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내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무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국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가 애초 5월까지 하려던 탄소중립기본법(탄소중립법) 개정을 결국 이행하지 못하게 됐다.
탄소중립법 개정안은 이제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윈회로 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소감축 속도를 놓고 여야 간 대립이 여전히 이어져 조속한 개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시각이 많다.
기후 대응 정책을 포괄하는 탄소중립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위헌과 위법 소지로 인해 후속 입법과 정책이 이뤄지기 사실상 힘들어진다. 특히 포스코 같은 탄소배출이 많은 기업들의 녹색 전환도 지체될 수 있다.
이에 시민 사회에선 거대 양당을 향해 탄소중립법 개정을 서두르라는 압박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 탄소중립법 공백에 기업 혼란도 가중, '포스코 녹색전환'도 지체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법이 국민을 필요 수준에서 보호해야 하는 헌법적 의무를 위배했다고 판결했다. 2031~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포함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이에 국회를 향해 2026년 2월까지 탄소중립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국회 기후특위는 2024년 12월 비상계엄사태, 2025년 5월 대통령 선거 등의 정치적 혼란으로 법 개정 논의를 수행하지 못했다.
기후특위는 임기가 만료되는 2026년 5월29일 전까지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에 합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야 의견 차이로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시민사회 취재를 종합하면 탄소중립법 개정안이 확정되지 못하면서 입법 공백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과 시민에 돌아가게 됐다.
탄소중립법은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과 기후대응을 포괄하는 기본법으로 후속 입법의 기준선 역할을 한다. 그런 법이 헌재가 정한 개정 시한을 이미 넘겼다. 이에 따른 위헌 및 위법 소지 때문에 추가 후속 입법과 이에 따른 정책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추진이 힘들어지는 법안으로는 대표적으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철강, 석유화학 등 난감축 산업의 녹색전환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탄소중립산업법 제정안이 있다.
탄소중립법 개정이 완료되지 않으면 탄소중립산업법 제정 절차도 더 이상 진척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이에 따라 포스코가 개발하고 있는 수소환원제철(기사 하던 용어설명 참조)같은 수조 원 단위의 막대한 금액이 들어가는 녹색전환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들을 향한 정부 지원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
또 탄소중립법은 2031년 이후 감축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데 공론화 결과를 반영해 개정되면 이미 정해진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수정될 공산이 크다.
지난해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2035년 NDC는 2018년 대비 53~61%로 설정됐다. 하지만 국회의 탄소중립법 개정을 위한 공론화 결과 시민들 대다수가 2035년에 65%까지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방안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기업들 입장에서는 탄소중립법 개정이 확정되지 않으면 따를 법적 기준에 불확실성이 커지며 구체적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세우는 일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 "개정을 반대하는 국민의힘, 관망하는 더불어민주당"
2026년 4월 국회 기후특위의 탄소중립법 개정을 위한 공론화 절차에 참여했던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탄소중립법이 헌재 판결을 취지에 따르려면 ‘조기감축경로’를 따르는 감축 계획을 넣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놨다.
당시 참여한 시민 300여 명 가운데 77.6%가 조기감축경로를 선택했다. 조기감축경로란 2050년 탄소중립 달성 전까지 매년 일정한 비율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과 달리 단기간 내에 더 빠르게 줄이는 방식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2035년 기준 2018년 대비 65%, 2040년에는 85%까지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기후특위에 소속된 국민의힘 의원들은 공론화 결과가 편향됐으며 산업계에 지나친 부담을 전가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탄소중립법 개정을 반대했다.
김민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 대표는 “여야 지도부의 무관심, 정부의 소극적 참여도 문제지만 일부 국민의힘 기후특위 위원들의 현실 인식이 가장 큰 문제”라며 “이들은 국민들의 의견을 왜곡하고 폄훼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시민사회의 공론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면서도 기한 내에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국회와 민주당은 압도적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한 채 상반기 법 개정을 무산시켰다”며 “이것이 과연 국민주권 정부라는 정부의 행태인가 참담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 ▲ 권경락 플랜1.5 활동가(가운데)가 국민의힘 가면을 쓰고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들고 있는 다른 활동가를 밧줄로 잡아 끌어당기고 있다. 김민 빅웨이브 대표(오른쪽)는 더불어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휴대폰을 보며 이를 외면하고 있다. |
◆ 시민사회, 거대 양당 규탄하며 탄소중립법 개정 압박
거대 양당이 좀처럼 탄소중립법 개정에 진척을 보지 못하자 시민사회에서 이들을 규탄하며 압박에 나섰다.
국내 기후단체들의 연합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국회의 탄소중립법 개정 무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규탄 회견에 참여한 것은 기후단체들 뿐만이 아니었다. 민주노총, 천도교 한울연대,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노동계, 종교계, 농업계 등 각종 시민단체들도 동참했다.
홍지욱 민주노총 기후특위 위원장은 “더 빨리, 더 많이 탄소 배출을 감축하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국회는 무시하고 말았다”며 “스스로 정한 시한을 어기면서 국회는 다시 한번 주권자인 시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미래세대의 안전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 위원장은 “탄소중립법을 제때 개정하지 못한 책임은 결국 이재명 대통령과 국회에 있다”며 “기후정의를 거스르는 '갈 지(之)'자 형태의 에너지 정책과 재벌 중심의 산업 성장 정책을 중단하고 정의로운 공공 재생에너지 산업 전환을 끌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선희 천도교 한울연대 사무처장은 “우리는 깊은 참회와 무거운 분노의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국회는 또 한 번 탄소중립법 개정을 시한 내에 처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회 행태는 단순한 입법 지연이 아닌 미래세대의 생존권과 시민들의 안전보다 당장의 이해관계를 우선한 무책임”이라며 “생명의 위기 앞에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보여주지 못한 정치의 실패”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시민단체들은 양당 의원들을 규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하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권경락 플랜1.5 활동가가 탄소중립법 개정을 막으려는 국민의힘 역할을 맡아 개정안 팻말을 든 활동가를 끌어당겼다. 동시에 김민 대표가 이를 외면하는 민주당 역할로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방식으로 국회의 행태를 풍자했다.
김민 대표는 “아직도 추가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국회의 설명은 고의적 시간 끌기에 불과하다”며 “탄소중립 달성 과정에서 화석연료 의존이 높은 산업의 일자리가 충격에 취약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전환으로 인해 새로 창출될 일자리를 적어도 80만 개에서 많으면 120만 개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이미 해외 연구소에서는 에너지 효율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다양한 학력의 노동자에 취업의 길이 열린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며 “여야 지도부와 정부는 더 이상 시간 핑계, 선거 핑계 대면서 숙제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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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설명
- 수소환원제철 : 철강 제조 과정에서 기존의 석탄 대신 수소를 활용해 철을 생산하는 저탄소·탈탄소 기술을 말한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철강산업의 대표적 탄소감축을 위한 녹색전환 기술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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