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치권은 한때 쿠팡의 새벽배송을 두고 '살인'이나 '야만적 시스템' 같은 거친 단어를 앞세워 비판했다. 일부 의원들은 노동자를 소모품처럼 갈아 넣는 약탈적 구조라며 쿠팡을 향해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사각지대로 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정치권이 이제는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길을 열어주겠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도덕적 잣대로 금기시하던 행위를 이제는 산업 경쟁력이라는 잣대로 권장하겠다는 모양새다. 규제의 '방향'이 바뀐 것이 아니라 '표적'이 바뀐 듯한 장면이다.
| ▲ 정치권이 대형마트의 새벽배송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 대목에서 질문이 생긴다. 새벽배송이 본질적으로 위험한 행위라면 누가 하든 위험해야 한다. 반대로 새벽배송이 소비자의 선택이고 시장의 진화라면 누가 하든 허용돼야 한다.
하지만 정치권의 메시지는 필요에 따라 널뛰고 있다.
때릴 때는 '도덕적 분노'를 빌려 살인적 노동이라 몰아붙였는데 풀어줄 때는 '산업 경쟁력'을 앞세워 규제 완화를 외친다. 기준이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순간 정책은 원칙을 잃고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한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지점은 과거 자신들이 쏟아낸 발언과의 충돌을 대하는 태도다.
어제의 비판이 오늘의 발목을 잡는 상황임에도 정치권은 과거의 과격한 프레임을 거둬들이거나 성찰하는 과정 없이 태연하게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본인들이 만든 논리적 모순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마치 처음부터 시장 논리만을 중시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다.
쿠팡의 노동자들은 새벽배송에 취약한 노동자인 반면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누구나 거뜬하게 새벽배송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새벽배송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라면 대형마트 노동자들에게도 더욱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정치권이 새벽배송을 놓고 "특정 회사만 표적으로 삼다 보니 말이 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대형마트 규제 완화는 또 다른 모순을 낳을 뿐이다.
쿠팡을 향해 날렸던 과격한 프레임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대형마트에도 같은 잣대를 대야 하고, 대형마트에 예외를 줄 거라면 쿠팡을 향했던 과거의 단정부터 솔직하게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채 추진되는 정책은 시장에 어떤 일관된 신호도 주지 못한다.
정치권이 일관성 없이 생각나는 대로 정책을 내뱉는다면 유통 생태계의 예측 가능성도 흔들린다. 규제가 원칙이 아니라 정치의 풍향계가 되면 기업은 투자와 혁신의 기준을 잃는다.
무엇보다도 쿠팡의 태도를 고친답시고 대형마트에게 새벽배송의 길을 열어줬다가 노동자들이 또 쓰러지고 죽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모르겠다. 정치권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손을 들어본다.
쿠팡의 대항마를 만든답시도 또 다른 쿠팡을 만드는 것은 아닐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씁슬하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영역일수록 언어는 더 신중해야 한다. '살인' 같은 단어가 남발되면 합리적 조정의 공간은 사라진다. 정치권이 스스로 던진 프레임에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표적 규제의 습관은 결국 정책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새벽배송을 둘러싼 규제의 목표를 정하면 된다. 노동자 보호인지, 소비 편익인지, 공정 경쟁인지 등 하나의 목표를 정해야 한다.
목표가 공정 경쟁이라면 새벽배송을 향한 길을 누구에게나 터 주는 식으로 제도를 정비하면 된다. 노동자 보호가 최우선이라면 새벽배송을 점진적으로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든가, 아니면 위험노동에 대한 댓가를 기업에게 청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책은 누군가를 벌주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시장의 방향을 정하는 약속이다. 그 약속이 일관성을 잃는 순간 정치권은 비판의 칼날을 남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돌려받게 된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