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물론 미국 정부까지 이례적 개입에 나섰지만 시장 수급은 여전히 달러 자산에 쏠리며 시장이 국내 경제의 기본체력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16일 오후 3시30분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3.9원 오른 1473.6원에 주간거래를 마감했다. 사진은 이날 장 마감 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뉴스>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내성이 생겼다는 평가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반도체 등 일부 산업만 잘 나가는 ‘K자형’ 성장에 관한 우려가 원화 약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16일 금융업계에서는 전날 원/달러 환율이 큰 변동성을 보인 것과 관련해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과 원화 가치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약하다는 신호라는 해석이 나온다.
원/달러 환율은 현지시각 14일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현재 원화 약세가 한국의 견고한 경제체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나오자 즉시 야간 역외거래에서 1462원까지 내렸다. 주간거래 마감 환율(1477.5원)과 비교해 단숨에 10원 이상 내리며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그러나 15일 아침이 되자 다시 달러 강세가 이어지면서 환율 하락폭은 줄었고 결국 1470원을 눈앞에 둔 1469.7원으로 주간거래를 마쳤다.
이날도 원/달러 환율은 3.9원 오른 1473.6원에 주간거래를 마감했다.
전례 없는 미국 정부의 구두개입 효과도 하루를 가지 못한 셈이다.
시장 투자자들이 오히려 원/달러 환율 하락을 기회로 인식하고 달러 매입에 나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전날도 역외 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일시적으로 급락하자 재테크 커뮤니티 등에서는 “지금의 달러 저가 매수 기회” “주식 계좌에 있는 예수금 지금 다 달러로 바꾼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외환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원/달러 환율 1500원 시대가 곧 올 것이란 전망이 계속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하고 증권사 등 기업 외환담당자들을 소환하는 등 고강도 개입을 펼치면서 환율이 떨어졌을 때 개인 투자자들은 ‘달러 사재기’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2025년 12월24일부터 이달 13일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개인 고객의 달러화 환전금액(현찰 기준)은 4억8081만 달러로 집계됐다. 이 기간 하루 평균 환전금액은 2290만 달러로 지난해 1~11월 평균치(1043만 달러)의 2배를 웃돌았다.
금융당국이 한국 경제의 단단한 기초체력을 강조하며 환율 잡기에 힘을 싣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앞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지속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는 것이다.
▲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8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시장상화점검회의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환율과 경제 기초체력 괴리가 계속 벌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외환당국의 정책 대응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선이 나온다.
한국 경제성장률 둔화와 반도체에 치우친 수출구조, 내수회복 지연 등이 원화 가치의 상대적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만큼 단기적 수급 규제를 넘어 중장기 정책 대응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형중 우리은행 연구원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세의 가장 직접적 원인은 해외 투자 확대 등 수급”이라면서도 “코스피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글로벌 주식시장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해외로 자금이 계속 나가는 것은 시장이 국내 자산에 관한 장기 전망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해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지만 수출 증가 대부분을 미국 인공지능(AI)산업 성장에 따른 반도체기업 호황에 의존하고 있다. 반도체를 빼면 석유, 화학, 철강, 건설 등 산업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날 공개한 ‘주요 품목별 수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를 제외한 주요 비IT품목 수출은 수년 동안 정체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시장에서 수출 점유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