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세진 리가켐바이오 대표이사가 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리가켐바이오 글로벌 R&D 데이 2026'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박세진 리가켐바이오 대표이사가 1조 원에 가까운 재원을 바탕으로 항체약물접합체 기술수출 성공공식을 다시 짠다.
중국발 항체약물접합체 경쟁이 거세지는 만큼 조기 기술수출 전략은 유지하되 일부 핵심 후보물질은 후기 임상까지 직접 끌고 가는 방식으로 글로벌 신약개발회사 전환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리가켐바이오는 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리가켐바이오 글로벌 R&D 데이 2026’을 열고 2035년까지의 연구개발 전략과 로드맵을 제시했다.
박 대표는 이날 행사에서 중장기 전략인 'LCB 2.0' 전략의 배경을 중국발 항체약물접합체 경쟁 심화에 따른 위기의식으로 설명했다.
박 대표는 “중국발 쓰나미가 오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기존의 컨쥬올과 프로피비디 등의 차별적 장점만 가지고서는 5년 후, 10년 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굉장히 다가왔다”며 “질적인 변신을 하지 않으면 향후 5년, 10년 안에 살아남기 어렵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LCB 2.0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는 최근 국민성장펀드로부터 5천억 원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기존 사내 보유 현금까지 더하면 9500억 원에서 1조 원에 가까운 재원을 확보하게 된다.
리가켐바이오에는 이번 투자 유치가 단순한 자금 조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조기 기술수출을 통해 성과를 내던 기업에서 핵심 후보물질은 임상 2상과 3상까지 직접 끌고 가는 기업으로 바뀔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글로벌 제약사 및 바이오텍과 모두 15건, 누적 9조6천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앞으로도 기술수출 전략은 유지한다. 다만 전임상이나 임상 초기 단계에서 기술수출하는 방식에 더해 일부 후보물질은 자체 임상으로 가치를 높인 뒤 더 큰 규모의 기술수출을 추진한다.
최재욱 리가켐바이오 부사장은 이날 사업개발 전략 발표에서 “사내 보유 현금 4500억 원과 앞으로 들어올 돈을 생각하면 1조 원 정도가 된다”며 “지금과 같은 지속적 기술이전은 하되 큰 그림에서는 임상 2상이나 후기 단계로 진입하는 파이프라인 숫자를 늘리고, 3상까지도 가서 지금보다 훨씬 더 규모나 부가가치 측면에서 큰 기술이전을 하겠다는 것이 큰 줄기”라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가 이날 제시한 중장기 전략은 ‘LCB 2.0’이다. 현재 강점을 지닌 항암 항체약물접합체 분야에서 경쟁력을 지키는 동시에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 비항체약물접합체, 비항암 치료영역으로 확장하겠다는 구상이다.
박 대표는 리가켐바이오가 2011년 항체약물접합체 관련 첫 특허를 낸 뒤 2020년까지 컨쥬올과 프로피비디 기술을 기반으로 항체약물접합체 회사로 변신한 과정을 ‘LCB 1.0’으로 규정했다.
2021년부터 추진한 비전 2030은 플랫폼 기업에서 임상 1상까지 가는 파이프라인 기업으로 전환하는 전략이었다. 이후 글로벌 항체약물접합체 시장이 커지고 오리온과의 인수합병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면서 비전 2030을 가속화한 시기를 LCB 1.5로 설명했다.
하지만 중국 항체약물접합체 기업들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기존 컨쥬올과 프로피비디 기술만으로는 장기 경쟁력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커졌다. LCB 2.0은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질적 전환 전략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이를 위해 한진환 최고기술책임자와 신약연구소장 등 외부 연구개발 인력을 영입했다. 최고기술책임자 산하에는 항체약물접합체 연구소, 신약연구소, 중개연구소를 뒀다.
항체약물접합체 연구소는 차세대 플랫폼과 임상 진입 가속화를 맡는다. 신약연구소는 항체약물접합체를 넘어선 새로운 신약개발 방식을 찾고, 중개연구소는 환자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활용해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맡는다.
구체적 목표도 내놨다. 리가켐바이오는 해마다 4~5개의 임상시험계획 단계 약물을 확보하고 5년 안에 계열 최고 또는 계열 최초 항체약물접합체 후보물질 약 20개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5년 뒤에는 다수의 임상 1~2상 파이프라인과 임상 3상 진입 물질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 전략을 이끄는 인물은 한진환 리가켐바이오 최고기술책임자다. 그는 올해 1월 리가켐바이오에 합류한 인물로 직전에는 글로벌 제약사 머크앤드컴퍼니에서 11년 동안 항암 신약 발굴과 개발을 담당했다.
| ▲ 한진환 리가켐바이오 최고기술책임자가 발표를 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 |
한 최고기술책임자는 머크앤드컴퍼니에서 키트루다 외부 공동연구위원회 멤버로도 일했다. 그는 이날 발표에서 “1년에 40~50개 정도의 전 세계 전임상과 임상 데이터를 봐왔다”며 “여러 회사와 여러 프로그램, 여러 모달리티의 전임상 데이터를 수년간 보다 보니 소위 말하는 선구안이 생겼다”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가 2035년 로드맵에서 가장 먼저 내세운 키워드는 ‘초격차’다. 항체약물접합체 시장에서 글로벌 경쟁이 빠르게 심화하는 만큼 기존 플랫폼 기술만으로는 장기적 우위를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한 최고기술책임자는 “리가켐바이오가 가지고 있는 항체약물접합체 플랫폼 기술은 전 세계에 내놓을 만큼 훌륭한 기술력”이라며 “다른 회사들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을 가진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 기술을 만들어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는 차세대 항체약물접합체 기술로 약물-항체 비율을 낮춘 플랫폼, 이중항체 항체약물접합체, 이중 페이로드, 신규 페이로드 등을 제시했다. 약물을 암세포에 더 정확히 전달하고 정상세포 독성을 줄여 기존 항체약물접합체의 한계를 넘어서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축은 항체약물접합체와 항암 분야 밖으로의 확장이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가 강력한 신약개발 방식이지만 완벽한 기술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에 항암 영역 안에서도 항체약물접합체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신약개발 방식을 찾고, 장기적으로는 비항암 치료영역까지 넓힌다는 계획을 세웠다.
세 번째 축은 환자 기반 중개연구와 인공지능이다. 리가켐바이오는 신약개발의 출발점과 끝을 환자로 두고 환자 선별, 약물 설계, 임상 데이터 분석, 연구개발 전략 재설계가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는 항체약물접합체 시장 경쟁이 단순히 표적을 먼저 잡는 싸움에서 환자군을 얼마나 정교하게 선별하고 임상 성공 가능성을 높이느냐의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는 판단과 맞닿아 있다.
박 대표는 “국민성장펀드 5천억 원을 포함해 1조 원의 자금을 가지고 그동안 대한민국 바이오가 걸어가지 않았던 길을 리가켐바이오가 개척해 보려 한다”며 “굉장히 어려운 길이지만 리가켐바이오의 행보를 잘 지켜봐 달라”고 강조했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