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집사 게이트'를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팀이 김 창업자에게 17일 오전 10시 출석을 요구해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됐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이해진과 김범수.
이해진은 네이버를, 김범수는 카카오를 창업해, 각각 '국민 포털'(네이버)과 '국민 메신저'(카카오톡) 회사로 키워냈다.
둘이 창업한 기업 모두 성장을 거듭해 '재벌'(공정거래위원회 대규모 기업집단 지정) 반열에 올랐다.
이해진의 재산은 12억 달러(1조6644억 원), 김범수는 32억 달러(4조4384억 원)에 이른다(포브스 2024년 9월 기준 보유주식 가치 집계).
세월이 흘러 둘 모두 환갑을 바라보는 2025년 들어 둘의 '처지'가 또 분명하게 엇갈렸다.
이해진은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으로 네이버 경영 일선에 전격 복귀했다. 2017년 3월 '도망치듯' 네이버 경영에서 물러나 회사 지분율(현재 3.77%)도 낮추고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직함으로 국외 사업에 몰두해온 지 8년 만이다.
또한
이해진이 네이버 핵심 인재로 발탁했던 인사들이 잇따라 이재명 정부의 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팀장은 대통령실 미래기획AI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됐고,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와 최휘영 전 NHN(지금은 네이버) 대표는 각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선임됐다.
'진격의 네이버'란 말까지 나온다.
반면 김범수는 곤궁한 처지로 몰리고 있다.
김범수는 지난 3월 건강 악화로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을 사임하는 등 카카오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데 이어, '집사 게이트'를 수사 중인 김건희 특검팀의 소환을 받았다.
김건희 특검팀은 지난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집사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사건의 실체를 신속히 규명하고 증거 인멸 방지를 위해 우선 사모펀드에 184억을 투자한 기관 및 회사 최고 의사결정권자에 대한 소환 조사를 이번주부터 진행할 예정"이라며 "1차로 한국증권금융, HS효성, 카카오모빌리티, 키움증권 측에 소환을 통보하고 소환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집사 게이트란 김건희 집사 김아무개씨가 2023년 자신이 설립에 관여한 렌터카 업체 IMS가 부실기업임에도 김 여사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카카오모빌리티 등으로부터 180억여원을 부정하게 투자받았다는 의혹이다.
김건희 특검팀은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윤창호 전 한국증권금융 사장, 김익래 전 다우키움그룹 회장에게 오는 17일 오전 10시 출석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일단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됐다. 다만, 향후 구체적인 조사 경과에 따라 피의자 전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에선 힘든 상황을 권력을 이용해 돌파하려 했던 게 동티가 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해진과 김범수의 엇갈린 처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해진과 김범수의 인연은 드라마 같다.
드라마 같이 이어진 인연과 악연 덕에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탄생시키고, 각각 국민 포털과 국민 메신저로 성장시키는 게 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네이버와 카카오톡 서비스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이해진과 김범수가 경영권 승계와 상속 등 '마지막 숙제'를 어떻게 잘 마무리하느냐에 따라서는 이병철 삼성 창업자와 정주영 현대 창업자를 능가하는 스토리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둘은 서울대에서 만났다.
김범수가 1966년생으로 한 살 많지만, 재수를 해 같은 학번이다. 1986년
이해진은 컴퓨터공학과, 김범수는 산업공학과에 나란히 입학해 1990년 함께 졸업했다.
이후 김범수는 서울대 대학원,
이해진은 카이스트 석사과정으로 진학하면서 헤어졌다가 1992년 삼성에스디에스(SDS)에서 다시 만났다. 둘 다 대학원(석사과정) 졸업 뒤 이 회사로 입사했다.
둘은 각각 벤처기업 창업으로 회사를 떠나면서 다시 헤어졌다. 1998년 김범수가 먼저 게임포털 ‘한게임’을 창업해 떠났다. 이듬해
이해진은 검색업체 ‘네이버컴’을 창업했다.
▲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 지난 3월 이사회 의장으로 전격 복귀해 AI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고 있다. 그가 네이버 인재로 발탁한 인사들이 이재명 정부 요직에 잇따라 등용되고 있다. <네이버> |
이해진은 네이버컴을 구글에 맞설 수 있는 '토종 검색 서비스' 업체로 키우고자 했다. 문제는 수익모델이었다. 게다가 1999년 ‘닷컴 버블’ 논쟁이 확산되면서 투자 유치도 쉽지 않았다.
더욱이 버블의 중심에 서 있는 코스닥 상장 업체들이 주가 폭락을 막는 인수합병 이벤트꺼리로 네이버컴을 집적댔다. '다이얼 패드'로 한 때 코스닥 상장 기업 중 시가총액 선두 자리까지 올랐던 새롬기술이 네이버컴과 합병 계획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기도 했다.
이해진은 후일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미국에 머물고 있는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과 한시간 가량 통화하며 '인수합병이 무슨 의미가 있냐. 아무런 시너지가 없다'고 하소연하며 네이버컴을 놔달라고 간청했다”고 밝혔다.
당시 김범수의 한게임은 온라인 고스톱·포커·바둑 게임 등으로 잘나가고 있었다. 온라인 고스톱 바람이 불었다.
물론 김범수의 고민도 컸다. 고스톱 게임 서비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고,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서버 운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유료화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이용자들이 저항할 게 뻔했다.
이해진과 김범수는 서로에게서 기회를 봤다.
네이버컴이 한게임을 인수합병했다. 네이버와 한게임의 영문 첫 글자 엔(N)과 에이치(H)가 들어간 ‘엔에이치엔’(NHN)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고,
이해진과 김범수가 공동대표를 맡았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의 합병은
이해진과 김범수 모두에게 ‘신의 한수’가 됐다. 합병 이듬해인 2001년 2월 한게임은 ‘프리미엄 서비스’로 유료화를 했고, 그 분기에 엔에이치엔은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이해진 공동대표는 당시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회사 설립 2년 만에 모처럼 웃었다. 게임포털 한게임의 프리미엄 서비스 유료화가 무난히 정착된 게 큰 힘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듬해(2002년) 8월 엔이치엔은 코스닥 등록 심사를 통과했다. 이로써
이해진은 검색 서비스 한우물을 팔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고, 김범수는 게임 사업을 마음껏 확장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네이버와 한게임은 닷컴 버블 붕괴기를 살아내기 위해 서로 필요해 만났을 뿐, 끝까지 함께 할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상장을 통해 네이버컴이 한게임을 필요로 했던 요인(자금)이 해소됐고, 특히
이해진과 김범수의 사업 방식과 비전이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이해진의 사업 비전에 게임은 들어있지 않았다.
이해진 쪽이 한게임 쪽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얘기가 들리는가 싶더니, 2007년 김범수가 공동대표에서 물러나 미국법인 대표 명함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후
이해진은 게임 사업을 ‘엔에이치엔엔터테인먼트’로 분사하고, 회사 이름을 다시 네이버로 바꿨다.
김범수는 새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2010년 김범수는 귀국해 카카오를 창업하고,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내놨다.
카카오톡은 곧 ‘국민 메신저’로 불릴 정도로 사람들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카카오가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사업 영역을 '문어발' 확장하면서 네이버와 충돌 지점도 늘어갔다.
이후
이해진과 김범수는 '라이벌'로 불렸고, 처지가 엇갈리기를 반복했다.
2017년
이해진이 네이버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는 사실상 홀로 '정'을 맞았다.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여러 상임위에 '단골 증인'으로 소환됐고, 평소에도 포털·댓글·뉴스 등과 관련해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국회 관련 상임위에 불려갔다.
출석 때마다 홀로 '다구리'(뭇매)를 당했다. 언론까지 망치를 들었다.
김범수는
이해진 뒤에 숨어 바람을 피했다.
이해진이 회사 지분율을 낮추고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사실상 국외를 떠돌며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자, 이번에는 김범수가 전면으로 끌려나왔다.
이해진보다 더 혹독하게 다구리를 당했다.
국회 상임위에 수시로 불려갔고, 도박설·마약설 등 각종 '설'이 불거졌다. 문어발 확장, 골목상권 침해, 부당 내부거래 등 논란도 잇따랐다. 계열사 경영진의 '먹튀' 논란까지 일었다.
결국 김범수는 계열사 수 축소 선언과 준법감시위원회 설치에 더해 개인 재산 사회 기부 약속 카드까지 내밀어야 했다.
카카오 쪽에선 이 과정에서 회사 이미지와 가치가 실추되고, 김범수의 건강이 악화됐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되짚어 보면, 둘의 처지가 엇갈릴 때마다 서로의 손을 잡거나 홀로 절치부심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았다.
이해진은 닷컴 버블 붕괴로 생존 위기에 몰렸을 때 김범수와 손잡은 덕에 네이버를 구글과 경쟁해 살아남은 토종 검색 서비스로 키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김범수는
이해진에게 '내처진' 뒤 벤처기업의 산실 새너제이로 가 절치부심하다 카카오톡이란 걸작을 만들었다.
이해진은 네이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카카오톡 같은 서비스를 찾다가 일본 시장에 '라인'을 출시했다. 그 시기 네이버는 '꽃 프로젝트'를 통해 포털에 이어 온라인 커머스 시장까지 거머쥐는 기반을 마련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AI 흐름이 가팔라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재명 정부 들어 'AI 100조 투자'를 통해, 전 국민이 인공지능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두의 AI' 시대를 열고, 우리나라를 '세계 AI 3대 강국'으로 키우는 프로젝트가 추진 중이다.
이해진이 네이버 이사회 의장으로 전격 복귀한 목적도, 네이버가 AI 흐름 속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AI 흐름은 1990년대 후반 닷컴 붐과 2010년대 즈음의 모바일 전환 흐름 이상으로 거대하고 강력하다. 정부부터 기업과 이용자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생태계 구축 노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빅테크들이 이미 헤게모니를 쥐고 있기도 하다.
닷컴 버블 붕괴기를 살아낼 때처럼
이해진과 김범수가 서로 손잡고 "크로스!"를 외치거나 모바일 전환 흐름 때 각자 절치부심하며 활로를 찾았던 것 이상의 승부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해진은 네이버 출신들이 새 정부에 대거 등용되는 '꽃놀이패' 상황 뒤 '정치적 위험'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이재명 정부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하소연해봤자 소용없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게 상책이다.
김범수는 털고 가는 게 상책이다. 그동안 보여준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지난 것을 툭툭 털어내고 더 큰 것에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을 기대한다.
이해진과 김범수 모두 이제 환갑을 바라보고 있다.
둘의 성공사를 30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봐온 IT담당 현장기자로써, 앞으로 다시는 둘의 처지가 엇갈리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이제는 사회와 국가의 앞날까지 생각하는 '경륜 물씬한 승부수'로 각각 지금의 처지와 앞으로 닥칠 위험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 성공 스토리를 이어가길 기대해본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