청 조사4국이 쿠팡 세무조사에 착수했으며 국회는 모두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연석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는 쿠팡을 향한 영업정지도 검토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도 이미 보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