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10-27 15: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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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한미 관세 협상의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대에 고착되는 등 ‘고환율’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고환율은 수입 물가 상승과 가계 실질구매력 감소라는 이중고로 이어질 수 있어 물가관리를 최우선 정책과제로 삼고 있는 정부의 고민거리로 떠오를 전망이다.
▲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정부가 물가관리에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23일 원/달러 환율이 표시된 모습. <연합뉴스>
27일 외환시장 안팎에서는 한미 관세협상의 여파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원화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이날 오전 9시15분 현재 원/달러는 전일대비 2.1원 내린 1435.0원에 거래됐다. 지난 9월 말 1400원 대로 오른 환율이 1410원을 넘어 금새 1430원대로 진입하더니 좀처럼 진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1300원대로 내려갔던 원/달러 환율은 한미 관세협상과 미중 무역갈등이 증폭되며 10월 들어 다시금 1400원대를 횡보하고 있다. 지난 24일 장중에는 올해 4월29일 이후 6개월 만에 최고치인 1441.5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환율 상승 원인으로는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지 못하면서 커진 불확실성에 중국과 일본 등의 경제정책까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가 대규모 경기 부양책 추진 의사를 밝히면서 엔화 통화량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엔화가 약세로 돌아선다면 우리나라의 고환율이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등 금융당국이 13일과 24일 외환시장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단기적 이슈보다는 구조적 원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탓에 환율이 잡힐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홍춘옥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24일 SBS라디오 목돈연구소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입장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국가부채를 녹이면 된다는 것이라 엔저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필두로 한 경제팀은 유류세 인하 기간을 연장하는 등 미세 물가관리 대응에 집중하고 있지만 환율이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정부는 농산물 분야 물가 안정을 위해 선제적으로 비축 물량을 방출하고 할인지원·작황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한 연말까지 가격을 동결하는 척하며 음식 중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부위로 원재료를 변경하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문제는 고환율이 물가상승 압박으로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9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에 따르면 9월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0.2% 오르며 3개월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다.
더구나 정부는 내수 회복을 경제정책의 중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는데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은 가계의 실질 구매력을 약화시키고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약화된다면 소비심리가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 상승 → 국내 물가 전반 상승(인플레이션) → 가계의 실질 소득 및 실질구매력 하락으로 이어지는 연쇄 작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 속에 기획재정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10월 경제동향’에 따르면 9월 소비자심리지수는 9월 110.1로 8월보다 1.3포인트 하락했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24일 SBS biz에서 “연말까지는 원화 약세가 갈 것으로 본다”며 “APEC 정상회담과 다음주 미국 FOMC(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 결과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도 환율 안정을 위해서는 우선 한미 관세 협상이라는 구조적인 리스크를 해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은 23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간담회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에서 달러 강세 영향은 4분의 1이고 나머지는 미·중 갈등에 따른 위안화 변동, 일본 신임 총리의 확장재정 우려, 관세 협상과 3500억 달러 조달 문제 등에 따른 것”이라며 “관세 협상이 좋은 방향으로 이뤄진다면 원/달러 환율도 하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부총리도 지난 16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 당시 취재진과 만나 “환율이 복합적 요인으로 변하고 있지만 관세 협상이 빨리 타결된다면 환율에도 분명히 좋은 신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