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물가 상승 압력에 대응해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로서는 물가 안정을 해치지 않으면서 취약 가계와 내수기업의 소비·투자 여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과제로 떠올랐다.
| ▲ 한국 경제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5년 만의 4% 성장 가능성을 열었지만,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은 고금리 장기화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신선대 부두에 수출입 화물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
한국은행이 27일 발표한 '2026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을 보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보다 1.0% 성장했다. 지난 8월 전망치 0.3%의 3배를 넘는 수준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3.4% 성장했다.
올해 1~3분기 누적 성장률이 3.6%인 점을 고려하면 4분기 성장률이 제자리걸음을 해도 연간 성장률 3.6%를 기록하게 된다. 한국은행 측은 4분기 성장률이 1.4% 이상이면 연간 4%대 성장률도 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4% 성장이 현실화하면 코로나19 충격 뒤 경기 반등이 나타났던 2021년 이후 처음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4분기 성장 속도가 3분기보다 더 빨라져야 한다.
한국은행은 앞으로도 반도체 경기 호조에 힘입어 수출과 투자의 높은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민간소비가 얼마나 반등하느냐가 연간 성장률의 추가 상승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로 꼽힌다.
3분기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2% 감소했지만 한국은행은 증시 조정에 따른 금융서비스 소비 감소와 자동차업체 파업에 따른 승용차 인도 지연 등 일시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승용차 소비가 반등하고 반도체 기업의 배당·성과급, 정부 이전지출 등이 늘면서 소비 회복세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했다.
문제는 높은 성장세에도 물가 상승 압력이 지속되고 수도권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관련 금융불균형 우려도 남아 있어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의 회복이 제약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호황으로 수출기업의 실적은 개선되고 있지만 그 성과가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과 매출 회복이 더딘 가계와 내수기업은 높은 금융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한국은행은 9월 금융안정 상황 기자설명회에서 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각각 3조3천억 원, 3조7천억 원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구당 이자비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늘었고, 한국은행도 지난 9월 중소기업 대출을 중심으로 기업 연체율이 상승해 장기평균을 웃돌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지난 7월과 8월 기준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올려 연 3.00%로 높였다. 이달 22일에는 두 차례 인상의 파급 영향과 대내외 불확실성 등을 점검하기 위해 동결했지만, 앞으로 추가 인상의 시기와 속도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했다.
물가 안정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는 판단도 내놓았다. 9월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상승률은 각각 2.9%, 2.8%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누적된 비용압력이 다른 가격으로 전이되고 수요 측 압력도 커지면서 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인 2%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수출과 투자 호조가 곧바로 물가 과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적된 비용 압력에 소득 개선과 소비 회복에 따른 수요 측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통화긴축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은행은 내년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 상승률도 기존 전망치를 상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신현송 한은 총재는 23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과거와 같은 초저금리 시대로 쉽게 돌아가기 어렵다는 진단에 동의하면서 "앞으로 고성장, 고금리 상황이 펼쳐질 것에 대비해 정책을 잘 펴겠다"고 말했다.
| ▲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한국은행은 금융시스템이 대체로 안정적이고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도 전반적으로 감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봤다. 다만 금리 상승에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는 취약 부문은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건설경기 회복에도 금융비용이 변수다. 3분기 건설투자는 토목건설을 중심으로 전분기보다 0.7% 늘었지만, 전년 동기 대비로는 0.7% 줄며 10분기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분기 반등만으로 부진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10월 월간 건설시장동향에 따르면 지난 8월 건설수주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1%, 민간수주는 13.0% 감소했다. 건설공사비는 6.0% 상승했다. 연구원은 9월 보고서에서 고금리와 공사비 상승에 따른 민간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위축을 건설수주 부진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높은 금융비용과 공사비 부담 속에서 민간 건설사업의 사업성과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정부로서는 물가와 금융안정을 관리하면서 고금리 부담이 집중된 취약 가계와 내수기업의 회복을 뒷받침하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가계와 기업의 상환능력, 민간 건설사업의 사업성과 자금조달 여건 등을 고려해 지원 대상을 선별하고 소비·투자 회복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도 이날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 경제는 지표상으로만 보면 매우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도 "민생 회복은 아직도 더디고, 소득과 자산, 일자리 등에서의 격차 문제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생활비 절감 방안을 추진하고 지역경제와 골목상권 활성화 대책을 연말까지 집중 시행하라고 주문했다. 집행이 부진한 공공사업에 속도를 내고 주택 착공 실적을 높이는 한편 필요하면 국가 차원의 신용지원뿐 아니라 재정지원도 고려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정부의 대책이 실제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소비와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에 맞춰 지원 방식을 달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생활비·원리금 부담이 큰 가계의 소비 여력을 보완하고, 착공이 지연되는 건설사업장에는 금융비용과 사업성 문제를 구분해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과정에서 지원이 물가 상승 압력이나 수도권 주택시장·가계부채 불안을 키우지 않도록 하는 것도 과제로 남는다.
반도체 호황으로 연간 4% 성장 가능성이 열렸지만 성장세가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 확대로 확산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고금리 환경에서도 취약 가계와 내수기업의 부담을 덜고 소비·투자 회복을 뒷받침하면서 물가와 금융안정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정부 경제정책의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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