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루오벌SK 로고를 차량 옆면에 붙인 포드 F-150 라이트닝 전기 픽업트럭이 켄터키주 베른하임 숲에 주차돼 있다. < 블루오벌SK > |
[비즈니스포스트] SK온과 포드가 미국 켄터키에 건설 중인 합작공장이 가동 시기가 지연되는 가운데 닛산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까지 일부 생산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배터리 닛산 공급으로 합작공장의 가동률을 올릴 수 있지만 포드의 전기차 전환 축소가 본격화하는 것일 수도 있어 SK온이 마냥 웃을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22일 블룸버그는 상황을 잘 아는 취재원 발언을 인용해 “닛산이 SK온-포드 합작사 ‘블루오벌SK’ 켄터키주 공장에서 배터리를 조달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라고 보도했다.
앞서 SK온은 올해 3월19일 전기차 100만 대 분인 99.4기가와트시(GWh) 규모의 배터리를 2028년부터 6년 동안 닛산에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SK온은 조지아주 커머스시에 단독공장도 운영하는데 이곳이 아닌 컨터키에 짓는 포드 합작공장에서 닛산행 배터리를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SK온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닛산에 공급할 배터리는 북미 지역에서 제조한다는 게 공식 입장”이라며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일단 선을 그었다.
합작공장은 애초 포드에 들어갈 배터리만 생산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 외부 고객사(닛산)행 배터리를 제조하게 된다면 공장 완공 뒤 가동률 상승에 따른 실적 증가 효과 등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포드가 경쟁사인 닛산 배터리를 자사 합작공장에서 제조하도록 합의하는 일을 전기차 전환 계획 축소로 읽을 수 있다는 시각도 한편에서 나온다.
SK온이 포드에 공급하는 배터리 수요가 중장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구나 닛산에 대규모 공급 계약이 원래 체결돼 있던 만큼 신규 수주로 보기도 어렵다.
닛산행 배터리를 합작공장에서 만들면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기반한 첨단제조 세액공제(AMPC)도 포드와 나눠야 한다.
AMPC는 전기차나 배터리, 태양광 등 기업이 미국 현지에서 친환경 제품을 생산할 경우 해당 기업에 혜택을 지급하는 제도다. SK온은 올해 1분기 미국에서 1708억 원의 세액공제를 받았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합작공장 라인을 닛산에 일부 할애하는 방안이 SK온에는 호재라고만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미국 투자관리사 잭스인베스트먼트는 22일 보고서를 통해 “블루오벌SK 공장 배터리를 닛산에 공급하는 건 포드가 전기차 전환에서 더 멀어진다는 신호”라며 “켄터키 2공장 가동이 불투명한 가운데 1공장 물량마저 닛산과 나누게 됐다”라고 분석했다.
▲ 13일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 위치한 닛산 본사에서 경영진이 2024회계연도 실적을 발표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SK온은 2021년 5월 배터리 공급 핵심 파트너인 포드와 미국에 합작사를 설립하고 켄터키와 테네시에 연산 129GWh 규모의 공장을 구축하려 했다.
이후 포드가 예상치를 밑도는 전기차 판매로 관련 사업부에서 연간 수십억 달러 손실을 내고 투자를 축소해 SK온은 고객사 다변화가 절실해졌다.
닛산과 맺은 공급 계약도 고객 다변화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닛산의 전기차 사업마저 경영난으로 지속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닛산은 이번 달 9일 일본 규슈섬에 11억 달러 규모로 건설하려던 전기차 배터리 공장 계획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더해 전체 직원의 15%인 2만 명을 감원하고 연간 완성차 생산도 기존 350만 대에서 250만 대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닛산은 2024회계연도(202년 4월~2025년 3월)에 6708억 엔(약 6조4600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포드 및 닛산을 협력사로 선택한 SK온에 불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GM과 스텔란티스를 파트너로 선택한 LG에너지솔루션 및 삼성SDI와 미국 시장에서 엇갈린 길을 걸어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GM도 최근 배터리 합작공장 1곳 지분을 LG에너지솔루션에 넘기긴 했지만, 미리 대량생산 체제를 이뤄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SK온과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이 미국 배터리 협력사를 각각 누구로 선택했는지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SK온 미국 배터리 사업은 가장 중요한 협력사로 남은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실적에 크게 영향을 받는 일이 불가피하게 됐다.
SK온으로서는 트럼프 정부와 공화당이 자동차 관세 부과에 이어 IRA 전기차 보조금 폐지 법제화 단계를 구체적으로 밟아 나가는 시점이라 더욱 큰 어려움에 놓일 수 있다.
다만 닛산에 배터리 공급이 미국에 생산 설비를 구축한 SK온의 고객사 다변화를 이끄는 마중물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SK온은 최근 미국 전기픽업트럭 기업인 슬레이트에 한화로 4조 원대로 추산되는 배터리 공급 계약을 맺기도 했다.
이석희 SK온 대표이사 사장은 4월25일 슬레이트에 배터리 공급 소식을 알리면서 “미국은 SK온의 핵심 전략 시장이며, 앞으로도 고품질의 현지 생산 배터리를 제공해 다양한 고객을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