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재산을 물려받을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고인의 뜻이 아니라 법률이 정해 놓은 혈연관계다. 사진은 2024년 국회에서 본회의에서 민법 일부개정안(구하라법)이 통과되는 모습.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엄마가 나타났어요. 저는 엄마 얼굴도 기억 못 합니다. 세 살 때 집을 나갔으니까요. 30년 동안 전화 한 통 없었는데, 장례식장에 와서 상속 지분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의뢰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떨리고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이미 여러 차례 사회적 공분을 산 바 있다. 세월호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자녀의 보험금을, 10여 년 넘게 소식을 끊었던 생부가 수령한 사건이 있었다.
천안함 사건으로 순직한 장병의 유족연금을, 태어난 직후부터 양육을 포기했던 생모가 청구한 일도 있었다. 고 구하라 씨 사망 직후에는, 어린 시절 가정을 떠났던 생모가 재산 분할을 요구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상속 자격이 부여됐고, 법은 그 부당함에 아무런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26년 3월 17일, 개정 민법이 시행되면서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 법은 무엇을 바꿨는가?
현행 상속법의 구조는 단순하다. 누가 재산을 물려받을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고인의 뜻이 아니라 법률이 정해 놓은 혈연관계다. 실제로 돌봄이 있었는지,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서류상의 가족이 현실의 가족보다 우선하는 체계였던 것이다.
이 구조의 부당함을 헌법재판소가 2024년 4월 25일 정면으로 지적했다. 패륜 상속인의 유류분을 제한하지 않는 것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한 것이다.
국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갔다. 유류분만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권 자체를 박탈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했다. 민법 제1004조의2가 그것이다.
법은 크게 두 가지 상실 사유를 규정하고 있다. 첫째,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둘째, 피상속인이나 그 배우자·직계혈족에게 중대한 범죄행위를 하거나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경우다.
주목할 점은 적용 범위의 변화다. 2025년 1월 시행된 민법은 상속권 상실 대상을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 한정했다. 구하라 씨 사건처럼 부모가 자녀를 버린 경우만 적용됐다.
그러나 2026년 3월 개정으로 이 제한이 사라졌다. 이제는 자녀, 배우자, 형제자매 등 모든 상속인이 상속권 상실의 대상이 된다. 부모를 요양원에 강제로 입소시킨 뒤 발길을 끊은 자녀, 배우자를 학대한 남편, 형제의 재산을 횡령한 동생 모두 상속권을 잃을 수 있게 됐다.
◆ ‘패륜’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법 조문만 보면 명쾌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대하게 위반했다’라는 것이 무엇인지, ‘심히 부당한 대우’의 경계가 어디인지를 법령은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이 모호함이 이 제도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다.
예를 들어, 장남이 15년 전 해외로 이주한 뒤 매달 200만 원을 송금했지만, 한 번도 귀국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투병 3년간 병상을 지킨 것은 차녀뿐이었다.
아버지는 결국 차녀의 품에서 눈을 감았다. 장남은 장례식에 나타나 법정상속분을 주장했다. 차녀는 장남의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을까? 15년간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은 것은 '부양의무의 중대한 위반'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장남 측은 반론할 수 있다. 매달 빠짐없이 송금한 기록이 있고, 경제적 부양의무는 충실히 이행했다고. 돈을 보낸 것과 곁을 지킨 것, 법은 어느 쪽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현행법은 답을 주지 않는다.
가정법원은 아직 이 제도에 따른 사건을 심리한 경험이 없다. 판례가 쌓이기 전까지는 법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다. ‘패륜’이라는 단어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법원이 과연 어느 선까지를 ‘패륜’으로 인정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 효자도 증거가 필요하다
개정 민법은 패륜 상속인을 배제하는 장치만 마련한 것이 아니다. 효자 상속인, 즉 기여 상속인이 봉양의 보상으로 부모에게서 증여받은 재산은 유류분 반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규정도 신설했다(민법 제1008조 단서).
수십 년간 부모를 돌보며 직장도 포기한 자녀가 물려받은 아파트 한 채를 놓고, 연락조차 끊고 살던 다른 형제가 유류분을 들어 절반을 내놓으라 요구하는 일은 이제 법적으로 차단된다.
다만 법원이 유류분을 배제할 만큼의 ‘특별한 부양’, ‘특별한 기여’를 인정하게 하려면, 단순히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라는 진술만으로는 어렵다.
아직 관련 판례는 나오지 않았지만, 돌봄의 내용이 막연하지 않고 일상적·반복적이고, 재산을 넘겨받은 시기가 돌봄 행위와 상식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그리고 넘겨받은 재산의 규모가 돌봄의 무게에 견주어 균형을 잃지 않아야 법원으로부터 유류분 배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 생전에 ‘이 증여는 수증자가 피상속인을 장기간 부양한 데 대한 보상’이라는 내용의 유언장이나 사서 공증을 받아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일인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사건에 대해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개정 민법 시행일인 2026년 3월 17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청구해야 한다. 기한은 2026년 9월 중순이다. 약 5개월 남았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