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에이블리의 개인 맞춤 상품 추천 서비스가 서울 동대문 의류 도매상가에서 상품을 떼어다 파는(동대문 사입) 판매자 중심의 사업 구조와 맞물리면서 판매자 사이의 가격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이블리는 동대문 사입 기반 판매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해왔는데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판매자들이 많아지면서 조금이라도 싼 제품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의 부작용도 함께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에이블리의 개인 맞춤 상품 추천 서비스 판매자 사이 가격 경쟁을 키우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에이블리>
3일 에이블리 안팎의 상황을 종합하면 입점 판매자들 사이에서는 상품 상세페이지에 유사 상품이 함께 노출되는 추천 방식을 놓고 가격 경쟁을 심화시킨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이런 불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부 판매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한 판매자는 인스타그램 릴스를 통해 쇼핑몰 운영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을 공유하며 어렵게 에이블리 판매 채널에 고객을 유입해도 에이블리 자체 기능으로 상품 상세페이지에서 유사한 디자인의 상품이 함께 추천되면서 실제 구매는 다른 쇼핑몰에서 이뤄지는 일이 잦다고 적었다.
이러한 고충은 다른 판매자들 사이에서도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 커뮤니티에는 에이블리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토로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판매자들은 "에이블리는 이용자 연령대가 10·20대 위주라 최저가 경쟁이 특히 심한 것 같다", "독보적 스타일로 눈에 띄지 않는다면 광고 없이 살아남기 힘들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에이블리가 성장 과정에서 구축한 판매자 생태계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내 패션 플랫폼 가운데 에이블리와 지그재그는 동대문 소호 쇼핑몰(개인이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을 핵심 판매자로 확보하며 성장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동대문 소호 쇼핑몰은 일반적으로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상품을 사입한 뒤 모델 착용 사진과 스타일링, 상세페이지 등을 자체 제작해 판매한다.
다만 같은 도매처에서 상품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아 서로 다른 쇼핑몰이라도 실제 판매하는 상품은 상당 부분 겹칠 수 있게 된다. 플랫폼 안에서도 비슷한 상품이 함께 판매될 가능성이 높은 구조인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초개인화 추천 알고리즘이 이용자에게 맞춤 유사 상품을 연이어 노출하면서 소비자의 가격 비교가 쉬워졌고 판매자 사이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소호 쇼핑몰처럼 비슷한 제품군이 많은 플랫폼에서는 10·20대 소비자들이 1천~2천 원 수준의 가격 차이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며 "상품 차별성이 크지 않다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가격 경쟁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블리는 성장 과정에서 판매자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전략을 썼는데 이 전략 역시 판매자들의 가격 경쟁을 부추기는 데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에이블리는 강석훈 대표가 2018년 선보인 패션 플랫폼이다. 패션업계에서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가파르게 성장하며 최근까지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에이블리는 강석훈 대표가 2018년 선보인 패션 플랫폼으로 비교적 후발주자임에도 가파르게 성장했다. 사진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에이블리 사옥. <에이블리>
올해 4월 기준 국내 버티컬 플랫폼 가운데 에이블리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998만 명으로 가장 많았다. 6위에 오른 지그재그(411만 명)와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강 대표는 초기 인플루언서가 동대문 사입 의류를 소개하면 에이블리가 상품 등록과 주문, 배송, 고객응대 등을 모두 담당하는 '파트너스' 제도를 운영하며 판매자 기반을 마련했다.
2019년에는 일반 판매자도 입점할 수 있는 '셀러스' 제도를 선보이며 판매자 저변을 본격적으로 넓혔다. 당시 월 이용료 4만9천 원만 내면 플랫폼 수수료를 받지 않는 정책을 내세워 판매자 유치에 속도를 냈다.
이후 에이블리는 2022년 판매액의 3%를 받는 정률제로 전환했고 지난해 9월에는 이를 4%로 인상했다. 다만 현재도 지그재그(8.5%)보다 낮은 수준의 수수료를 유지하고 있으며 입점 셀러는 10만 명에 이른다.
에이블리는 비슷한 상품을 판매하는 셀러가 대거 모인 가운데 업계 최대 이용자 규모까지 갖추게 됐는데 소비자들의 편의 확대를 위해 도입한 추천 알고리즘이 결과적으로는 판매자 사이 가격 경쟁을 더욱 증폭시키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회사는 비슷한 상품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쇼핑 편의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규 판매자의 노출 기회를 확대하는 순기능도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유사 상품 추천 서비스는 단순 최저가 비교가 아니라 이용자의 스타일 취향에 맞는 상품을 제안하기 위한 인공지능(AI) 개인화 기능"이라며 "같은 상품이라도 스타일링과 코디 제안 방식에 따라 판매 성과가 달라질 수 있어 가격만으로 소비자의 구매가 결정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조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