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석 기자 stoneh@businesspost.co.kr2026-02-06 16: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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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물가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된 식료품 업계의 담합 의혹에 대해 ‘강력한 응징’을 예고했다. 특히 밀가루와 설탕 등 민생 핵심 품목의 담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공정거래위원회를 향해 ‘가격 재결정 명령’ 활용을 재차 지시했다.
2006년 이후 사문화 됐던 공정위의 가격 재결정 명령 제도가 20년 만에 독과점으로 인한 고물가를 잡는 ‘공정위의 칼’로 부활할지 관심이 쏠린다.
▲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정부 안팎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공정위가 물가 상승과 관련해 독과점 기업의 담합 등에 따른 불공정 가격을 시정하기 위한 전방위 조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독과점 상황을 악용해서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현장의 문제는 국가공권력을 총동원해서 반드시 시정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자신의 지시에 따라 검찰이 밀가루·설탕 업체들의 담합을 적발한 사실을 언급하며 “담합해서 가격을 올렸으면 가격을 내려야지 잠깐 사과하고 할인 행사하고 또 모른 척 넘어간다”며 “이번엔 그런 일 없게 끝까지 철저히 관리하길 바란다. 가격 조정 명령 제도도 잘 활용하라”고 지시했다.
공정거래법 42조에 근거한 가격조정 명령 제도의 정식 명칭은 ‘가격 재결정 명령’으로 기업이 담합 등 부당한 공동행위로 정한 가격을 강제로 철회하고 시세에 맞는 가격으로 다시 정하도록 하는 공정위의 시정조치다.
이 대통령이 가격 재결정 명령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2번째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말 국무회의에서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밀가루와 설탕 등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료품 가격이 높은 것은 독과점 상태에서 가격을 올리는 데 따른 것이 아니냐. 가격 조정 명령도 가능하냐”고 물었고, 주 위원장은 “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답변했다.
다만 가격 재결정 명령은 2006년 이후로 단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이처럼 가격 재결정 명령이 20년째 사문화된 것은 정부가 민간 기업의 가격 결정권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시장 경제 원칙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해부터 가격 재결정 명령 부과를 적극 검토해왔다. 이번 이 대통령의 발언은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을 담합 등을 시정하기 위해 적극 활용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 위원장은 3일 국무회의에서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을 아주 소극적으로 활용했었는데, 지금부터는 보다 적극적으로 가격 재결정 명령을 시정명령으로써 활용할 수 있도록 시정조치 운영 지침도 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공정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현재 시정조치 운영지침에도 가격 재결정 명령을 할 수 있게 돼 있지만 그 동안 적극적으로 활용이 안돼서 앞으로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운영지침 개정을 통해 가격 재결정 명령을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정상 수준으로 되돌리는 구체적 시정명령의 한 종류로 명시하거나, 5가지 발동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 등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위는 현재 담합 관련 과징금 상한을 관련매출액의 20%에서 30%로 상향하는 등 과징금 체계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에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는 과점기업의 담합행위를 향해 강화한 과징금과 부활한 가격 재결정 명령을 연계한 ‘이중 압박’을 펼쳐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20년 만의 가격 재결정 명령은 장바구니 물가와 직결된 산업을 향할 공산 커 보인다. 공정위는 중점 추진과제로 식품을 비롯해 교육, 건설, 에너지 등 민생밀접 4대 분야의 담합행위를 집중 점검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격 재조정 결정 부활이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자칫 법적 분쟁(시정명령 취소 소송 등)으로 번질 경우 행정력 낭비만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국내 과점 시장에서 밀가루·설탕 등 생필품 담합이 고질적으로 반복돼 온 만큼 부당하게 책정된 가격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 검찰이 생필품 담합 사건으로 재판에 넘긴 기업 가운데 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제분사 6곳은 2020년 1월~2025년 10월 사이 밀가루 가격을 최고 42.4%까지 인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2006년에도 2000년 1월부터 대한제분 등 8개 제분업체가 밀가루 공급 물량과 가격을 담합한 사실이 적발됐고, 당시 공정위는 마지막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렸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4일 상습적 밀가루·설탕 담합에 관한 논평을 내고 “이번 사태는 일시적 일탈이나 일부 기업의 예외적 문제가 아니라 반복돼 온 구조적·상습적 시장 범죄이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돼 왔다”며 “담합을 통해 인위적으로 올린 가격은 그 책임을 반드시 가격을 다시 낮추는 방식으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