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 기자 sollee@businesspost.co.kr2025-09-19 16: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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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시행 약 6개월을 앞둔 노란봉투법이 벌써부터 산업현장에 대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철강, 반도체 등 주요 제조업 하청업체들은 원청 대기업을 향한 처우 개선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 기업의 손해배상 등 책임이 커지면 고용이나 외국계 기업의 투자 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러나 노동자 권익 강화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접근에 이어 파업 등 노사갈등 리스크가 오히려 줄어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는 노란봉투법이 국내 주요 기업과 경영단체, 정치권에 미칠 영향을 짚어본다.
그는 국회의원 전원에 전달한 서한에서 “국내 산업이 자동차와 조선, 건설 등 업종별 다단계 협업 체계로 구성된 상황에서 법안이 통과되면 원청기업들을 상대로 쟁의행위가 상시 발생해 원·하청 사이 산업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라며 “노조 파업에 사용자의 방어권(대체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물론 해외 생산시설 투자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을 영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정안 통과 이후 손 회장의 염려가 일정 부분 현실화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회사에 “앞으로 신사업에 뛰어들거나 해외에 조립공장을 증설할 때도 노조에 미리 알려야 한다”는 조항을 단체협약에 넣자고 요구했다.
송언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조선 산업의 경우 수천 개에 이르는 하청회사의 노조들과 일일이 교섭해야 한다”며 “365일 하청기업 노조들과 협상하느라 조선 산업에서 제대로 된 기업 경영과 투자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정하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용주 개념이나 실질적 지배, 실질적 경영과 관련해 불확실성의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대법원 판례나 노동위원회 결정,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해 시장이 과도하게 우려하지 않도록 지침과 규정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오른쪽) 등 경제 6단체 대표자들이 7월2일 국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용노동부는 노란봉투법 관련 경영계와 노동계를 포함한 TF(태스크포스)를 꾸렸다. 경총은 경영계 목소리를 총괄해 철강과 조선, 자동차, 물류 등 업종별 협회와 주요 기업, 주한외국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의견을 수렴하는 역할을 맡는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17일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노란봉투법의 보완 입법 필요성과 관련해 “보완 입법 형태는 아니더라도 현장에서 오해와 과장, 불확실성으로 인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TF나 지침을 만드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시행 시기까지 6개월 정도 남았는데 기업이나 야당이 과도하게 우려하는 부분과 관련해 TF 등으로 경청하고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면서 경영계의 목소리도 충분히 듣겠다는 태도를 공식화하고 있는 만큼 손경식 회장은 앞으로 재계의 입장을 충분히 현실화해 노란봉투법 시행령을 보완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손 회장은 9월 초 기업 인사·노무 담당 임원(CHO) 간담회에서 김영훈 장관과 만나 “우리 기업들은 내년도 단체교섭 준비조차 막막한 상황”이라며 “실질적 지배력의 유무, 다수 하청노조와의 교섭 여부, 교섭 안건 등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하며 재계가 매우 위축돼있다는 점을 정부에 강조했다.
이에 김 장관은 “노란봉투법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겠다”고 화답했다.
재계 원로로서 2018년부터 경총 회장을 지내고 있는 손경식 회장은 정부와 국회에 재계 입장을 전달할 수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손 회장은 1969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를 도와 삼성전자를 설립하고 1995년부터 CJ그룹 회장으로 일하는 등 기업 활동을 이어온 만큼 기업 활동 위축이 불가피한 현재 상황을 염려할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은 10일 열린 ‘제3기 ESG경영위원회 회의’에서도 “미국은 관세를 앞세워 자국 이익을 도모하고 유럽은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는 상법 개정에 원하청 산업생태계를 위협하는 노동조합법 2·3조 개정까지 기업하기 힘든 환경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만 법안 시행이 6개월 남은 만큼 경총 차원에서 대응이 급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 경총 관계자는 노란봉투법 대응 계획을 묻는 질문에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TF 이외에 구체적 대응 방안은 아직 세우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