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7-2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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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가 자체 IP를 통한 2차 수익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포스터.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도 판도 변화의 신호탄이 울렸다. 티빙과 웨이브가 ‘더블 요금제’를 출시하면서 통합 OTT 출범이 사실상 공식화되면서다.
“결국 살아남는 건 자체 지적재산권(IP)을 더 많이 가진 플랫폼”이라는 업계의 공식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일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 플랫폼은 자체 IP를 키우기 유리한 시스템을 이미 마련해둔 상태다. 단순히 ‘좋은 기획’을 갖췄다고 해서 IP 수익화가 보장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기획 초기부터 해외 파트너와 협업해 현지 마케팅과 유통 전략까지 동시에 설계한다. 자본, 기획, 확장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오리지널 시리즈 대부분은 외부 투자를 받기보다 자체 펀딩으로 제작되고 판권과 유통, 서브라이선스도 한 계좌에서 관리된다.
이 같은 시스템 아래에서는 하나의 콘텐츠가 드라마에서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굿즈로 무한 확장되며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 단일 IP가 브랜드로 성장하고, 브랜드는 다시 수익을 낳는 선순환 구조가 마련되는 셈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최근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들 수 있다. K팝과 한국형 판타지를 결합한 이 콘텐츠는 미국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과 한국의 스튜디오미르가 손잡고 만든 글로벌 합작 프로젝트다.
해당 IP는 단순한 시청 순위 경쟁을 넘어선 상태다. OST는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고 굿즈·게임·소설 등으로 2차 확장이 이어지고 있다. ‘IP 하나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넷플릭스식 콘텐츠 사업 모델의 실전 사례로 평가된다.
다만 국내 주요 OTT 플랫폼인 티빙, 웨이브, 쿠팡플레이는 여전히 ‘콘텐츠 유통자’ 역할에 머물고 있다. 자체 오리지널 제작 비중이 점차 늘고 있지만 여전히 방송국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 등 외부 제작물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이러한 시스템은 제작비 회수에 대한 위험이 낮아 수익적 측면에서는 안정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콘텐츠를 IP 자산으로 키워내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IP 소유권에 있다. 국내 OTT가 외부 제작사와 협업해 콘텐츠를 제작하더라도 최종 판권과 2차 상품화 권리는 대부분 제작사나 방송사에 귀속된다.
플랫폼이 확보하는 건 일정 기간의 유통권이나 선공개 권리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콘텐츠가 아무리 흥행하더라도 OST 수익, 굿즈, 리메이크, 해외 판매 등 부가수익은 외부로 빠져나간다는 의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OTT가 지급하는 판권료나 선지급금만으로는 제작비 전체를 충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단독 투자나 기획 역량이 부족하고 실질적인 위험 부담을 지지 않기 때문에 판권 협상에서도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우 수익의 대부분이 자사에 귀속된다. 사진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더글로리’.
업계에서는 이 같은 구조를 바꾸지 못할 경우 국내 OTT 플랫폼의 장기적 생존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콘텐츠를 장기 수익 자산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정부 역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국내 OTT가 제작에 투자하고도 정작 IP는 외부에 귀속되는 구조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정부와 OTT의 콘텐츠 투자 협력 △OTT와 제작사의 IP 공동 보유 △OTT 내 편성·방영시 경쟁력 있는 콘텐츠에 최대 30억 원 규모의 제작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IP를 공동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미다.
실제 넷플릭스는 오리지널 콘텐츠의 최종 판권과 모든 부가 권리를 직접 보유한다. 제작비를 전액 투자하고, 그 대가로 해외 배급, 상품화, 리메이크, OST 활용 등 2차 권리까지 모두 자사에 귀속시키는 구조다.
대표 사례로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공개된 ‘오징어 게임’과 ‘더 글로리’가 있다. 두 작품 모두 글로벌 흥행에 성공했지만 IP는 넷플릭스 소유다. 국내 제작사가 만든 콘텐츠임에도 실질적 가치는 넷플릭스에 고스란히 돌아간 셈이다.
일각에서는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이 국내 OTT 시장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두 플랫폼이 손잡게 되면 투자 여력이 자연스럽게 커진다. 기획·유통을 넘어 글로벌 배급과 2차 수익까지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내재화’ 시스템의 필요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K팝, 웹툰, 게임 등 이미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한 1차 IP와의 연계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단순 협업을 넘어, 이들 IP를 중심으로 새로운 콘텐츠 생태계를 구축하는 전략이 본격화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오리지널 IP는 하나의 결과물일 뿐 가장 중요한 건 이를 만들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자생적 시스템”이라며 “합병 이후의 티빙·웨이브가 단순한 플랫폼 규모 확대를 넘어 콘텐츠 산업 전반의 역할 구조를 재정의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