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박윤영 KT 차기 대표이사 사장 후보(왼쪽)와 김영섭 KT 대표이사 사장. KT 안팎에선 둘의 갈등으로 인사와 조직개편 등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 KT > |
[비즈니스포스트] KT 이사회가 말 그대로 뭇매를 맞고 있다.
제구실을 못하는 것도 모자라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행위와 처신까지 하고 있다며, 이사진 사퇴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일부 사외이사가 회사 쪽에 특정 회사 투자 요구와 인사 청탁 등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행위를 하고, 한 사외이사는 자격 상실 상태에서 중요 의사 결정에 참여해 이사회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사외이사들의 '셀프 연임' 논란도 크다.
진흙탕 싸움 양상도 보인다. KT 사외이사 '욕심'을 가진 측이 전문가로 행세하며 이사회를 향한 돌팔매질에 앞장서고 있다는 주장 등이 난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승인을 받아 취임하는 절차를 앞두고 있는
박윤영 차기 사장(CEO) 후보의 지위가 흔들리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KT 이사회가 박 후보를 선임하는 과정에 자격을 상실한 사외이사가 참여했으니 무효라는 주장이다.
KT 차기 사장 후보 공모 응모자가 지난해 12월 법원(성남지원)에 박 사장 후보 선임의 이사회 결정에 대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 조만간 법원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인용되면 KT 차기 사장 선임 절차가 정기주총 승인을 앞두고 엎어질 수 있다.
차기 사장 선임 절차가 진행되다 중간에 엎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며, 새 사장을 선임하지 못해 반년 가까이 사장 공석에 따른 경영 공백 사태를 겪었던 2023년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급기야 KT 지분 7.05%를 가진 2대 주주 국민연금공단이 나섰다.
국민연금은 지난 2일 KT 지분 보유 목적을 종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KT를 상대로 한 국민연금의 주주 권리(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식 보유 목적을 일반투자로 전환하면, 정관 변경 제안, 사외이사 선임·해임을 제안, 기타 주주 제안 등을 하는 게 가능해진다.
앞서 국민연금 측은 KT 이사회를 찾아, 특정 사외이사의 겸직 문제와 함께 대표이사의 인사 권한을 제한하도록 개정된 이사회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KT 임원 출신의 한영도 지속경영연구원장(전 상명대 교수)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단순 투자에서 일반 투자로 전환한 것은 국민연금이 이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신호”라며 “이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섰다고 봐야 한다”고 짚었다.
KT 노조(제1노조)도 나섰다.
노조는 지난 4일 소식지를 통해 "KT 이사회 운영방식을 전면 개선하고, 현 이사진은 전원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사외이사의 부적절한 행위 논란과 새 사외이사 선임 절차 등을 논의하기 위해 9일 열리는 이사회 회의를 앞두고 목소리를 낸 꼴이다.
노조는 "이사회가 여전히 KT 정상화는 안중에 없고, 차기 사장 선임 과정에서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가교 역할조차 제대로 못하는 등 능력과 자질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이사회도 평가받는 제도를 도입하고, 노조를 포함한 특별위원회 추천을 통한 사외이사 선임 길을 터 셀프 연임이 차단될 수 있게 하고, 임원 인사 관련 대표이사 권한을 제한하는 이사회 규정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이어 "무능력과 정통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사진은 조속히 전원 사퇴해야 한다"며 "만약 이사진이 자진 사퇴하지 못한다면, KT 대주주 국민연금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KT 노조가 이사회 비판을 넘어 이사진 사퇴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동안 KT에서 새노조(제2 노조)는 종종 이런 목소리를 냈으나, 제1노조는 거의 나서지 않았다.
지난해 9월
김영섭 사장의 연임 도전 포기 선언 이후 이어진 사실상의 경영 공백 상태가 차기 사장 후보 선임 뒤에도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김 사장의 '버티기'로 새 사장 후보가 정기인사와 조직개편 등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노조가 나선 것으로 보인다.
실제 KT는 이동통신 가입자 대거 이탈 등 심각한 해킹 후유증을 겪고 있지만, 경영 공백으로 이에 대한 대응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임직원 모두 인사가 이뤄지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내 일'이 아닐 수 있다고 보고 손을 놓고 있다.
이사회가 뭇매를 맞는 요인이다. KT 한 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임직원들이 떠날 짐 싸놓고 대기하는 경영 공백 상태가 2개 분기 이상 이어지고 있다. 이사회가 미리 이런 상황을 예상해 대비했어야 했다"며 "앞으로 사장이 바뀔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주요 주주에 더해 노조까지 나선 것에 대한 KT 안팎 반응은 긍정적이다. KT가 비로소 민영화 취지에 맞는 기업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한 전직 임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KT가 이제서야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는 길을 가려고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며 기대를 나타냈다.
| ▲ KT 안팎에선 이사회가 뭇매를 맞고 주요 주주와 노조가 목소리를 내는 상황을 두고, KT가 비로소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고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합뉴스> |
정부는 2002년 한국전기통신공사를 '국민기업' 형태로 민영화했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처럼 총수의 주머니부터 챙기는 재벌 통신사가 아닌, 국민의 통신 복지와 국가 경제 기여를 먼저 생각하는 '대한민국 통신사' 구실을 해주길 기대했다. 물론 정부 정책 '뒷바라지'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속내도 있었다.
박윤영 KT 사장 후보가 "KT는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졌다. 지배구조가 어떻게 바뀌건 이런 탄생 배경과 본분을 잊거나 저버리면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박 후보 발언 배경에는 'KT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와 태생이 다른 통신사'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속내도 들어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쉽지 않은 길이다.
KT가 국민기업 형태를 유지하며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사회가 제구실을 해야 한다. 솥에 다리가 3개 이상 있어야 안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처럼, KT가 오너 없는 기업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영진, 이사회, 노조 및 주주라는 3개 축(다리)이 각각 굳건히 버티며 제구실을 해줘야 한다.
경영진이 무능력하거나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이사회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노조와 주주는 각각 일터와 투자금 보호를 위해 경영진 행태는 물론 이사회가 경영진을 제대로 구성하고 감시·견제하는지를 살필 수 있어야 하다. 그래야 KT가 국가 통신사 역할을 하는 국민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지속 가능해질 수 있다.
KT 민영화 작업을 주도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당국자는 당시 출입기자들에게 "앞으로 KT에선 이사회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T 민영화 뒤 24년이 되도록 이사회와 노조는 이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대표이사가 바뀔 때마다 '낙하산' 논란이 일었고, 낙하산 CEO들은 앞다퉈 '탈통신'을 외쳤다. 앞선 통신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통신사 본분을 잊고, 엉뚱하게 부동산 개발에 나서거나 이동통신 가입자 쟁탈전에 휩쓸렸다.
또 인력 구조조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한 때 7만 명에 육박하던 KT 본사 고용 인력이 지금은 1만5천 명도 안 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우리나라 통신망 품질 순위가 지금은 20위를 위협받을 정도로 밀렸다. '국가대표 통신사'를 자처하던 KT 지위도 '여러 통신사 가운데 하나'로 전락했다.
우리나라는 새 IT서비스 테스트베드(시험장) 지위도 잃었다.
1차적 책임은 KT 경영진에 있지만, 이사회 책임도 크다. 뭇매를 맞고 퇴진 요구를 당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무엇보다 외풍을 막아내지 못했다. 유능한 인사를 KT 대표이사로 선임하고, 외풍에 시달리지 않게 막아주는 것도 이사회가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KT 이사회는 오히려 부적절한 '낙하산 대표이사' 앞에 '카펫'을 깔아주기까지 했다.
이명박 정부는 검찰까지 동원해 남중수 KT 사장을 압박해 쫓아낸 뒤, 김영삼 정부 때 청와대 경제수석과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이석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새 CEO로 선임했다.
당시 KT 정관대로라면, 경쟁업체 임원(SK텔레콤 계열사 사외이사 역임)을 맡고 있던 이 고문은 KT CEO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KT는 임시주총을 열어 정관을 바꾼 뒤 소급 적용하는 절차를 밟아 이 고문을 새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또 새 대표이사 직급을 회장으로 높이고, 그에 맞춰 대표이사 급여도 대폭 인상했다.
이 회장은 회사를 통해 공직자 시절 측근들은 물론 옛 김영삼 정부 때 인사들까지 대거 챙겼다. 당시 KT 안팎에선 이 회장이 챙긴 인사(올레KT)가 300명을 넘는다는 말도 돌았다. '이명박 정권이 KT를 김영삼 정부 사람들에게 던져줬다'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이 회장을 보좌했던 KT 고위 임원은 퇴직 뒤 기자를 만나 "회장 유지비가 너무 많이 든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낙하산 CEO 폐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회장 '빽'으로 들어온 인사들이 '실세'를 자처하며 마구잡이로 일을 벌이고 이권을 챙겼다. 박근혜 정부 들어 황창규 회장이 취임하며 전임자 때 영입된 인사들을 일제히 정리하고, 전임자 때 추진됐던 사업들을 재평가해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필요없는 것들을 줄줄이 중단시키며 기존 투자를 손실 처리했다. 그 여파로 KT는 사상 최초로 연간 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낙하산 CEO 논란은 황 회장을 거쳐 구현모 사장과
김영섭 사장 때까지도 이어졌다.
이사회가 제구실을 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이사회가 제구실을 하고 있는지를 노조가 잘 감시했어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낙하산 CEO는 물론 정치권 쪽 외풍과 부당한 외압을 막는데 앞장서야 할 이사회는 '정치권 바람의 기운'을 느끼는 순간 그 방향으로 먼저 눕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등 경영진의 명백한 불법 행위에도 눈을 감았다.
노조가 제구실을 못한 책임도 크다. 2024년에는
김영섭 사장의 특별구조조정에 합의했다가 조합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법원은 조합원 손을 들어줬다.
KT 민영화 당시 한국전력공사의 통신사업을 총괄하던 임원(전무)은 기자와 만나 "KT가 민영화돼도, 진정한 민간기업으로 거듭나려면 3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사 시절보다 더 정치권과 정부 눈치를 보며, 바람이 불기도 전에 미리 바람 방향을 예상해 먼저 눕는 행태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시 '웬 악담'이냐고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의 예측은 정확히 맞았다.
KT는 올해로 민영화 만 24년을 맞지만, 아직도 '바람의 방향으로 먼저 눕는' 행태를 버리지 못했다.
앞으로는 어떨까.
일단
박윤영 사장 후보를 둘러싼 낙하산 논란은 없다. 이재명 정권이 KT를 대선 승리 전리품으로 꼽아 대선 때 지지해준 정치세력에 답례품으로 던져줬거나, 차기 사장으로 누구를 선임하라는 메시지를 주지는 않은 것 같다.
KT 안팎에선 아주 바람직한 선례가 만들어졌다고 본다.
낙하산 논란이 사라지며 이사회가 평가받는 자리가 마련된 것도 긍정적이다. 노조와 주주(국민연금)가 목소리를 낸 것도 희망적이다.
혼란스러워보일 수도 있지만, 비로소 진정한 민간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기지개를 펴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KT는 현재 차기 사장 후보가 선임돼 있고, 노조와 주주가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은 것은 이사회가 경영진 감시 기구로 제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망과 학식이 있고, 사회적 소명감과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어른' 구실을 할 수 있는 사외이사들이 필요하다.
이번에는 이정우 경북대 교수 같은, 품격을 갖춘 인사들로 KT 이사회가 꾸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참고로 이 교수는 꽤 오래 전부터 KT 사외이사 영입 대상 '0순위'로 꼽혀왔다.
밖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교수가 KT 사외이사 영입 제안에 딱 한번 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함께 영입되는 대상에 '까마귀'들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마음을 바꿨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