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관련자 징계를 검토하자 검찰은 줄퇴진으로 맞서는 형국 속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신중론까지 더해져 양쪽이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어정쩡한 대치'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머리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여권과 법조계 움직임을 종합하면 법무부는 대장동 항소포기 사태를 두고 집단행동을 벌인 검찰 간부 등에 대한 징계 여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앞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전날인 17일 오전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는 길에 '검사장 18명에 대한 징계를 검토 중인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게 우선이고 무엇이 가장 좋은 방법인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검란'과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징계를 강하게 요구함에도 정 장관이 '신중론'을 내비친 셈이다.
민주당은 대장동 항소포기 사태를 두고 노만석 전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사실상 사퇴를 요구한 일부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두고 징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가 직접 검사징계법 폐지 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검사는 현재 일반 공무원과 달리 검사징계법의 적용을 받아 파면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에 관련법을 폐지해 검사도 파면이 가능해지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검사가 파면되면 변호사 개업이 어려워진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결연한 의지로 정치 검사들의 행태를 끊어내겠다는 결심을 해달라"며 "대통령 시행령에 검사장을 평검사로 발령 내기 어려운 '역진 조항'이 있어 인사를 못 하는 상황이라는데 이런 대통령령 폐지를 검토하고 건의하길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정 장관이 애초 정치권 예측과 달리 신중론을 펼친 가운데 검찰은 '줄사퇴'로 정부의 징계 검토에 대응하고 있다.
박재억 수원지검장은 17일 법무부에 사의를 표명했다. 박 수원지검장은 일선 지검장 18명이 대검의 대장동 항소포기 결정을 두고 노만석 당시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설명'을 요구한 일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도 같은 날 사의를 표명했다. 다만 송 고검장은 대장동 항소 포기와 관련해 자신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은 없다.
법조계에선 이들의 사의를 두고 법무부가 '연판장 지검장' 전원을 평검사로 끌어내리는 인사조처를 검토하자 그에 대한 '저항'의 뜻으로 행동에 들어갔다는 풀이가 나온다.
만약 지검장의 사의가 이어진다면 정부에도 부담이 될 공산이 크다. '정권이 검찰을 탄압한다'면서 보수진영이 결집하고 중도층 여론에도 크지는 않겠지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장관의 '신중론'과 지검장의 '줄퇴진 가능성'이 맞불리면서 일단은 어정쩡한 대치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는 정치권에서 나온다.
먼저 정 장관이 징계의 칼을 휘두리기 쉽지 않다.
▲ 박재억 수원지검장(왼쪽)과 송강 광주고검장. <연합뉴스>
연판장에 동참한 지검장 17명(수원지검장 제외)을 한꺼번에 평검사로 인사하고 징계절차에 들어간다면 실제 줄사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법무부는 이들의 사의를 수용하지 않고 징계절차를 진행하려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정치적 갈등이 격화할 게 뻔하다. '대검의 설명을 요구했을 뿐이다'는 주장과 '친윤검사가 집단행동으로 검찰개혁을 막으려 한다'는 주장이 정면으로 맞부닥칠 것이다.
지검장들도 현재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지검장들이 '팩트'에서 밀리고 있다. 이를테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두고 법무부 또는 대통령실 개입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는데 실상은 노만석 전 권한대행이 홀로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 쪽은 정 장관의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말을 두고 외압이라 주장하지만 검사들로선 더 이상 말을 잇기 힘들다. 장관이 정식으로 사건 지휘도 하지 않았기에 대검이 결정하면 그만이다. 또는 담당 검사가 징계를 각오하고 항소장을 제출해도 이런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요컨대 항소 포기의 귀책 사유가 검찰 자신에게 더 많은 셈이다.
하지만 이런 대치 상황은 민주당과 검찰의 추가 움직임에 따라 급변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특히 민주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정치검찰 퇴출의 고삐를 죄려 한다. 정치검찰의 집단행동을 묵과할 수 없으며 전부 또는 일부 지검장에 대한 징계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검찰의 대장동 사건 조작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특검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의 공세가 계속된다면 검찰도 반격의 기회를 엿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친윤검사들이 여전히 검찰 조직 내부 곳곳에 포진해 있다. 폭발력은 예전만 못하지만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인 셈이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