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가 누르기 방지법'으로 순위 경쟁시킨다, 기업들 PBR개선보다 '눈치싸움' 불보듯
김민정 기자 heydayk@businesspost.co.kr2026-08-04 16:5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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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대주주의 ‘주가 누르기’를 막기 위해 내놓은 세제개편안이 되레 장기간 주가를 낮게 유지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을 도입함에 따라 상당수 저평가 기업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데다,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는 평가액 산정 방식도 기존 발의안보다 후퇴해 주가 억제 유인을 차단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4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2026 세제 개편안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정치권 안팎의 의견을 종합하면 정부가 3일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담긴 주가 누르기 방지책을 두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초 발의안보다 적용 대상이 크게 줄어 상당수 저평가 기업에 면죄부를 주고 더 장기적 주가 누르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으로 불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은 대주주가 상속·증여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행위를 막자는 취지에서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5월 발의했다.
이 의원의 안은 비상장주식 평가에 적용되는 ‘순자산가치 80% 하한’을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에 못 미치는 상장주식에도 적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기업의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상장주식은 주가를 기준으로 가치가 평가되므로 주가가 낮을수록 대주주의 상속·증여세 부담도 줄어든다. 이 의원 안은 주가가 아무리 낮아지더라도 세금 부과를 위한 주식 평가액이 순자산가치의 80% 밑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하한선을 설정한 것이 핵심이다.
이 의원 안에 따르면 대주주가 주가를 PBR 0.2배 수준까지 낮춰 놓더라도 세금은 최소 PBR 0.8배를 기준으로 부과된다. 주가를 억지로 낮춰 세 부담을 줄일 실익이 줄어드는 구조다.
반면 정부가 내놓은 개편안은 PBR 0.8배라는 절대 기준 대신 코스피의 경우 PBR 하위 25%, 코스닥의 경우 PBR 하위 10%라는 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적용 대상이 대폭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주가 정상화를 유도하는 효과도 이 의원안보다 크게 약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의원은 이날 개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정부안을 두고 “사실상 적용 대상이 없는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PBR 0.8배 이하인 기업은 국내 상장회사 가운데 절반가량인 1300여 곳이다. 반면 정부안에 따라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12개 반기 동안 업종별 하위 기준에 포함되는 기업은 130곳 안팎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됐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이 정부안 적용 대상을 추산한 결과 코스피에서는 84~87곳, 코스닥에서는 43곳가량이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마저도 최근 13개 반기 가운데 2개 반기에서 업종별 하위 기준을 벗어나면 충족 기간이 11개 반기로 줄어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보다 PBR이 조금만 높으면 PBR이 0.4배나 0.5배에 머물더라도 평가 대상에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기업들이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을 통해 PBR 자체를 높이기보다 같은 업종 기업들의 PBR과 하위권 경계선만 살피는 ‘눈치싸움’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거버넌스포럼은 정부의 업종별 상대평가 방식이 지나치게 많은 저PBR 기업을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지적했다.
거버넌스포럼은 이날 논평에서 “국내 증시 대부분 업종 PBR 중간값이 정보기술(IT)을 제외하고 1배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에서 업종별 하위 25%를 고르는 방식은 수많은 저PBR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4일 개인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비판했다. <이소영 페이스북 갈무리>
정부 안이 기업들의 장기적인 주가 누르기를 오히려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의원 안은 순자산가치의 80%라는 고정된 하한을 두지만 정부 안은 낮은 주가에 일정 비율을 더하는 데 그친다.
정부 안에 따르면 장기 저PBR 기업은 현행 평가기간 말일로부터 소급해 6개월, 1년, 2년, 3년, 4년, 5년, 6년, 6년6개월 간 각각의 평균액, 현행 평가액(기준일 전후 2개월)에 30%를 더한 금액 가운데 가장 높은 금액으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대주주가 장기간 주가를 낮게 유지할 경우 과거 6년 평균 주가마저 저평가돼 최종 평가액 역시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순자산가치가 1조 원인 기업의 시가총액이 2천억 원(PBR 0.2배)까지 떨어졌을 때, 이 의원 안을 적용하면 주식 평가액은 8천억 원이 된다. 반면 과거 6년 간 시총이 계속 2천억 원 수준으로 낮았다는 가정 아래 정부 안을 적용하면 평가액은 2600억 원에 그친다.
주요 대기업 가운데 상당수도 적용 대상에서 비껴날 것으로 예상된다. 거버넌스포럼이 추산한 적용 대상 기업의 평균 시가총액은 코스피 5557억 원, 코스닥 1173억 원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번 정부안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과 같다”며 “CJ 등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기업들이 대부분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이소영 의원안은 기준이 단순하고 명확한 데다 실제 주가 정상화를 유도하는 효과도 정부안보다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3일 SNS를 통해 “주가 누르기 방지법은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는데 정부안은 주가 누르기 방지법의 아이디어 자체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향”이라며 “11월 말까지 심의가 진행되는 만큼 그 전까지 문제점을 최대한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