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022년 7월13일 충주 스마트 캠퍼스에서 열린 '현대엘리베이터 충주캠퍼스 이전 기념 미래비전 선포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 |
[씨저널] 한때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였던 스위스 엘리베이터 업체 쉰들러(Schindler Holding AG)가 지분율을 점점 줄이고 있다.
쉰들러는 2025년 8월28일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4.25%를 보유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이는 쉰들러가 이른바 ‘5% 룰’을 적용받지 않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룰’은 ‘상장회사의 주식 등 대량보유상황보고 의무’를 뜻한다. 5% 이상 보유 주주는 지분율이 1% 이상 변동될 경우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주주가 지분을 매각해 지분율이 5% 미만이 됐다는 것은 주요 주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고 경영권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율은 2012년 35%로 정점을 찍었다가 이후로 점차 하락했지만, 2022년 말까지만 해도 15.50%의 만만치 않은 지분율로 2대주주 지위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쉰들러가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지분을 팔기 시작하며 엑시트 행보를 보였다. 2023년 말에는 11.51%, 2024년 말에는 9.94%까지 지분율이 떨어졌고, 2025년 들어 지분 매각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쉰들러는 2014년
현정은 회장에게 제기한 주주대표소송에서 2023년 최종 승리하자 법적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느낀 동시에, 더 이상 경영권 분쟁을 지속할 명분이 약해졌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마침 2023년 이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상승 국면에 접어들자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면서 점차 발을 빼기로 결정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2022년 말 2만8300원(종가 기준)에서 2025년 6월17일 9만1200원까지 올랐다.
쉰들러의 엑시트 행보는 현대엘리베이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영 불확실성이 크게 해소되면서 업계에서는 현 회장의 경영권 안정화를 전망하고 있고, 증권가에서도 현대엘리베이터 주가 안정을 기대하고 있다.
◆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보유 역사
쉰들러는 2003년 현대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놓고 KCC와 맞붙었을 때 백기사로 등장했다.
현정은 회장은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사들이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자 쉰들러에 도움을 요청했다.
KCC는 2004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40%대까지 매집하고 현대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분 매집 과정에서 ‘5% 룰’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금융당국으로부터 의결권 제한조치를 받는 바람에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 쪽에 패했다.
이후 쉰들러는 2006년 KCC가 보유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전량인 25.54%를 인수했다. 이는 당시 국내 시장점유율 1위였던 현대엘리베이터를 인수해 한국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중도 있었다.
이어 2010년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전에 참여하자 현대건설 인수를 돕는 대신 현대엘리베이터 승강기사업부를 넘겨달라고 현 회장 쪽에 제안했다. 현 회장이 이를 거절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쉰들러는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노리고 지분율을 35%(2012년)까지 높이기도 했다.
이후 현대상선의 자금난이 불거지면서 양쪽의 갈등이 심화됐다. 특히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해 계약한 파생상품에서 큰 손실을 입은 일이 문제가 됐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는 2006년부터 2013년까지 5개 금융사와 20여 건의 파생상품을 계약했다.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우호지분 매입 대가로 매입자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고 현대상선 주가가 하락하면 그 차액을 보장해 주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대상선 주가가 급락하면서 약속한 수익을 물어주느라 현대엘리베이터는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어야 했다.
그러자 쉰들러는 현 회장이 개인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며 2014년 7천억 원 규모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2023년 대법원에서 쉰들러가 최종 승소함에 따라 현 회장은 배상금 1700억 원(이자까지 약 2900억 원)을 회사에 배상해야 했다. 이승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