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현장. <용인시> |
[비즈니스포스트] 한국 반도체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개편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17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산하 '탄소중립 산업정책연구소(NZIPL)'은 이런 내용을 담은 '한국의 친환경 칩 전략: 친환경 에너지와 반도체 리더십 연계하기'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미중 무역갈등과 에너지 위기 속에서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지키려면 재생에너지 확대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산업 정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이를 실현하려면 정부 내 통합 전략기구를 설립해 정부 부처간 소통을 촉진하고 민관이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현재 한국 반도체 산업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지속적 무역 갈등으로 인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며 "한국은 미국의 동맹 연대와 중국의 시장 상호의존 사이에 끼어 있어 한쪽 위험만 회피하려 해도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보복이나 외교적 긴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어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반도체 산업은 비용 경쟁력 있는 탄소중립 전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며 "주요 반도체 고객사들이 제조기업에 온실가스 감축을 요구하고 있으며 생산라인 운영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 때문에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제조사들도 자체 공급망을 탄소중립화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연구진은 "태양광, 풍력, 수력발전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산업용 전력을 화석연료 중심 지역보다 2~4배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며 "이같은 차이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인건비나 건설비용이 높은 지역에서도 이를 상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한국 재생에너지 비중이 지나치게 낮아 국내 기업들이 조달할 수 있는 저탄소 전력이 크게 제한된다는 점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달 발표한 '월간 전력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3월 기준 전체 전력 생산량에서 태양광과 풍력이 차지한 비중이 8.1%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치인 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연구진은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시설로 기대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도 재생에너지 전력 계약을 체결한 생산라인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제시한 2030년까지 산업단지내 재생에너지 사용률 50% 목표에도 크게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이런 위기 분석을 바탕으로 한국 반도체 산업과 제조업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6대 정책으로 △전력망 인프라 업그레이드 △에너지 효율 개선 및 분산형 에너지 확대 △기후경제부와 같은 정부 내 통합 전략기구 설치 △재생에너지 확대 및 수소 등의 차세대 기술 투자 △해외 에너지원 의존도 축소를 통한 에너지 안보 확보 △국민적 지지와 기반을 넓히기 위한 정의로운 전환 등을 제안했다.
팀 사하이 NZIPL 공동책임자는 "한국의 새 대통령이 성장동력으로 인공지능(AI)을 우선시하는 만큼 반도체 생산부문에 재생에너지 기반 전력을 공급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라며 "청정 반도체 제조의 비용 경쟁력을 국가의 미래 경쟁력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