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한 쿠팡플레이 대표(사진)는 쿠팡플레이 출범부터 5년 동안 회사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 대표 체제에서 쿠팡플레이는 OTT 업계 2위 자리까지 확보했다. |
[비즈니스포스트] 쿠팡플레이가 약진하고 있다.
격차를 결코 좁힐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티빙을 따라잡더니 국내 온라인동영상스트리밍서비스(OTT) 2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입지를 계속 넓혀나가고 있다.
쿠팡플레이의 성공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김성한 대표다. 김 대표는 불도저와 같은 추진력을 앞세워 쿠팡플레이의 성장을 견인해 쿠팡 내부에서도 상당히 인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쿠팡플레이의 성장에는 이면도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의 공세 탓에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는데 이를 가속화하는 데 쿠팡플레이도 책임이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4일 앱 통계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쿠팡플레이가 출범 5년 만에 국내 토종 OTT 순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모바일인덱스가 올해 상반기 누적 신규 설치 기준으로 따진 모바일 앱 순위에서 쿠팡플레이는 247만 설치를 기록해 14위에 올랐다. OTT만 따지면 넷플릭스(324만)의 뒤를 이은 2위다. 반면 국내 토종 OTT 시장 선두를 놓고 경쟁해온 티빙은 누적 설치 수 172만 건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평균 월간활성사용자수(MAU)를 기반으로 매긴 모바일 앱 순위에서도 쿠팡플레이가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쿠팡플레이는 이용자수 702만 명을 기록했는데 이는 티빙과 같은 수치다. 1년 전만 해도 80만 명가량이었던 두 플랫폼의 격차가 빠르게 줄어든 셈이다.
쿠팡플레이의 약진은 1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OTT 분야의 신규 설치 순위에서 티빙에 밀렸는데 지난해 6월 처음 티빙을 제친 뒤 1년 내내 앞서고 있다.
김성한 대표의 개인기가 쿠팡플레이에서 서서히 발휘되고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김 대표는 1987년생으로 아직 30대인 젊은 전문경영인이다. 하지만 쿠팡플레이를 총괄한지는 벌써 5년이나 됐다.
그는 김앤장과 엔씨소프트, NHN 등을 거쳐 2016년 2월 쿠팡에 합류해 2017년 10월까지 쿠팡 프로덕트오너(PO)를 맡다가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빗으로 이직해 대표까지 지냈다.
2019년 4월 다시 쿠팡으로 돌아와 물류부문의 기술 개발과 데이터 사이언스 조직을 담당하는 프로덕트오너를 맡다가 2020년 8월 쿠팡플레이 총괄디렉터(대표)에 올랐다. 그 후 약 4달 만인 2020년 12월 쿠팡플레이가 세상에 나왔다.
사실상 김 대표의 손끝에서 쿠팡플레이가 탄생했다고 봐도 무방한 셈이다. 이후에도 5년 내내 쿠팡플레이의 단독 대표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큼 내부적으로 역량을 높게 인정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쿠팡과 쿠팡이츠서비스,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같은 계열사뿐 아니라 각 사업부문을 이끄는 전문경영인 가운데서도 김성한 대표처럼 오래 회사를 총괄하고 있는 인물은 드물다.
김성한 대표 체제 초기만 하더라도 쿠팡플레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볼 만한 콘텐츠가 몇 개 없다”는 지적이 출범 이후 1~2년까지만 해도 쏟아졌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쿠팡플레이를 향한 평가가 뒤바뀌고 있다. OTT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콘텐츠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게 올라왔다.
스포츠만 보면 최근부터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독점 생중계를 시작했다. 기존에 EFL챔피언십(2부리그), EFL리그원(3부리그), FA컵, 카라바오컵, 커뮤니티실드 등 영국 프로축구의 다양한 경기를 중계해왔는데 영국 축구의 정점까지 섭렵한 것이다.
이밖에도 피파클럽월드컵과 미국 프로농구 NBA, 레이싱 그랑프리 F1,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스페인 프로축구 라리가, 미국 미식축구 프로리그 NFL 등도 모두 쿠팡플레이에서 서비스되고 있다.
드라마 구색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워너브라더스디스커버리 산하 HBO와 손잡고 3월부터 HBO 콘텐츠를 단독 제공하고 있다. HBO는 ‘밴드오브브라더스’나 ‘왕좌의게임’ 같은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드라마의 지적재산(IP)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를 보기 위해 쿠팡플레이에 가입하는 사용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예능 분야로도 발자국이 제법 많아지고 있다. 과거만 해도 SNL코리아 이외에 뚜렷한 흥행작을 볼 수 없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지난해 축구예능 슈팅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올해는 SNL코리아 작가진이 만든 ‘직장인들’이라는 예능으로 소위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직장인들과 관련한 짤막한 영상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시즌2 제작이 확정돼 8월부터 방영에 들어간다.
이런 발자취들은 모두 김성한 대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 대표는 ‘프로덕트오너’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프로덕트오너란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자인, 개발, 출시, 분석 등을 모두 총괄하는 인물로 이른바 ‘미니CEO’로 불린다.
자신이 맡은 업무를 고도화하기 위해 다른 부서와 협업하는 것이 일반적 조직의 특징이라면 프로덕트오너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가 쿠팡에 합류했을 때 맡았던 직군도 프로덕트오너였다. 2020년 3월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프로덕트오너’라는 책까지 냈을 정도로 프로덕트오너를 향한 애정이 깊다.
▲ 쿠팡플레이는 스포츠와 예능, 드라마 등에서 시청자들이 볼 만한 작품 구색을 넓혀나가고 있다. (왼쪽부터) 이종록 쿠팡플레이 스포츠 총괄 전무, 폴 몰나르 프리미어리그 최고 미디어 책임자, 김성한 쿠팡플레이 대표, 조쉬 스미스 프리미어리그 글로벌 미디어 세일즈 총괄이 쿠팡플레이와 프리미어리그의 파트너십 계약 관련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쿠팡> |
추진력이 강해 ‘불도저’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런 김 대표의 성향을 반영한 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쿠팡플레이에 합류하기 전인 2017년 ‘포브스 아시아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된 이력도 지니고 있다.
김 대표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는 쿠팡의 첫 번째 리더십 원칙인 ‘고객을 와우하게 하라(Wow the Customer)’를 매우 강조한다. 실무진에게 고객을 먼저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고개을 위한 제품 개발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고 동료들은 입을 모은다.
일부 전현직 동료들은 그의 리더십을 놓고 “타협이 없다”고까지 평가하는데 이를 통해 쿠팡플레이가 ‘볼 것 없던 OTT’에서 ‘생각 외로 쓸만한 OTT’로 거듭났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가 가진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쿠팡플레이가 아직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 부담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쿠팡은 여태껏 쿠팡플레이와 관련한 실적을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쿠팡플레이가 소속된 성장사업부문의 실적을 통해 쿠팡플레이의 성과를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성장사업부문은 여태껏 단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김 대표가 6월 중순부터 ‘스포츠패스’라는 이름으로 여태껏 단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구독형 모델을 도입한 것은 이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로 읽힌다. 스포츠패스의 구독료는 쿠팡의 유료멤버십인 와우멤버십 회원의 경우 월 9900원이며 일반회원의 경우 월 1만6600원이다.
쿠팡플레이가 국내 콘텐츠 생태계의 선순환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콘텐츠업계의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국내 드라마 제작에 활발하게 투자하지만 쿠팡플레이는 소수의 오리지널 작품을 빼면 사실상 콘텐츠 제작은 외면하고 유통으로만 돈을 벌려 하고 있다”며 “토종 OTT 업계는 생사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도 콘텐츠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지만 쿠팡플레이에게는 그런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실제로 쿠팡플레이가 투자해 만든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는 2021년부터 현재까지 모두 12편에 그친다. 다른 콘텐츠 제작기업이 1년에 만드는 것과 비슷한 숫자다. 남희헌 기자