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6부작 드라마 ‘맨 끝줄 소년’(김규태 연출)이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사진은 배우 최민식(왼쪽)과 최현욱(오른쪽)이 지난 6월24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제작발표회에서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 <연합뉴> |
[비즈니스포스트]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이 있다.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6부작 드라마 ‘맨 끝줄 소년’(김규태 연출)이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원작은 스페인의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2000년 발표한 동명의 희곡이다. 2015년 한국 예술의 전당에서 김동현 연출로 공연된 바도 있다. 이 작품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 ‘인 더 하우스’(2013)를 통해서다.
스페인 희곡이 프랑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고 한국에서 드라마로도 제작되었으니 다양한 국적의 감독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은 셈이다.
후안 마요르가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수학을 전공하였으면서 철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젊은 시절 몇 년간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데 그때 시험 답안지에 수학 문제를 푸는 대신 자기 사연을 적은 학생을 모티프로 ‘맨 끝줄 소년’을 쓰게 됐다고 한다.
‘맨 끝줄 소년’은 대학교 신입생인 공대생 이강(최현욱)이 작문 수업을 들으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사실 이강은 우연히 같은 학교 신입생 세윤과 그의 엄마를 본 뒤로 세윤과 일부러 가까워지기 위해 같은 동아리에 가입하고 같은 과목도 신청한 것이다.
이강은 괴팍하기로 유명한 국문과 교수 허문호(최민식)가 매주 내주는 에세이 과제에 세윤과의 일화를 써서 낸다. 이강은 컴퓨터 코딩 과제를 도와준다는 구실로 세윤의 집까지 드나들게 된다.
이강이 써내는 짧은 에세이에는 세윤의 부모님에 대한 동경, 특히 아름답고 우아한 세윤 엄마에 대한 묘한 감정이 솔직하고 아슬아슬하게 묘사돼 있다.
한때 훌륭한 소설가를 꿈꿨던 허문호는 소설책 한 권을 출간한 이후 후속작을 내지 못 한 채 학생들의 작문에 대해서는 서슴없이 가혹한 평을 하는 선생이다. 그런 그는 이강의 에세이를 보면서 소설에 대한 잃어버린 열정을 다시 느끼면서 삶의 활력까지 되찾아 간다.
하지만 이강은 매번 '다음에 계속'이라는 말로 끝을 맺어 허문호를 감질나게 만든다. 결국 그는 이강에게 소설에 소질이 있으니 자기가 개인 교습을 해주겠다는 특별한 제안을 한다. 대학시절 같은 과 동기였던 작가 김수훈(허준호)의 초청 강연 사회를 맡은 일도 그를 자극했다. 성공한 작가로 문학상을 휩쓸며 내놓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김수훈은 허문호가 견디기 어려운 질투의 대상이다.
같은 원작을 각색했지만 영화 ‘인 더 하우스’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고등학생 끌로드는 이강처럼 라파라는 동급생에게 일부러 접근해서 수학 과외를 해준다는 명목으로 그의 집을 드나든다. 라파의 엄마에 대해 보다 노골적인 태도를 취하는 등 에로틱한 요소가 더 부각된다. 문학 교사 제르망이 개인 교습을 한다는 설정은 같은데 중년의 교사와 고등학생 제자가 지나치게 친밀한 것 아니냐는 우려와 의심까지 사게 된다.
‘인 더 하우스’보다 상영시간이 훨씬 긴 ‘맨 끝줄 소년’은 새로운 등장인물들과 스릴러 요소를 추가했다.
처음 이강의 글을 읽으면서 허문호가 상상했던 세윤 부모가 뜻밖의 인물들로 밝혀지는 반전이 전개되고 이강과 허문호는 세윤 아버지의 범죄를 파헤치는 탐정 역할로 현실에 개입하게 된다. 그러나 진짜 반전은 현실과 허구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경계를 허물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끝까지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데 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은 현실과 상상을 마치 태피스트리처럼 정교하게 직조한 ‘스위밍 풀’(2003)이라는 작품도 만든 바가 있다. 추리소설을 쓰기 위해 호젓한 시골 별장에 온 여성 작가 세라(샬롯 램플링)가 창작 과정에서 겪는 고통과 갈등을 표현한 이야기이다.
‘맨 끝줄 소년’은 ‘인 더 하우스’보다 ‘스위밍 풀’과 더 닮은 것 같다. 현실과 상상, 허구를 구별하기 힘든 이런 이야기들을 왜 만드는 걸까?
모두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품 안에 창작이라는 프레임을 하나 더 넣은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 세계를 그냥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욕망이 상상을 불러오고 상상이 작품이라는 세계를 구축해 가는 그 과정까지 함께 보는 재미는 또 다른 맛이 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욕망을 훨씬 냉철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이현경 영화평론가
|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영화와 인문학 강의를 해오고 있다. 평론집 '영화, 내 맘대로 봐도 괜찮을까?'와 '봉준호 코드', '한국영화감독1', '대중서사장르의 모든 것' 등의 공저가 있다. 단편영화 '행복엄마의 오디세이'(2013), '어른들은 묵묵부답'(2017), '꿈 그리고 뉘앙스'(2021)의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영화에 대해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