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협업해 만든 곰표밀맥주 < MBC 스트레이트 화면 갈무리 > |
[비즈니스포스트] 이건영 대한제분 회장은 2020년 맥주 제조업체인 세븐브로이와 상표권 계약을 맺고 수제맥주 사업에 진출했다.
세븐브로이에 ‘곰표’ 상표를 빌려주고 세븐브로이가 맥주의 기획·개발·제조를 모두 맡았다. 대한제분은 매출액의 1.5%에 해당하는 상표권 사용료를 받기로 했다.
곰표밀맥주는 3년간 6천만 캔을 판매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두 회사는 2023년 3월 계약 종료 후 2년여의 신경전 끝에 결국 법정 싸움에 돌입했다.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 쪽이 2023년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해 손실을 입혔고 레시피를 탈취하는 등의 갑질을 저질렀다는 입장이다.
반면 대한제분 쪽은 상표권 계약 만료에 따라 제조사를 바꿨을 뿐이고 세븐브로이가 주장하는 손해는 그들의 경영상 판단 때문이라고 일축한다.
양쪽의 갈등이 시작된 후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을 비판하는 내용의 여론전을 지속해서 펼쳤다. 이를 통해 대한제분의 갑질이 문제가 되자 2024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를 통해 합의 조정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했다.
을지로위원회에서는 계약 만료에 따른 세븐브로이의 손해액을 68억 원으로 확정하고 양사가 합의하도록 권유했지만 대한제분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한제분은 2025년 5월 세븐브로이가 주장하는 손해가 대한제분과 연관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하는 내용의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6월에는 세븐브로이가 곰표밀맥주 계약 종료 관련 허위사실을 유포해 대한제분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그러면서 대한제분 쪽은 “세븐브로이가 법에 따른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외부의 힘을 빌어 대한제분을 지속해서 압박하며 ‘갑질기업’으로 낙인을 찍고 있어, 거짓 주장에 따른 피해를 묵과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세븐보로이가 계약 기간 3년간 매출 800억 원가량을 올려 이익을 본 반면 대한제분은 갑질기업으로 몰려 큰 손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소송전에 본격 돌입한 이상 두 회사의 갈등이 장기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 두 회사의 입장 차이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가 입장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즉 △2023년 계약 종료가 정당한지 △계약 종료 후 세븐브로이가 경영상 어려움을 겪은 원인이 대한제분 때문인지 △대한제분이 곰표밀맥주 제조사를 바꾸는 과정에서 세븐브로이의 레시피를 탈취(표절)했는지다.
우선 2023년 계약 종료와 관련해 세븐브로이는 곰표밀맥주의 성공이 세븐브로이의 마케팅과 프로모션 덕분인데 대한제분의 일방적인 계약 종료 후 이 같은 성과물이 사라져 버렸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한제분은 두 회사의 계약이 3년 기한을 정한 상표권 라이선스 계약이며, 합의가 없으면 계약은 자동 종료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세븐브로이가 ‘곰표맥주 시즌2’ 업체를 뽑기 위한 경쟁입찰에서 선정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계약 종료 후 경영상 어려움에 대해서 세븐브로이는 계약 종료 후 대한제분 쪽이 완제품만 재고로 인정하고 이미 생산된 맥주를 캔에 담는 걸 금지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또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진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통보로 상표권 재계약을 하지 못해 큰 손실을 입었다고 하소연한다.
세븐브로이는 앞서 2022년 전북 익산에 300억 원을 들여 수제맥주 신공장을 지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한제분 쪽은 세븐브로이가 주장하는 손해는 세븐브로이의 경영상 판단에 따른 것이어서 대한제분과 무관한 일이라는 태도를 보인다. 아울러 계약 규정에 따라 종료 1개월 전까지 서면으로 계약 종료 의사를 밝혔고, 재고 소진 기간도 6개월을 책정했다고 항변한다.
레시피 탈취와 관련해 세븐브로이는 대한제분 쪽이 계약기간 중 수출용 맥주를 직접 납품한다는 조항을 추가하고 이를 빌미로 세븐브로이가 개발한 곰표맥주 레시피를 요구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한제분은 세븐브로이의 레시피를 표절 또는 탈취한 적이 없고 세븐브로이가 만든 시즌1과 제주맥주(현 한울앤제주)가 만든 시즌2는 완전히 다른 맥주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계약 종료 두 달 후인 2023년 5월 세븐브로이 관계자가 “대한제분에 제조법을 알려준 적은 없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대한제분은 수출업체가 요구한 필수서류인 원재료표(영양성분표), 제조공정표, 품목제조보고서 중 품목제조보고서는 오히려 세븐브로이가 직접 수출업체에 제공했다고 강조했다. 품목제조보고서는 품명, 원료, 배합 비율, 제조 방법, 성상(성질)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핵심 자료다.
◆ 갈등의 원인과 시사점
대한제분과 세븐브로이의 사이가 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세븐브로이가 2021년 코스닥 상장을 준비하자 대한제분이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갈등이 시작됐다는 견해가 있다.
곰표 브랜드를 앞세워 성공한 세븐브로이가 2023년 3월 상표권 계약 완료를 앞둔 시점에 상장을 추진하는 것을 대한제분이 탐탁치 않게 여겼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한 상장 후 주가 변동에 따라 곰표 브랜드의 이미지가 훼손될 가능성을 우려했을 것으로 보인다.
상표권 계약에 따라 얻는 수익이 너무 미미한 것도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계약에 따른 대한제분의 수익은 곰표밀맥주 매출액의 1.5%로, 연평균 약 4억 원에 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내부적으로 계약 갱신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서는 두 업체의 갈등을 두고 협업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변수와 법적 리스크들을 계약 단계에서 꼼꼼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 원인이 됐다고 평가한다. 즉 전형적인 갈등 관리의 실패라는 것이다.
특히 대한제분과 같은 중견기업이나 대기업과 세븐브로이와 같은 중소기업 또는 스타트업이 협업하는 경우, 협업으로 형성된 브랜드 가치의 산정과 귀속문제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큰 회사와 비즈니스 관계를 맺고 있는 중소기업·스타트업일수록 협업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 리스크 관리를 꾸준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