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7-16 12: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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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성통상의 자진 상장폐지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 <신성통상 홈페이지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의류 브랜드 ‘탑텐(TOPTEN10)을 운영하는 신성통상이 1975년 유가증권시장 상장 이후 반세기 만에 자진 상장폐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염태순 회장 일가는 두 차례에 걸친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율 94.55%를 확보하며 상장폐지 요건인 95%에 사실상 근접했다. 남은 0.45%만 추가 매수하면 상장폐지가 가능한 만큼, 시장에서는 이미 ‘퇴장 수순’에 들어섰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업계에서는 상장폐지 이후 염태순 회장 일가의 3800억 원대 이익잉여금 회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배당 확대, 자사주 활용, 내부거래 등을 통한 현금 유출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오너 리스크’와 ‘사익 추구’ 논란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1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신성통상의 상장폐지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신성통상은 최대주주 가나안과 2대주주 에이션패션을 중심으로 지난 6월9일부터 7월9일까지 2차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이번 공개매수에서 총 2317만8102주(16.13%) 가운데 1534만8908주(10.68%)의 매수에 성공했다.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염태순 회장의 가족회사다.
이에 가나안과 에이션패션, 염태순 회장 일가 등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율은 기존 83.87%에서 94.55%로 크게 뛰었다. 상장폐지를 위한 핵심 기준인 95%에 근접하면서 사실상 ‘최종 단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2차 공개매수는 1차보다 응모율이 눈에 띄게 높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공개매수가가 지난해 상장폐지 시도 당시보다 78% 가량 인상된 점이 결정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업계에서는 남은 지분이 0.45%에 불과한 만큼, 염 회장 측이 장내 매수 등을 통해 상장폐지 요건을 충족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공개매수가 기준 추가 매수에 필요한 자금은 약 27억 원이다. 오너일가의 자금 여력 측면에서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신성통상이 자진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핵심 요인으로는 단연 38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이익잉여금이 꼽힌다. 상장폐지 이후 염태순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배당 등의 방식으로 이를 현금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분율을 극대화한 만큼 실질적인 자금 회수가 수월해지는 영향이다.
그동안 신성통상의 배당 정책을 살펴보면 오너일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관돼 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짠물 배당’ 논란이 꾸준히 제기돼온 만큼 비상장 전환 이후 오너일가가 이익잉여금을 회수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실제로 신성통상은 2012년부터 10년 넘게 무배당 기조를 유지하다가 2023년에 들어서야 보통주 1주당 50원, 총 72억 원 규모의 배당을 실시했다. 해당 연도 순이익 대비 8.6% 수준으로 11년 만의 배당치고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염태순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사 가나안은 사정이 다르다. 2021년부터 2024년까지 배당금은 20억 원, 39억 원, 300억 원, 40억 원이었으며, 배당성향은 각각 49.44%, 24.24%, 12.54%, 5.46%에 이른다.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본격 시행된 2024년을 제외하면 매년 두 자릿수 배당을 이어온 것이다.
주당 배당금도 2021년 6890원으로 시작해 3만4500원, 1만7250원, 8630원으로 신성통상과는 꽤 많은 차이가 난다.
▲ 신성통상은 '노 재팬' 운동의 반사이익으로 SPA 브랜드 탑텐 매출이 대폭 성장해왔다. 사진은 탑텐 명일점. <신성통상>
업계에서는 신성통상의 이익잉여금이 단순한 유보 자금을 넘어 오너일가 영향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실탄’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승계 재원은 물론 지배구조 재편, 계열사 지원, 내부 거래 구조 정비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현재 신성통상 지분 94% 이상이 이미 오너일가에 귀속돼 있어 배당 외에도 자금 활용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 특히 염태순 회장은 지주사 격인 ‘가나안–에이션패션’ 체계를 완성한 상태다. 이익잉여금이 자회사 투자나 오너 2세 염상원 이사의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승계 재원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신성통상이 비상장사로 전환하더라도, 기업가치와 시장 신뢰도 측면에서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고 지적된다.
이번 상장폐지 추진의 배경에는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이 자리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이사에 대한 책임 소송은 물론, 소액주주의 권리 강화, 자사주 소각 등 외부 견제 장치가 한층 강화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 투명성을 요구받는 수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신성통상이 상장폐지를 통해 외부 감시망을 피해가려한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비상장사로 전환되면 의무공시나 주주총회 절차에서 벗어나면서 경영 자율성이 커진다. 경영권 방어는 쉬워지고 자금 활용의 폭은 넓어진다. 상장폐지를 통해 얻게 될 실익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상장폐지의 실익이 뚜렷하다고 해서 논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신성통상은 이미 2023년에도 자진 상장폐지를 시도했다가 소액주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전례가 있다. 당시 일부 소액주주 연대가 법적 대응까지 예고하면서 기업 신뢰도에 상처를 입었다. 이번 시도 역시 유사한 논란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특히 신성통상은 ‘노 재팬’ 정서가 확산되던 시기에 애국 마케팅을 내세워 반사이익을 누린 대표적 수혜 기업이다. 기업 이미지가 훼손될 경우 소비자 반응이 급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유니클로 사례처럼 불매운동으로 번질 여지도 있다. 실적 부진이 겹치면서 기업가치도 함께 흔들릴 수 있다.
비상장사 전환 이후의 전략 방향성에도 우려가 쏠린다. 배당이 우선순위로 떠오르고 신사업 투자나 브랜드 혁신은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단기적인 배당 확대가 장기 성장 여력을 갉아먹는다면 브랜드 파워는 물론 본업 경쟁력 유지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성통상은 상장폐지 이후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며 “오너일가 위주의 배당만 불어나고 브랜드와 사업은 제자리에 머무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