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제약바이오 산업은 올해 상반기 호재에 둔감하고 악재에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 사례는 이른바 '먹는 위고비' 개발로 코스닥 시가총액 1위 기업에 올랐다가 3거래일 만에 주가가 반토막 난 삼천당제약이다. 전인석 삼천당제약 대표가 2026년 4월6일 서울 서초구 삼천당제약 본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무덥다.
주말이 지나면 좀 나아진다고 하지만 이 가혹한 더위가 정말 물러날 것인지 당최 상상이 안 간다. 여름이 가고 가을 문턱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기 입추(立秋)가 왔으니 그저 조만간 날이 선선해지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할 뿐이다.
견디기 힘든 무더위만큼이나 올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겪은 산업을 꼽자면 제약바이오를 빼놓을 수 없다.
호재도 있었고 악재도 있었다. 하지만 좋은 소식에는 별 반응이 없다가 나쁜 소식이 전해지면 산업 전반이 휘청대는 현상이 올해 내내 반복되고 있다.
예컨대 좋은 소식은 이런 것이다.
녹십자는 5월27일 미국 제약대기업 일라이릴리에 미국 관계사 큐레보의 지분 전량을 약 4599억 원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단순히 미국법인을 매각한 것으로만 해석하면 이 사안의 핵심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기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성과 상당수는 후보물질을 글로벌 대형 제약사에 이전한 뒤 계약금과 일부 마일스톤(단계별 기술료)을 수령하는 구조였다. 글로벌 임상과 상업화, 생산에 따른 과실은 대부분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몫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녹십자는 큐레보 매각을 통해 새로운 투자금 회수 모델을 만들어냈다. 직접 해외에 법인을 설립하고 임상 개발과 투자 유치를 주도하면서 기업가치를 키워 글로벌 대형 제약사에 성공적으로 매각함으로써 ‘연구개발 가치 입증 사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호재도 많았다.
기술수출만 보면 알테오젠(1월), 큐라클과 아라비아오(5월), 한미약품과 오스코텍(6월) 등이 성과를 냈으며 에이프릴바이오와 한올바이오파마는 후보물질과 관련해 임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호재가 시장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녹십자만 하더라도 큐레보 매각 소식을 알린 당일만 주가가 5% 가까이 올랐을 뿐 이후 7거래일 연속으로 주가가 내리 뒷걸음질했다. 당시 빠진 낙폭을 2달이 지난 현재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개별 제약바이오 기업 주가의 변동성만 본다면 분명 호재보다 악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알테오젠만 하더라도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보다 시장이 주목한 지점은 기술이전 계약 규모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애초 대규모 기술이전 계약의 규모가 조 단위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으나 실제 계약 규모는 4천억 원대였다.
파트너사와 함께 상업화한 물질과 관련해 수령할 로열티 비율이 예상보다 적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얼어붙게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 연초 40만 원을 넘봤던 알테오젠 주가가 2월부터 반년 내내 20만 원대에서 횡보한 주된 이유다.
삼천당제약 역시 마찬가지다.
삼천당제약은 올해 이른바 ‘먹는 비만약’ 개발과 관련해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 및 유럽 11개 나라에 먹는 비만약을 수출하게 됐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경구용 인슐린 임상 신청 소식 등이 연달아 전해지면서 올해 초 24만 원대로 시작한 주가는 3월 말 120만 원을 넘보는 수준까지 급등했다.
하지만 이후 계약의 불확실성, 불성실 공시에 따른 신뢰도 하락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거품은 단숨에 꺼졌다. 3월31일부터 단 3거래일 만에 주가가 반토막났다.
| ▲ 코오롱티슈진 역시 골관절염 신약과 관련해 미국 임상 3상 기대감에 기업가치 기대감이 커졌던 기업이다. 하지만 1차 시험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가 3거래일 연속으로 하한가를 기록하며 추락했다. 노문종 코오롱티슈진 공동대표가 2026년 7월21일 서울 강서구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골관절염 신약 TG-C 미국 임상 3상 결과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코오롱티슈진 역시 악재로 타격을 받은 대표적 기업이다.
코오롱티슈진은 올해 골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TG-C의 미국 임상 3상과 관련해 기대를 받았다. 올해 첫 거래일 7만 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5월 장중 한때 15만 원 근처까지 뛰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7월20일 미국 임상 3상 첫 번째 시험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이 반전했다. 경영진은 절반의 성공이라며 결과를 애써 포장했으나 코오롱티슈진 주가는 3거래일 연속으로 하한가를 기록했다.
악재에 시장이 냉정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호재에는 인색하고 악재에 유독 민감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상황이 정상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것 역시 당연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신약을 개발해서 성공할 확률보다 실패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괜히 ‘외롭고 고단한 싸움’이라는 말을 듣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기초체력이 그렇게 허약한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증권가에서 나오는 보고서를 보면 K바이오 기업의 상반기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의 기술이전 및 글로벌 M&A 성공 사례를 종합해볼 때 긴 인고의 시간 끝에 단 열매를 딸 수 있는 시기가 언젠가 올 것이라는 희망 섞인 목소리가 늘 묻어 있다.
현재 제약바이오 기업이 겪고 있는 시련은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진짜 실력을 갖춰나가는 과정 중 거쳐야 할 혹독한 예방접종일지도 모른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거나 실패를 맛봤다고 해서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과 도전의 궤적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제약바이오를 담당하는 후배 기자의 말처럼 ‘꿈을 먹고 자란다’는 제약바이오 산업의 본질은 결국 불확실성을 뚫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집념에 있을 것이다.
입추가 지났다고 당장 가을바람이 불어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더위가 물러가고 훈풍이 오듯 묵묵히 내실을 다지는 기업이라면 언젠가는 시장의 신뢰를 되찾을 것이라 믿는다. 남희헌 유통&4차산업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