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 국정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실효적 보상안이 되지 않는다면 피해 보상을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 감경을) 감안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나온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 발언이다. 앞으로는 정보 주체 눈높이에 맞지 않는 개인정보 유출 피해 보상안으로는 과징금 감경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못 박는 것으로 읽힌다.
앞서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티빙이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에게 제시한 보상안이 실질적인 피해 보상보다는 자사 서비스 이용을 유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짚었다.
김 의원은 "3954만 건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는데 자사 결제를 유도하고 계열사 쿠폰을 쥐여주는 게 진정한 피해 보상이냐"며 "결국 호객행위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질의를 이어갔다.
김 의원은 이어 "추가 보상안이 제출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위는 이번 사태를 더 엄정하게 조사해 법이 허용하는 최고 수준의 과징금과 제재를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장 발언은 김 의원의 이 질의에 대한 답변 형태로 나왔다. 송 위원장은 티빙에 대한 과징금 부과 시점에 대해서는 "연내에 처분을 마무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위원장의 이날 발언대로라면, 티빙은 연내로 예상되는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 산정 시 추가 보상안 발표 없이는 감경을 읍소하는 게 어려워지고, 혹시 티빙이 막무가내로 이를 시도해도 개인정보보호위가 수용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티빙 이용자 개인정보 유출은 단일 건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보안을 소홀히하다 해킹을 당해 유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매우 중대한 위반'으로 판단돼 과징금이 산정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티빙 과징금 역시 몇 단계에 걸쳐 이뤄지게 돼 있는 감경(조정) 절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전례로 볼 때 개인정보 유출 기업과 법률 대리업체(법무법인) 기술자들의 '작업'으로 과징금이 '솜방망이' 수준으로 꺾일 수도 있다.
이날 국감에선 보안 소홀로 해킹을 당해 개인정보를 대량 유출한 기업들이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을 감경받을 목적으로 무늬만 부풀린 보상안을 내놓고, 개인정보보호위는 이를 빌미로 과징금을 깎아주는 관행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법 시행령의 '과징금 산정기준과 산정절차'(별표1의5)는 '위반 행위로 인한 피해의 회복 및 피해 확산 방지 조치의 이행 여부' 등을 고려해 과징금을 감경할 수 있게 하고 있다. 1차 조정을 거친 금액을 절반(50%)까지 또 깎아줄 수 있다.
개인정보 유출 기업들이 한결같이 개인정보보호위 과징금 심결 전 '무늬만 보상' 방안과 '재발 방지 시늉' 대책을 서둘러 내놓는 이유이다.
2023년 LG유플러스가 이를 시도해 큰 '성공'을 거뒀고, 지난해와 올해는 각각 SK텔레콤과 쿠팡이 이를 본받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정보보호위 전원회의 속기록을 보면, 지금은 거의 모든 개인정보 유출 기업과 이들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대형 법무법인들이 이를 수학 공식처럼 활용하는 모습이다.
SK텔레콤은 지난해 7월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의 'SK텔레콤 침해사고 최종 조사결과' 발표 직후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유영상 당시 SK텔레콤 사장은 "믿고 기다려주신 고객에 대한 감사와 이번 사고에 대해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 보안이 강한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약속의 의미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여기에 '사상 최악' 통신망 해킹 및 가입자 개인정보 유출에도 도망(해지 및 번호이동)가지 않고 남은 가입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고객 감사 패키지'도 담았다.
8월 사용분 이동통신 요금 50% 할인, 오는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씩 추가 제공, T멤버십을 통한 도미노피자·뚜레쥬르·파리바게트 할인율 확대 등 3가지로 설계됐다.
SK텔레콤은 고객 감사 패키지에 대해 "총 5천억 원 규모"라고 강조했다. 7월10일부터는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 동안 매달 데이터를 50기가바이트씩 추가 제공한다고 하는데, 월 6만원대 이상 요금제를 선택해 이미 데이터를 사실상 무제한 쓰고 있는 가입자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어린이·청소년 요금제 가입자와 피처폰 사용자들도 마찬가지다.
8월 사용분 요금 50% 감면을 두고도 뒷말이 많았다. 월 정액요금에 따라 감면액이 달라 결과적으로 가입자를 차별하는 문제가 있다며, 요금을 감면할 거면 정률이 아닌 정액으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 유심 복제 등 추가 피해 발생 가능성에 대한 마음 졸임, 유심 교체를 위해 오픈런을 하고 대리점 앞에 줄을 서는 불편 등은 월 정액요금과 무관하게 똑같이 겪었다는 이유에서다.
T멤버십 할인율 확대 역시 어르신 등 멤버십 활용이 익숙지 않거나 오지에 거주하는 가입자에게는 그림 속 떡에 지나지 않는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가 조사한 '2024년 디지털 소비자 인사이트'를 보면, 우리나라 통신사 멤버십 프로그램 이용률은 36%에 그쳤다.
아니나 다를까. 정보인권 시민단체 쪽에서 'SK텔레콤은 고객 감사 패키지를 "총 5천억 원 규모"라고 강조했는데, 이를 산정할 때 버려질 것으로 예상되는 데이터를 어찌 반영했나?' '포함시켜 계산한 게 5천억 원인가, 빼고 계산된 게 5천억 원인가?' '메가바이트(MB), 혹은 기가바이트(GB)당 얼마로 계산했나?' '가입자 열 명 중 여섯 명 꼴로 멤버십을 이용하지 않는 부분은?' '모든 가입자가 멤버십을 이용한다고 가정해 5천억 원에 포함시켰나, 아니면 빼고 계산했나?'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개인정보보호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 산정 과정에서 5천억 원이란 수치가 감경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 SK텔레콤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은 5천억 원 규모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1348억 원에 그쳤다.
쿠팡 역시 마찬가지다.
쿠팡은 지난해 12월29일 1조6850억 원 규모의 피해 보상안을 발표했다. 피해자 한 명당 5만 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주겠다고 했다.
구매 이용권은 로켓배송·로켓직구·판매자 로켓·마켓플레이스 쿠팡 전 상품(5천 원), 쿠팡이츠(5천 원), 쿠팡 트래블 상품(2만 원), 알럭스 상품(2만 원) 등 4가지로 구성됐다. 각각 1회씩만 사용할 수 있다.
5만 원 이용권을 다 쓰려면 4가지를 풀로 써야 한다. 쉽지 않다. 이용이 많지 않은 서비스 이용권도 포함됐다.
피해 보상안 1조6850억 원은 각 이용권을 다 풀로 썼을 때를 가정한 금액이다.
이용자들이 "트래블·알럭스 쿠폰은 있으나 마나, 나머지 쿠폰은 상시 있는 거" "쓸만한 건 5천 원짜리 하나, 결국은 5천 원 쿠폰이 전부" "짤짤이 쿠폰" 등의 비아냥을 쏟아냈다.
쿠팡 역시 '1조6850억 원 피해보상안'을 앞세워 개인정보 과징금 감경을 읍소했다. 애초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됐던 쿠팡 개인정보 유출 과징금은 실제로는 4235억7500만 원이 부과되는 데 그쳤다.
이들의 속내는 이후 행보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와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가 각각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 한명당 10만~30만 원씩 보상하라는 조정안을 모두 거부했다.
개인정보 피해 보상에 조금이라도 '진심'을 가졌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 ▲ (왼쪽부터) 최주희 티빙 대표, 이종현 SK텔레콤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홍관희 LG유플러스 CISO, 이상운 KT CISO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국감에서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눈을 부라리고 있음을 보여줬고, 송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선을 그었으니, 그러지 않을 거라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번 국감에서 티빙 해킹 및 개인정보 유출 건에 대해서는 조정식 국민의힘 의원도 최주희 티빙 대표를 상대로 질의를 이어갔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질타한 것이다.
다만, 송 위원장의 다음 말이 걸린다.
"보상이 적다고 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다른 기업들이 보상할 유인이 적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도 감안해서 철저하게 보도록 하겠다."
보상안으로 과징금 감경을 읍소할 길은 열어두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어진 발언도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개인정보위는 합의제로 이뤄지기 때문에 여러 위원 간 숙의를 거쳐 결정하겠다."
기존 과징금 산정 결정 틀은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개인정보보호위 전원회의 속기록을 보면, 피심 기업의 'X맨'이 하는 말처럼 들리는 발언들이 꽤 있다.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를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바람'을 잡는 식이다. 숙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발언들도 과징금 산정에 반영돼왔는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개인정보보호위 위원들은 개인정보 유출 기업과 법률 대리 업체들의 주요 공략 대상이다. 개인정보보호위가 위원을 새로 선임할 때마다 개인정보 유출 기업의 법률 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출신들이 포함돼 이해충돌 가능성 논란이 일기도 한다.
송 위원장 국감 답변에 기대를 걸면서도, 한편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지 의문을 갖는 이유다.
개인정보 유출 기업들이 엉터리 보상안과 재발 방지 대책으로 생색을 내고, 이를 앞세워 과징금을 많게는 수천억 원씩 깎아달라고 읍소하는 행태가 사라질까. 개인정보 유출 피해자들이 당하는 2차 피해에는 기업들의 이런 행태가 주는 속상함도 포함된다. 김재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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